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71

201103 나는 자주 깜박한다

201103 나는 자주 깜박한다 캐나다 이민생활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우리도 아파트에 월세로 살았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띄엄띄엄 지어진 넓은 잔디 위의 3층 3-4호 아파트였다. 그나마 빌딩 속의 아파트가 아니어서 좋았고 주변환경이 빌딩형 아파트보다 그 수준이 높았다. 이민 초기에는 낯선 곳이고 이국이라 출타 중에는 아파트 문을 꼭꼭 잠그고 다녔다.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여 자동차 운전도 원칙대로 하고, 주차도 잘하고, 자동차 문도 꼭꼭 잘 잠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경직된 생활이 느긋하게 되었다. 내 성격이 급하고 어떤 때는 대충대충 하는 성격이라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나가거나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는 채로 일을 보곤 했다. 뭐, 집안에 돈 되는 물건이 없었고, 있어 봐야 거라지 세일에서 구입한..

201019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

201019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어 중년에는 그런 일을 잘 헤쳐 나간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직장이나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한 노년은 그저 살아온 경험으로 인생을 쉬거나 즐기는 세월이다. 다소 무기력해지는 나이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때 간혹 스스로를 자제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좀 행복한 이야기이다. 노년에 생활비를 벌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보니 앞만 보고 간다. 그러나 생활고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말 못할 고민을 한다. 여기서 혼자 고립까지 요구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할 때 정말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210104 열이틀의 이탈,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서

210104 열이틀의 이탈, '나는 무엇인가'를 찾아서 2020년 한해가 넘어가는 12월 중순이었다. 또한 2020년 12월은 내가 만 62세가 되는 달이다. 1998년 IMF 경제환란으로 직원 없이 혼자 설계사무소를 꾸러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을 견디어 나가다가 갑자기 이민을 결정하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 후 캐나다 12년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캐나다 생활은 나를 시험하는 시간이었고, 나는 그 시험을 극복했다. 힘들었으나 캐나다 생활은 알찼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201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에 한국을 떠났으니 꼭 10년만이었다. 그러나 한국생활이 시작되자 캐나다 생활에서 얻은 만족과 ..

191222 내 영혼의 이름 Yeon & Andrew

191222 내 영혼의 이름 Yeon & Andrew 내 이름은 ‘연배’이다. 이것은 내 이름이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부모와 가족이 나를 그렇게 부르니 그렇다.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그렇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연배‘이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면 당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보거나 답한다. 그리고 내 이름을 적어야 할 때도 저절로 그렇게 적는다. 그렇게 이름과 나는 항상 동일했다. 직장을 가지고부터 내 이름 대신 나는 다른 호칭을 가지게 되었다. ‘정기사’였다. 건축엔지니어였기에 나는 ‘정기사’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건축기사로써 일을 했으니 당연했다. 처음에는 서먹하더니 자주 들으니 그것도 내 일부가 되는 듯했다. 어디서 ‘정기사’라고 하는 비슷한 말만 나오면 반사 신경이 작용했다. ..

200822 톨스토이(Leo Tolstoy)와 반지

200822 톨스토이(Leo Tolstoy)와 반지 애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때의 가장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산업전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연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과거 우리 시절에는 절대적인 선이었다. 이제 살만하니 본인도 가족도 자기만족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분출한다. 당연 서로 간 충돌이 생긴다. 애초에 가장이 경제적인 가족부양에 아니 충실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글쎄다.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이제 복지사회 안에 있으니 우리 사회도 이와 똑 같은 것 같다. 사자 새끼는 자라면 스스로 사냥을 해야 한다. 내가 서양 물을 먹어서 그런가. 나만 챙기면 되니, 나는 자유롭다. 내가 총각일 때 시골 가난한 촌놈이 메이커 옷으로 폼 내고 다녔다. ..

201002 동생아, 와 이렇게 몸이 아프노

201002 동생아, 와 이렇게 몸이 아프노 추석이 다가오면서 고향방문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방송은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하라고 겁을 매번 주었다. 고향에 가는 것이 그리 큰 대수인가? 추석 전에도 여러 번 일보는 겸에 고향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별일 없었다. 가서 어떻게 지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고향 어른들의 방에는 TV가 항상 켜져 있다. 사람 소리가 그리워 TV에서 나오는 사람 소리라도 듣고자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 고놈이 연속극 아니면 코로나 관련 뉴스로 앵무새처럼 하염없는 하루를 채운다. 별 것 아니라도 같은 말을 매일매일 많은 시간을 통하여 듣다 보면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노년에게는 극한 공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자식일지라도 보고 싶어도..

201016 내 꽁지머리

201016 내 꽁지머리 지금 나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머리를 길러 뒤로 매고 다닐 때는 많이 어설펐지만 지금은 좋아한다. 거울을 보고 머리 뒤에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면 가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꽁지머리를 하게 되었을까 하고. 캐나다 이민생활을 그만두고 고국에 귀국했을 때 일이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들렸다. 보통 남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남성헤어전문점이었다. 그곳에서는 가격도 저렴하고 앉기만 하면 알아서 현재 유행하는 남자머리 스타일로 잘 깎아 주었다. 이민 전, 15년 전인가? 그때를 기억해 보면 지금의 남자머리 스타일은 더 짧아지고 더 세련되면서 더 단정했다. 마치 옛날 짧은 장교머리 비슷했다. 김정은헤어스타일과 비슷하게 앞머리는..

130601 뒷골목 야바위 게임

130601 뒷골목 야바위 게임 80년대 초였나? 가끔 용산역 뒷골목으로 가면 좌판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투전을 하는 무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6각 팽이 돌리기”와 “화투 3장으로 진품 찾기”였다. "6각 팽이 돌리기"는 옆면에 1번부터 6번이 새겨져 있는 6각형 팽이로 투전을 하는 야바위의 일종이다. 손님들이 한두 번호에 돈을 걸고 난 후, 좌판 주인이 팽이를 돌리고 그 팽이가 넘어지면서 나오는 번호와 손님이 걸은 번호와 일치되면, 그 손님은 배팅한 금액의 5배를 받는 야바위 게임이다. 즉 100원을 1번에 걸고 팽이에서 1번이 나오면 500원을 받는 방식이다. "화투 3장으로 진품 찾기"는 주인이 화투의 일광, 삼광, 팔광의 3장을 가지고 서로 섞은 다음 밑면을 손님에게 보여준다..

240110 김환기 화백이 생각납니다

240110 김환기 화백이 생각납니다. 백자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순백색에 푸른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못 생긴 것 같은 그래도 당당함을 보이는, 국보 262호(용인대 박물관, 높이 49cm) 백자 달항아리입니다. 느낌을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온화한 백색,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임 없는 형태” 보는 이 모두 그런 느낌이 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보니 순백색에 온화함을 느낍니다. 정확한 기하학적인 곡선이 아닌 다소 흐트러진 곡선이 보입니다. 형태가 완전하지 않고 어떠한 문양이 없으니 꾸임이 없다고 하면 맞습니다. 색, 선, 형태에서 보이는 맛은 바로 순수이지요. 그런데 넉넉함은 매우 주관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니 좀 치밀하거나, 예리하거나, 바쁘다는 느낌이..

231215 자기를 버리고 더러움을 담는 무명옷

231215 자기를 버리고 더러움을 담는 무명옷 젊었을 때는 직장 때문에 양복을 주로 입었다. 고놈의 양복도 천이 울이면, 그때 기억으로 메리노 울로 기억한다, 겨울철용은 상쾌하면서 따뜻하였고, 반면 여름철용은 기분 좋게 시원했다. 확실히 근본이 있는 자연의 천은 탁월했다. 실용성 때문에 화학제품 양복을 입어 보았다. 착용 느낌이 좋지 않았다. 따뜻한 맛도 없었다.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땀도 찼다. 그러나 입어도 구김이 없어 다리미질 할 필요도 없었고 땟깔도 좋았다. 막 입어도 되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물을 잘 흡수하지 않으니 빨래하기도 쉬웠다. 울양복은 입을수록 정이 갔다. 두고두고 잘 간직하면서 입게 되었다. 그런데 화섬은 입다 보면 영 정이 가질 않았다. 고놈은 땀이나 먼지같은 나의 더러움을 훔치..

231123 내 식으로 제로에너지 주택을 지어라

내 식으로 제로에너지주택을 지어라 3년 전인가? 고향에 가서 살아보고자 경주를 방문을 하였다. 마침 고향 전원지역에 작은 땅을 후배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기존 허름한 기와집이 있는 80평정도 작은 땅이었다. 근처 대단위 원룸 주거지와 상가가 있고, 시내버스 노선도 있어, 자동차로 20분이면 울산과 경주 시내로 갈 수 있었다. 나는 5천만 원이면 착한 가격이라 생각하고 덜컥 매입했었다. 2023년 이른 봄, 그곳에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철거비용으로 1000만원이 들었다. 그것도 후배에게 부탁하여 최저가로 한 것이었다. 주택과 사무소가 있는 전원건물에서 나의 로망이었던 설계사무소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내 집을 내가 설계하는 것은 건축가만의 특권이다. 설계를 끝내면 마음이..

231108 철 없는 댄스의 꿈

Dance at Bougival by Pierre-Auguste Renoir(1883) from Wikipedia 231108 철없는 댄스의 꿈 촌놈이 처음으로 보는 서울은 너무나 넓고 컸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상 물정을 거의 모르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서울생활에서 좌충돌 우충돌 하였다. 한마디로 혼란이었다. 시골에서 보내는 학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말이다. 서울 학생들 모두는 풍요로웠다. 왜 서울 저놈들은 풍요롭고, 촌놈인 나는 가난한지 그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부에서 갑자기 과외를 전면 금지하였고 나는 공부하면서 돈 벌 기회마저 없어졌다. 공납금은 어찌어찌 모아 해결했지만 서울에서 먹고 자고 하는 문제는 큰일이었다. 돈이 없으면 굶어야 ..

230817 떠남이 아쉽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다

230817 떠남이 아쉽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다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난다. 지금 저녁이니 잠만 자면 내일 아침이다. 여기 캐나다 동부 끝 작은 도시 Fredericton에서 머문 지 꼭 2달 반이다. 여기에 6월 3일 도착하였으니, 내일 떠나는 8월 17일까지 계산하면 정확하게 2달 보름이 된다. 한국에서 5월 26일 출발하여 LA에 7일 머물고, 그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도 이곳저곳 둘려보고 한국에 도착하면 9월 5일쯤 될 것 같다. 그럼 꽉꽉 채워서 3개월 여정이 된다. 처음 한 3개월 정도 머물면 되겠지 하는 것이 진짜 3개월 여정이 되었다. 처음 이런 계획을 할 때는 3개월이 그렇게 긴 기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막상 여기서 실행해 보니 길고 길었다. 하나의 도시에 한 ..

230815 우선 근사하게 보여야 한다

230815 우선 근사하게 보여야 한다 정식으로 누구를 만날 때 우리는 제대로 차려 입는다. 그것이 처음만남이라면 더 그렇다. 그러나 대충 차려입고 가면 의도한 것이 무산될 수 있고, 더구나 성의가 없다, 혹은 누구는 무례하다고 까지 한다. 맞는 말이다. 처음 인상이 중요하고, 또한 그 사람이 성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어디까지 성의이고 어디까지 치장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자기 형편에 맞추어 차려 입으면 되는 것인데, 사실은 사람은 자기의 낮은 형편을 감추려 한다. 만약 자기 형편에 맞추면 보기에 기대 이하의 수준이 되어 상대방이 실망할 수도 있다. 형편에 맞추어 깨끗하게 차려 입으면 되지만 그래도 그 정도에서 사회적으로 보편적 기대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갈 때..

230725 내 사랑, 그 아름다운 곡선

230725 내 사랑, 그 아름다운 곡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 나는 그때 보았다. 늦은 오후 석양의 햇빛이 사무실 깊숙이 들어올 때였다. 내 건너편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녀의 옆얼굴 실루엣의 곡선은 이마에서 콧등을 타고 내려와서 볼록한 두 입술을 감싸고 턱 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매혹적인 곡선, 나는 그 곡선미에 반해 버렸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매일매일 그 곡선을 보는 순간마다 느낌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그것은 매혹적이라기보다 순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첫눈에 반하는 매혹을 넘어 보아도 계속적으로 느끼는 보편적 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정말 황홀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선이 있다니... 여인에게는 아름다운 선이 여러 곳에 있다. 제일 먼저 여인의 ..

230715 작업에 몰입하면서 시공에 갇혀 산다

230715 작업에 몰입하면서 시공에 갇혀 산다 오늘 토요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작업실(Studio)에서 작업한다. 당연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 말이 쉬는 것이지 하는 일 없이 방 안에 죽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캐나다 작은 도시에서 머문 지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여 밖으로 나가 걸었다. 다운타운까지 갔다 오면 거의 만보가 된다. 이것저것으로 움직이면 하루 만 오천 보는 그냥 넘는다. 평일은 다운타운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가서 작업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만 오천 보는 쉽게 넘어간다. 작업실에서 낑낑대며 디자인하고 무엇인가 만들기 위해서 용을 쓰면 몸이 경직된다. 이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30분 정도 요가 같은 스트레칭을 한다. 이러고 보면 하루 하는 일양이 만..

230512 최고의 저녁, 상추와 고등어조림

230512 최고의 저녁, 상추와 고등어조림 농촌에 태어나서 살았어도 평생 농사를 직접 지어본 적이 없다. 눈으로 본 경험 밖에 없다. 낫으로 풀을 벤 작은 경험과 고등학교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할 때 잠깐 나락을 베어본 경험뿐이다. 내 주위 지천에 보였던 것이 풀이고, 나무이고, 과일이고, 또한 산 너머 쉽게 접할 수 있던 것이 바다와 어물이었다. 그러나 사과 따기 혹은 바다낚시 정도만 해 보았지, 내가 직접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물고기를 잡아본 적이 전혀 없다. 경주에 전원단독주택을 다 지었다. 그때부터 한가했다. 내 집 주위는 공터가 많다. 주위 주민들이 이곳에서 텃밭농사를 짓고 있다. 이때 농사일 하는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면 그들은 기분 좋게 받아준다. 옆집 아주머니는 여러 종류의 농사를 짓는다. 내..

230510 대도시 진학을 포기하다

230510 대도시 진학을 포기하다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나는 크게 고무가 되어 학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하면 할수록 성적은 올라갔고 그 만큼 칭찬이 많아지면서 신이 났고 학교생활은 즐거웠다. 교과서를 넘어 참고서를 달달 외우기도 했다. 학업에 몰입함으로서 답답함과 외로움은 많이 해소되었으나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형수님 눈치가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아버님이 올라와서 형님 댁에 묵었다. 아버지는 장손으로 매우 엄했고 말씀이 별로 없는 분이었다. 나는 용기를 잔득 내었다. 그리고 저녁을 마치고 아버지에게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형님 댁에서 나가 독립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도시에서 너 형 댁을 두고, 어찌 나가서 너 혼자 살게 할 수 있겠나?” 맞는 말씀이었다. 나는 한마..

230429 한마디 칭찬이 춤을 추게 하다

230429 한마디 칭찬이 춤을 추게 하다 삼촌댁에서 먹고 자고 학교 다니는 것은 매우 좋았다. 동갑의 사촌이 형제이고 친구였고 먹는 것도 풍요로웠다. 그러나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내 집보다 못했다. 나는 1년 후 삼촌댁에서 무작정 나왔다. 그때 누나가 경주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혼자 경주에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곳으로 갔었다. “누나, 나 여기서 살면 안 돼?” 풍족한 삼촌댁에서의 생활이 갑자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되었다. 누나는 자기 공부와 학교생활로 바삐 다녔고, 나는 춥고 먹을 것 없는 단칸방에서 혼자 누나를 기다렸다. 고향을 왜 떠났는가? 비쩍 마른 작은 한 아이가 양지 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졸기도 한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항상 홀로 있었다. 큰 형님은 공무원이었는데 마침 경..

230428 받은 상장을 빼앗기다

230428 받은 상장을 빼앗기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었다.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전에 반에서 우수한 한 학생에게 최고의 상장을 준다. 몇몇 학생이 개근상(그 당시 개근하기가 어려워 개근상이 있었다)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우수상장을 받을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엉겁결에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받고 보니 상장이었다. “무슨 상장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내가 상장을 다 받다니...엄마에게 자랑해야지” 너무 좋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상장을 가슴에 품고(그 당시 애들은 상장을 받으면 가슴에 안고 제자리에 돌아왔다) 내 자리로 돌아 왔다. 그 순간 반에서 갑자기 작은 혼란이 생겼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를 부르고 내가 품고 있던 그 상장을 빼앗았다. 그리고 바로 다른 학생에게 주었다. 다..

230423 용접하면서 느낀 두려움과 쾌감

230423 용접하면서 느낀 두려움과 쾌감 중세까지만 해도 철재와 용접을 이용하여 건물을 짓지는 않았다. 대부분 석재나 벽돌에 모르타르를 발라 쌓아 지었다. 그래서 중세시대는 석조건물 혹은 벽돌건물 시대이다. 근대에 와서 철재용접기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에 강재가 사용되어 철골구조 초고층건물시대가 시작되었다. Empire State Building이 그 좋은 예이다. 벽돌석조건물은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철골조 건물은 기본골조를 공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것이 기본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주택을 보통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렴하니까. 그 이유는 시멘트, 모래, 자갈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기 때문이다. 과거 노동력도 저렴했다. 그런데 노임..

230422 내 전원주택 집짓기를 끝내고

230422 내 전원주택 집짓기를 끝내고 예정된 예산으로 간단히 집만 달랑 짓고 살려고 했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전체 마스터 프랜 아래 집 주변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 건물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야 했지만 “집만 있으면 되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한 공사는 결국 허름한 바닥위에 집만 있는 꼴이 되었다. 내가 엉터리 전문가가 되는 순간이었다. 단독주택은 집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정원의 성토 절토공사와 잔디공사, 담장 대문공사, 데크공사, 데크지붕공사, 옹벽보강토 블록공사, 등등 많은 주변 공사가 수반된다. 이런 것을 다 전문 업자에게 하청을 줄 경우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도 여러 다른 작은 공정을 순서대로 하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

230421 경주벚꽃마라톤 대회 참가

230421 경주벚꽃마라톤 대회 참가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오전 8시, 경주보문단지에서 경주벚꽃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제30회이다. 대회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나는 아직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마침 지역 TV에 소개가 되어 나는 이때 알게 되었다. 대회는 3종류(Half(21.0975km), 10km, 5km코스)의 약식코스만 있었다. 정식마라톤대회라하기 보다 아마도 봄날 경주벚꽃을 즐기면서 달리기를 하는 하나의 축제인 듯했다. 참가 인원은 12,000명. 나는 10km코스에 신청했다.(참가비 40,000원) 달리기 장소는 경주 보문단지이다. 내집에서 차로 10분만 달리면 된다. 10km마라톤 참가는 내가 대학시절 한번 해 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경기날 아침 7시경, 며칠전 택배로 ..

230320 내 전원주택 짓기를 끝내고

230320 내 전원주택 짓기를 끝내고 2022년 2월에 시작하여 기초, 골조, 창호, 내부마감, 등을 전문업체에 맡겨 9월에 주택건물을 완성하고, 다음해 3월까지 겨울 6개월 동안 전원주택의 정원, 담장, 외부데크, 등 건물주변 공사를 내가 직접 했다. 보강토블럭(개당50kg) 800개를 장비 없이 손수 몸으로 옮겨 쌓았고, 25톤 트럭 2대 분량의 마사토를 삽과 구로마로 마당에 깔았다. 건물 앞과 뒤에 총 15평의 데크도 설치했다. 데크 골조를 강관으로 직접 설계하여 직접 조립 용접하여 세워, 바닥은 합성목을 깔고 지붕은 패널을로 덮었다. 직접 집에서 밥해 먹으면서 이 모두 오직 나 혼자 했다. 블럭공, 철공, 석공, 시멘트공, 토공, 배관공, 용접공, 벽돌조적공, 미장공, 배관공, 전기공…. 이 모..

220820 이제 해돋이보다 낙조가 더 좋다

220820 이제 해돋이보다 낙조가 더 좋다 2022년 8월 15일, 2박 3일 휴가로 친구와 함께 갔던 곳은 서해안 삽시도(대천 앞바다)였다. 자동차로 섬둘레를 둘려보고 트레일을 걸었다. 이곳은 시유지가 많은 관계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삽시도는 삼각형 섬으로 안쪽은 육지 방향이고 바깥쪽은 서해 방향이다. 우리는 서해 방향의 백사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백사장 언덕에 지인의 작은 펜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지도로 보니, 내가 있었던 곳은 진너머 백사장이었고 내가 놀면서 보았던 지평선 저 끝의 작은 섬은 오도였다. 의도하여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지인의 작은 펜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이곳에 왔었다. 와서 보니 마치 유럽의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아니 그곳보다 더 좋았다. 넓디넓은..

220704 긴장과 몰입의 하루

220704 긴장과 몰입의 하루 영화 “영웅(The Hero)”을 보았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천하가 결국 선이다. 사랑도 큰 대의를 넘을 수 없고, 인간 본성도 천하의 대의에 따라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중국다운 영화이다. 중화사상의 기본을 보는 것 같았다. 영상미와 그것에 따르는 감미로운 음악이 돋보였다. 3번째 보는 영웅이지만 그때마다 보는 이를 하여금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오늘 일요일이다. 폭염경보가 있었다. 정말 더웠다. 그렇다고 집콕하기는 싫었다. 괜히 등산이나 나들이를 하기에는 따분했다. 아침 일찍 내 집 현장으로 갔다. 어제 구입한 조명등을 달기 위해서다. 방, 거실, 주방, 현관, 등등 등 등 갯수만 30개에 달한다. 대략 예산이 100만원 정도이다..

220419 동해안 항구 추억

220419 동해안 항구 추억 경주에서 20분만 달리면 그곳이 바로 동해안이다. 그 동해안에 오래된 항구 하나가 있다. 그 항구에 작은 형님이 살고 계신다. 오늘 바닷가를 보고 싶기도 하였고 문득 형님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오전 11시경 자동차를 동해안으로 몰았다. 그리고 형님과 점심을 같이 하였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가물했다. 그들을 잊고 산지가 40년이 다 되어간다. 친한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얼굴이 떠오르지만 가물가물했다.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기억해 보았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그 이름이 떠올랐다. “0호” “형님 그분 내 선배인데 어디 사시는지 알아요?” “아 그 사람, 여기서 음식점을 하고 있단다.” 나는 그곳으..

220417 그냥 외롭다고 말하면 안될까

220417 그냥 외롭다고 말하면 안될까 절 주지 한 분을 알고 있다. 그 스님의 불경과 매일 하는 예불을 보면 스님의 원칙을 보는 것 같다. 학벌로 서울대가 있듯이 스님의 출신 불사도 그쪽 출신이다. 스님 세계에서도 그런 학벌이나 자존심이 있다고 한다. 당연 최고 출신이고 본인도 스스로 최고라 한다. 세종에 그 스님을 따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스님이 경주 보문단지에 벗꽃놀이를 왔다. 숙소는 보문단지 내 콘도였다. 벗꽃이 만발한 경주 관광지 이곳저곳을 둘려본 후 포항으로 가서 고래고기와 회를 싸들고 콘도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불렸다. 나는 보문단지에서 멀지 않는 곳에 머물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는 나는 바로 자동차를 몰고 보문단지에 있는 그 콘도로 갔다. 경주가 고향인 나는 서울에서 살면서 틈..

220322 우리는 무엇으로 제사를 지내는가

220322 우리는 무엇으로 제사를 지내는가 3월 중순을 넘기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벚꽃이 핀다. 봄이 오면 만물에 생기가 돈다. 젊고 싱싱한 것에는 축복이 되지만, 시들어 가는 것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늙은이들에게는 봄에 사고가 많이 난다. 내 아버지 어머니는 봄날에 돌아가셨고, 누님도 그렇다. 2월 17일(음력)은 누님 제삿날이다. 양력으로 따지면 올해는 3월 19일이다. 즉 이날 밤 0시가 지나자마자 몸 단정히 차려입고 음식을 두고 사자를 모셔 제사를 지낸다.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다. 돌아가시고 만 1년이 되는 첫 날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법으로 따지는 제삿날이다. 우리 집은 맏이 집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가 있었다. 그때는 막 근대화 시절이라 제사 ..

211209 일상의 소소한 일들

211209 일상의 소소한 일들 나에게 동네 원주민 친구가 있다. 그는 일요일마다 직장을 쉰다. 일주일 한번 쉬는 날에는 별일 없으면, 그는 아침등산에 나와 동행한다. 홀로가 아닌 더불어 산행은 나를 무척이나 즐겁게 한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그는 꼭 무엇인가 채집을 한다. 들꽃이 보이면 한줌 꺾는다. 고추밭을 지나가면 들려서 고추 몇 개를 따온다. 하물며 톱을 가지고 와서 자기 산도 아닌데 나뭇가지를 정지한다. 나는 그냥 구경만 한다. 본래 나는 걸으면서 무엇인가 줍거나 따지 않는다. 그걸 해서 무엇 하나? 귀찮다. 설령 구해 본들 온전히 잘 간수하여 요긴하게 사용할 수도 없다. 특히 고추 같은 농산물은 더 그렇다. 내가 농산물을 좀 얻었다 하더라도 손수 그것을 다듬거나 요리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