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2 우리는 무엇으로 제사를 지내는가
3월 중순을 넘기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벚꽃이 핀다. 봄이 오면 만물에 생기가 돈다. 젊고 싱싱한 것에는 축복이 되지만, 시들어 가는 것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늙은이들에게는 봄에 사고가 많이 난다. 내 아버지 어머니는 봄날에 돌아가셨고, 누님도 그렇다.
2월 17일(음력)은 누님 제삿날이다. 양력으로 따지면 올해는 3월 19일이다. 즉 이날 밤 0시가 지나자마자 몸 단정히 차려입고 음식을 두고 사자를 모셔 제사를 지낸다. 어둡고 고요한 시간이다. 돌아가시고 만 1년이 되는 첫 날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법으로 따지는 제삿날이다.
우리 집은 맏이 집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제사가 있었다. 그때는 막 근대화 시절이라 제사 트라우마 같은 부작용이 없었다. 삼촌과 사촌들이 큰 집인 우리 집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먹었다.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아침을 드시고 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이렇게 제삿날에는 왁자지껄했고 그 즐거움은 매우 컸다.
제사에 꼭 참석하는 것, 이때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 그리고 음식과 술로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즐기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가족구성원이 당연히 해야 하는 예법이었지만 그때는 자발적인 동참 성격도 많았다.
제사에 오니 즐겁고, 반갑고, 또한 먹을 것과 술도 있고, 그래서 동이 틀 때까지 놀았다. 해야 되는 예법이었지만 그때는 가끔 있는 즐거운 모임,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모임이었다.
나는 항상 주장하는 것이 있다. 가정의 행사는 자발적인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파티 같은 성격의 모임 말이다. 옛적 봉건주의 시절에는 경제와 권위는 토지에서 나왔다. 토지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토지는 대대로 혈족을 타고 전달되었다. 경제력을 얻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가족과 왕국을 떠나 나 혼자 경제과 권위를 갖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 가정에서 부모의 의사와 예법에 반하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예법은 그렇게 질서를 위해서 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례 되었다.
이제 경제와 권위는 토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업, 공업, 노동에서도 나온다. 부모와 나라를 떠나 개인 혼자서도 얼마든지 경제와 권위를 만들 수 있다. 자유, 경제, 다양의 시대이다. 부모의 룰도 국가의 룰도 인본주의에 벗어나면 그 권위는 없어진다. 지금은 봉건적인 예법을 따르지 않아도 경제와 권위에 실질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식도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으며, 여자도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예법만으로 통제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한 이유로 오늘 날 이런 과거의 예법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물리적으로 억지로 하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억지로 하면 감정적 상처만 생긴다.
내 젊었을 때 형님에게 제사를 0시에 지내지 말고 저녁을 먹을 때 지내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왕 저녁 먹을 시간에 제사를 지내고 바로 밥을 먹을 수 있고, 그리고 참석자들이 느긋하게 즐기고 돌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형님은 단번에 말 같지 않는 소리라고 호통 쳤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렸다. 이제는 형님도 다음 날 저녁에 제사를 지낸다. 결국 세상이 변하여 어쩔 수 없을 때 변하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또 제사 음식은 간소히 하고 참석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하자고 하였다. 그날에는 평소보다 좀 나은 저녁상으로 제사를 지내고 그것으로 저녁요기로 삼자고 하였다. 형님은 단번에 자손이 되어 그런 성의로 제사를 지낸다 말인가? 라고 호통 쳤다. 이 말에 나는 또 나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제사 음식은 돈도 많이 들지만 힘도 많이 들고 정성도 많이 든다. 제사 때 제주는 이렇게 힘들여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와야 할 사람이 안 오거나 와서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당연 실망한다. 실망하니 예법으로 다스린다. 부모 조상 제사에 예법도 모른다고... ... 이런 식으로... ... 사람 마음 다 그렇기에 제주의 마음도 당연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두 번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지만 점점 참석자가 줄고 오더라도 해야 할 절차가 끝나면 바로 돌아간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돈 봉투로 생색을 낸다. 부모 제사라도 절차만 끝나면 바로 돌아가려 한다. 추석 스트레스이니 명절 증후군이니 하는 증상도 생긴다. 저절로... 이렇게 참석자는 형식적으로 제사에 오는 경향이 커진다.
예법과 방법 때문에 우리는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조상 제사를 막 대놓고 부정을 못하는 것은 나도 자식이라는 체면과 자식으로서 최소한 예법은 지켜야지 하는 자기 위안 때문이다. 돌아가신 분에게 ‘내가 이 정도도 못해’ 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런 형식으로 자기를 포장한다.
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의 첫 해이다. 첫 제사이니 나는 많이 기대가 되었다. 사자를 만나는 기쁨보다는 사자의 자손들을 만나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나에게는 누님의 자손들이다. 그들에게는 친밀한 외갓집 삼촌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던 사이이다. 그래서 그날은 모두 모여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밤늦게까지 보내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녁 시간에 제사를 지내고 제사상을 물려 그것으로 저녁을 먹고 바로 다 일어섰다. 돌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부산이나 대전에서 경주로 제사 지내려 왔다. 다 직장이 있다. 다 바쁘다. 그래, 맞다.
그들이 골프를 칠 때는 그런가? 친구 만날 때도 그런가? 어떤 모임에 가서 그럴까? 나는 멍했다. 이렇게 제사 지내고 밥 먹으려고 내가 여기 왔던가?
자유, 민주, 개성, 다양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제사 같은 전통적인 예법이 빛을 발하려면 자발적 유도를 꾀하여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제사를 지내는가?
“오고 싶은 행사여야 한다. 부담이 없어야 한다. 한가한 시간이어야 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된다. 작은 재미라도 있으면 된다. 주체자는 자기 형편대로 하면 된다. 잘 하고 조금이라도 실망하면 안 되기에 실망이 생기지 않는 범위에서 편하게 열면 된다. 주체자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즐겨야 한다. 그래야 참석자들이 부담을 안 느낀다. 그러려면 제사는 간단해야 한다. 서빙이라는 개념이 없는 뷔페식이어야 한다.
제삿날이 정해 있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가하다고 할 때로 정하는 것이 맞다. 귀신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다. 마구 바꾸어도 귀신은 그냥 안다. 언제든지 쉽게 올 수 있는 것이 귀신이다.
음식도 배 안 고플 정도로 요기할 수 있으면 되고, 모임놀이도 참석자의 입맛에 맞추면 된다. 참석자가 많으면 끼리끼리 모일 것이고, 음식과 음료는 준비된 범위 내에서 알아서 퍼거나 부어서 먹고, 혹은 병째 마실 것이다. 마치 파티처럼 말이다. 배달 천국이다. 필요하다면 스스로 구할 것이다. 평소에도 잘 먹는데 제삿날에도 특별히 잘 먹을 이유는 없다.
제삿날이 노는 날인가? 그래 놀고 즐기는 시간이다. 놀다 보면 사람 따라 누구는 회상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혹은 반성의 시간이 되겠지. 누구는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혹은 즐기다 보면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하겠지. 제사 취지는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속으로 한 가지 제안을 해 보았다. 윶 판에서는 깔판만 챙겨주면 된다. 제사를 휴일에 가족끼리 돌아가면서 자기 형편대로 자기 식으로 열면 어떨까? 필요하면 포트락(potluck, 각자 작은 음식을 만들어 가져와서 나누어 먹는 파티)을 겸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면 내년에는 부산 딸내 집에서 각자 조금씩 준비한 음식을 상에 놓고 그리고 조상을 생각하면서 즐긴다. 필요하면 배달음식도 시킨다. 그럼 마음 따라 누구는 일찍 가고, 누구는 밤늦게 즐기고 가겠지. 다음 날 내키면 부산 관광도 할 수 있겠지. 가족 형제가 서로 즐거우면 무엇이 대수인가?
각자 형편대로 머물겠지만 일부러 서둘러 가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나 늦게까지 재미있게 즐기는가는 그날 호스트의 친절과 절차와 체면을 안 따지는 모임의 편한 함이겠지. 제삿날에는 가족의 즐거운 시간이 우선이다. 사자는 아마도 이것을 원하겠지.
사자가 음식을 먹겠어, 오기야 하겠어. 다 산자가 만든 개념일 뿐이다. 살아남은 자를 위한 파티가 되어야 하는 데 우리는 과거의 개념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짐을 부치고, 온마리 생선과 국을 놓고, 법주 따르고 그리고 절차 따라 절을 한다. 이것이 다이다. 먹지도 않을 음식을 두고 말이다. 이는 제사의 본래 취지를 망각하고 제사만을 위한 예법이다.
첫 제사마저 이렇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끼리 진정한 만남의 시간은 점점 없어진다. 나부터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그 날을 손꼽아 기대하지 않겠지. 그러다 보면 나도 최소한 체면치레만 하겠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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