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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30428 받은 상장을 빼앗기다

Hi Yeon 2023. 4. 28. 17:35

230428 받은 상장을 빼앗기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었다.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전에 반에서 우수한 한 학생에게 최고의 상장을 준다. 몇몇 학생이 개근상(그 당시 개근하기가 어려워 개근상이 있었다)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우수상장을 받을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자 나는 엉겁결에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받고 보니 상장이었다.

 

무슨 상장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내가 상장을 다 받다니...엄마에게 자랑해야지

 

너무 좋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상장을 가슴에 품고(그 당시 애들은 상장을 받으면 가슴에 안고 제자리에 돌아왔다) 내 자리로 돌아 왔다. 그 순간 반에서 갑자기 작은 혼란이 생겼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를 부르고 내가 품고 있던 그 상장을 빼앗았다. 그리고 바로 다른 학생에게 주었다. 다른 학생이란 같은 반의 내 사촌이었다.

이때 작고 못 생긴 한 아이가 소리 없이 몰래 울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아마도 이 아이의 인생흐름을 180도 바꾸었다.

 

몇 개월 후 삼촌(그 사촌의 아버지)은 경주시로 발령이 났고 삼촌 가족은 경주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때 뜸금없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물었다.

 

너 도시에서 공부해 볼래?”

 

, 아버지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내 아버지는 문중의 보스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원하면 할 수 있었다. 내 답을 듣자 바로 아버지는 삼촌에게 경주시내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나를 데리고 가도록 하였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주거지와 관계없이 전학하는 영광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삼촌 집에서 살면서 사촌들과 같이 먹고 자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그곳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경주에서 먼 읍내 살았다. 아버지는 8남매의 장남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동생들을 돌보았고 출가시켰다. 우리 가족은 7남매이다. 사촌들을 합하면 그 수는 무척 많았다.

 

어머니 나이 38세에 나를 낳아, 나는 7남매의 6번째이다. 밥도 먹기 힘든 시절, 중년에 나를 뱃속에 두고 힘든 집안일과 장손 며느리로서 일을 해왔다. 뱃속에서 내가 얼마나 벌랬는지 어머니가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겨우 세상에 나왔으나 매우 메마르고 비실비실했다. 어머니 말로는 너무 힘든 시절에 못 먹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부모님이 돌보아야 할 자식들이 많고, 뿐만 아니라 형제들까지 보살폈기 때문에 사실 아버지가 사랑을 베풀고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우리 가족에게 돌아올 것은 그만큼 적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막내 축에 드는 나는 작고 가늘고 말이 별로 없는 꾸중물 줄줄 흐르는 개구장이었다.

 

아버지 형제 중 두 번째 동생(나에게는 두 번 째 삼촌)은 다행히 읍면사무소 공직자였기 때문에 아버지 그늘에서 벗으나 그 당시 풍족하게 살았다. 그 삼촌에게 첫 아들(나에게는 동갑내기 사촌형제)이 있었다. 그 사촌은 첫 아들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그 당시로는 잘 차려 입었고, 읍내에서는 가장 잘 생기고, 토실토실하고, 공부 잘하여 애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반장 회장까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허름한 옷을 입었고, 체구는 작고 삐쩍 마른 몸매에 얼굴마저 못 생긴 막내였다. 아버지는 교육받은 읍내 유지이고 장손으로 문중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아버지는 형제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따랐다. 다행이 그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그래, 그 댁 막내아들이구나!”하면서 나를 알아주었다. 그래서 그때는 나도 아버지만큼 대단한 줄 알았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렸다.

 

정연배?”

 

나는 이때 처음으로 상장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 사촌에게 주어야 할 상장을, 단지 하나의 모음만 다른, 이름 때문에 혼돈한 것이었다. 내 사촌 이름은 정연부

 

내 형제들은 모두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도시로 갔다. 그때 선생님이 나에게 상장을 빼앗지 않고 추가로 상장을 하나 더 만들어 내 사촌에게 주었더라면, 그때 어린 아이는 울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쉬이 부모를 떠나 감히 혼자 도시로 나갈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