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6 내 꽁지머리
지금 나는 꽁지머리를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머리를 길러 뒤로 매고 다닐 때는 많이 어설펐지만 지금은 좋아한다. 거울을 보고 머리 뒤에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면 가끔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꽁지머리를 하게 되었을까 하고.
캐나다 이민생활을 그만두고 고국에 귀국했을 때 일이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미장원에 들렸다. 보통 남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남성헤어전문점이었다. 그곳에서는 가격도 저렴하고 앉기만 하면 알아서 현재 유행하는 남자머리 스타일로 잘 깎아 주었다. 이민 전, 15년 전인가? 그때를 기억해 보면 지금의 남자머리 스타일은 더 짧아지고 더 세련되면서 더 단정했다. 마치 옛날 짧은 장교머리 비슷했다.
김정은헤어스타일과 비슷하게 앞머리는 나풀나풀 하게 뒷머리는 면도하듯 말끔히 깎는 사람도 많았다. 유심히 보니 이발사가 윗머리를 들고 아랫부분을 사정없이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후 윗머리를 손질하는 것이었다. 원장 사모님에게 물어보니 이것이 더 깎기 쉽다고 했다. 유행에는 북한 김정은도 한목을 했다.
남자들은 보통 짧은 스타일을 한다. 깔끔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1-2달에 한번은 머리를 손질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먹고 노는 주제이었다. 깔끔을 떨기 위해서 2달마다 남성헤어전문점이나 미장원에 들락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안 깎고 그냥 지냈다. 대충 머리를 관리하다 보니 주변에서 잔소리가 많았다. 사실 옷도 대충 걸치고 보니 그럴 만 했다. 나는 캐나다 스타일이라고 우겼는데 사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캐나다에서 지낼 때도 대충 입고 머리도 대충하고 다녔다. 길어서 불편하면 한꺼번에 잘똑 잘랐다. 캐나다에서 이발비가 다소 비쌌고 팁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곳에 돈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좀 자주 깔끔하게 차려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깎고 다녔더라면 아마도 나를 만나는 캐나다인들이 좀 더 나를 멋있는 놈으로 보았을 텐데.
한국에 머물면서 머리를 장발로 하고 다니니 점점 머리카락 관리가 어려웠다. 그렇게 기를 바에 차라리 머리를 묶어 다녀보지 하는 주변의 비앗냥 같은 충고가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묶어 보았다. 얼굴이 곱상하게 생겼더라면 보기가 좋았을 텐데, 야수 같은 얼굴에 꽁지머리가 붙으니 정말로 어색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꽁지머리를 하고 있는 동안 내내 불안했다.
가끔 마음이 상할 때나 울적할 때는 이놈의 꽁지머리 때문인가? 하고 꽁지머리에 시비를 걸게 되는 때가 있었다. 무엇이 생각대로 아니 되거나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놈의 머리를 싹 잘라 버려” 하고 성질부릴 때가 있었다. 사춘기도 아닌데 말이다.
아, 그래서 여성분들이 어느 날 머리 스타일을 확 바꾸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마다 그동안 용감하게 기른 노고가 아까워 참고 또 참고 길렀다.
그때 머리를 자르지 않고 고집을 부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내 주변에 나보다 나이 어린 많은 사람들이 대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조카도 그렇고, 아는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이마가 넓게 까진 젊은이들을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대머리가 아니니 대머리가 별 대수인가 하고 생각하였지만 대머리인 사람에게는 큰 고통인 모양이었다.
요즈음 가발이나 심는 머리가 크게 유행을 하고 있다. 미모와 외모를 매우 중시하는 현대인에게는 대머리라는 것이 큰 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들은 머리카락이 없어 난리인데 나는 머리가 길어서 고민이라, 흠 이것 참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것 대머리 사람보다는 못 생겨도 머리카락이 길어서 좋지… 남들은 큰 돈 들여 가발을 심기도 한다던데. 꽁지머리라면 특별해서 더욱 좋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바꿔 먹고는 계속 꽁지머리를 고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머리가 짧아 뒤통수에 고무줄 매기가 어려웠으나 이제는 충분히 길어서 머리를 매는 것은 아주 쉽다. 아침에 뚝 한 번만 매면 오후까지 그냥 유지가 된다. 아주 편하다. 주변 내 또래 사람들을 보면 몇몇은 백발이 무성하다. 아마도 검은 머리를 가진 친구들이라고 해도 분명 염색을 했을 것이다.
나는 흰머리는 좀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검은 색이다.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맛에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다. 나중 백발이 되더라도 염색은 안할 예정이다. 살아가면서 꼭 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더러 있다. 그 중 꽁지머리이다.
옛날 어머니께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머리단장을 했다. 물론 부지런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긴 머리를 뒤로 매는 사람은 아침에 머리단장을 하지 않으면 마치 머리 헝클어진 귀신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아침부터 사람들에게 스스로 보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나도 꽁지머리를 해보니 여인네가 아침부터 머리단장을 그렇게 꼼꼼하게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상투를 매는 남자들도 그랬겠지.
나는 혼자 방에 머물 때는 머리를 풀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 대부분 풀어버린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씻은 후에는 제일 먼저 머리단장부터 한다. 나의 머리단장이라고 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고 고무줄로 꽁지머리를 매는 것이다. 쓱 하고 매면 끝이다. 매우 간단하다. 그렇지만 하고 안하고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단정한 낭자 모습과 야수 같은 귀신 몰골의 차이다. 머리를 풀고 거울을 보니 정말 그랬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나의 머리스타일은 순탄치 않은 것 같다. 뭐, 70년대 그때야 까까머리 학생이었다. 중학생은 그렇다 치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남들은 폼 나게 앞머리도 조금 길게 하고 다녔지만 나는 항상 까까머리였다. 그때는 순동이었고 공부만 할 줄 아는 좀챙이였다. 그것이 그대로 대학교까지 연장되었다. 사실 머리 깎을 돈도 없고 촌놈이었기 때문에 한번 깎을 때 박박 밀었던 것이다.
대학초기에는 까까머리를 하다가 그 후 줄곧 머리를 깍지 않으니 당연 저절로 머리가 길어졌다. 대학생활 1년이 지났나, 친구가 가펀클(Simon & Garfunkel)의 올백 스타일을 흠모하여 올백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한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때는 나는 촌놈이라 사이먼과 가펀클이 누구인지 몰랐다.
대학 친구들은 나보다 최소 2-3살 많았다. 심지어 나보다 4-5살 많은 경우도 있었다. 나는 재수, 삼수, 혹은 사수도 아닌 바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을 들어갔으니 그랬다. 까까머리 촌놈에다 동료보다 어렸기 때문에 대학생활이 쉽지 않았다.
외관상 어려보이기도 하였지만, 사실 몸과 마음도 많이 어렸고 더욱이 깡촌 촌놈이 서울에 처음 왔으니 마치 북한 간첩이 내려와 서울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용기 하나는 기특했다. 나는 ‘서울’ 요놈하고 한 손아귀에 넣고 주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계속 대학을 다닐 돈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 2년을 겨우 마치고 군대에 지원했다. 사실 군대에 안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입영할 때 나는 머리를 미리 팍팍 밀고 논산훈련소에 들어갔는데 다른 놈들을 보니 죄다 머리가 길었다. 어떤 놈은 장발을 그대로 하고 들어왔다. 내가 정말로 순진하구나, 정말 말 잘 듣구나 하고 그때 좌절했다. 아 안가도 되는데, 아 미리 머리를 박박 안 밀어도 되는데. 이렇게 말 잘 듣는 놈은 어디 써 먹을 데가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여 다시 대학을 다닐 때였다. 친구가 동료들에게 파마를 해보자고 권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었으나 나는 과감하게 해보기로 했다. 나는 완전히 빠글빠글 파마 아주마가 되어버렸다. 모든 친구들이 웃었다. 그 시절에는 장발이 유행했는데 대학생 남자가 파마를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이 파마한 친구는 부유했다. 잘 손질하더니 금방 파마가 보기 좋았는데 나는 그대로 계속 두었다. 빠글빠글 파마가 길어지니 그 모양은 가관이었다. 그 모습으로 고향을 가니 “너 뉘고?” 했다.
그 이후로는 다시 스포츠머리를 주로 했다. 연애와 멋보다 시간과 돈이라는 경제성에 우선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예기치 못한 불편함이 생겼다. 거리에서 혹은 버스를 탈 때에 수시로 경찰관이 검문했던 것이다. 다행이 어려 보여서 매번 버스는 고등학생 요금을 받았다. 아니 내가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우겨도 신기하게도 운전수는 고등학생 요금을 적용하여 계산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마도 그때 스타일에 잘 맞추었던 것 같았다. 직장인의 머리 스타일이 별 것인가? 뻔했지 뭐…
이민을 갔을 때는 처음에는 머리를 좀 관리하다가 사업이 엉망이 되면서 머리스타일도 엉망이 되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랐던 것이다. 이민 중후반기에는 어린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하였기에 좀 신경을 섰다. 자주 깔끔하게 머리를 깎고 다녔다. 가끔 단정하게 파마도 했다.
이민을 마감하고 한국에 귀국하였으면 좀 눈에 잘 안 띄고, 평범하게, 표 안 나게 살 것이지 별스럽게도 이제는 꽁지머리를 하고 살고 있다.
한국 스타일은 좀 특별하다. 옷을 입는 스타일이나 머리스타일, 그리고 눈에 보이는 생활스타일은 다 비슷비슷하다. 유행한다 하면 사람들은 부나비같이 따르니 모두모두 비슷할 수밖에. 그래서 좀 색다르게 하고 다니면 남과 다르게 눈에 띈다.
남다름은 사람들의 소주 안주감이 되고 커피 잡담거리가 된다. 그런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특별히 의도해서 남다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특히 내 꽁지머리는 그렇다
사실 옛날에는 ‘머리스타일을 어떻게 하는가?’ 가 신분을 결정했다. 머리 볼륨이 크면 클수록 신분이 높았다. 그곳에 장식을 하면 또한 장식만큼이나 신분이 높았다. 비슷한 예로 장탉의 벼슬은 붉고 크다. 그것은 권위를 상징한다.
가끔 낯선 사람을 만나면 꽁지머리를 하고 있는 나에게 선입감을 갖는다. 뜬금없이 ‘무엇 하시냐?’고 물어본다. 이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미술 하시느냐?’ 하고 물어본다. 이때 역시 나는 헷갈린다. 좋은 말인지 아닌지. 내가 우아하게 옷을 차려 입고 우아한 장소에 있었다면 좋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작은 내 사무소에서 대충 입은 내가 그런 말을 받을 때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분위기에 안 어울린다는 뜻일 게다. 아닌가, 글쎄다.
잠깐 부동산 중개사 일을 했는데, 이 업종은 나도 알고도 헷갈린다. 원칙도 없다. 그냥 세일즈 업종이다. 잘 연결만 하면 된다. 사람은 좋은 물건 샀다고 생각하면 내가 잘나서, 조금이라도 잘못 구매했다고 생각하면 ‘너 탓이야’ 하고 어떻게든 시비를 건다. 좋은 일로 기억할 리는 없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꽁지머리 한 그놈” 말부터 나올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남다르게 보이는 꽁지머리는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다. 어떠면 어때, 이 나이에 그것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있다 해도 ‘괜찮아’ 하고 이제는 무시한다. 내 사무실에 나 혼자 내 주관대로 소신껏 일을 하는데 그런 선입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것 때문에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해도 이제는 무시한다.
순하고 푸근한 얼굴 형상은 적당히 말해도 영업활동에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내 인상은 날카로운 형상이라 조금만 잘못 말하면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고 가끔 오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점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말을 삼가 하거나 말을 할 때 항상 조심한다. 꽁지머리를 한 사람은 평범하게 보이지 않으니 조금만 잘못해도 상대방이 오해할 수가 있다. 반면 강직하다는 선입감을 잘 이용하면 사기 정도는 쉽게 칠 수 있기도 하다.
한번은 가끔 가는 홈플러스(HomePlus) 매장에서 어슬렁거렸다. 한 코너 판매원이 나에게 와서 인사를 했다. 각자 마스크를 쓴 상태이니 서로 서로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판매원 아주머니는 금방 나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저인지 아세요? 물어보니 그분은 내 꽁지머리를 보고 알았다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꽁지머리는 많은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이함이 있기에 사람들의 기억에 쉽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일을 할 때는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좋지 않는 일에 관련된다면 이는 치명적인 불편함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밖에서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은퇴하여 고향 시골주택에서 시간에 파묻혀 살 예정이니 그때는 사람 만날 일도 별로 없다. 뭐, 잔소리 할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성가시게 할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다. 그래도 혼자 살면 나에게 관심을 두는, 혹은 말을 건넬 수 있는 잔소리 같은 뭔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람 모습이 참으로 중요한가 보다. 머리가 짧으면 남자들은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다. 보더라도 건성으로 본다. 나는 머리를 뒤로 고무줄로 매야 하니 좀 더 자세히 거울을 보게 되고 좀 더 자주 거울을 접한다.
머리를 맬 때마다 귀신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내 모습에 문득 놀란다. 이때마다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본의 아니게 보게 된다. 머리까락이 깔끔하게 뒤로 나란히 줄지어 넘어간 내 얼굴을 보면 저절로 나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거슬리는 언행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잔소리꾼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꽁지머리는 괜찮기도 하다. 또 다른 이유를 붙여 보면, 관리하기 쉽다. 예쁘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계속 꽁지머리를 하고 살련다. 아니 이것은 나는 내 가치관대로 내 식으로 사겠다는 옹고집의 징표일 수 있다. 어떠면 어때.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관이, 확실히 이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리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꽁지머리가 어떤 선입감이 있든 말든 이제 이 나이에 그렇게 사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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