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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01103 나는 자주 깜박한다

Hi Yeon 2024. 1. 17. 14:04

201103 나는 자주 깜박한다

 

캐나다 이민생활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우리도 아파트에 월세로 살았다. 아파트라고 해봐야 띄엄띄엄 지어진 넓은 잔디 위의 33-4호 아파트였다. 그나마 빌딩 속의 아파트가 아니어서 좋았고 주변환경이 빌딩형 아파트보다 그 수준이 높았다.

이민 초기에는 낯선 곳이고 이국이라 출타 중에는 아파트 문을 꼭꼭 잠그고 다녔다. 중고 자동차를 구입하여 자동차 운전도 원칙대로 하고, 주차도 잘하고, 자동차 문도 꼭꼭 잘 잠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경직된 생활이 느긋하게 되었다. 내 성격이 급하고 어떤 때는 대충대충 하는 성격이라 아파트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나가거나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는 채로 일을 보곤 했다. , 집안에 돈 되는 물건이 없었고, 있어 봐야 거라지 세일에서 구입한 중고물품 정도였다. 남이 보기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의 물건도 없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동차도 중고이고 자동차 안에도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었다.

 

처음에는 복사한 아파트 문 열쇠 여러 개를 준비하여 애들에게 주면서 나갈 때는 반드시 꼭 잠귀여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지만, 애들은 따르지 않았다. 학교가기가 급하다 보면 그럴 수 있었다. 애들이 아닌가? 심지어 아파트 문이 열린 상태로 있는 경우도 많았다.

 

어느 날 오후 집에 돌아와 보면 집에는 아무도 없고 문만 덜렁 열린 채 있는 것이었다. 애들에게 잔소리를 여러 번 하였지만 효과는 없었다. 애라, 모르겠다 하고는 나도 신경을 껐다. 살다보니 나도 외출할 때 아파트 문만 닫고는 잠그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버릇이 되어 자동차문도 잠그지 않았다. 집에서나 시내에 주차할 때 그냥 문만 열면 되고 문만 닫으면 되었다. 집 문도 그랬다. 얼마나 편한지.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을 구입하여 이사를 했다. 이런 버릇은 계속되었다. 내 단독주택은 다운타운 안에 있었다.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기가 매우 편했다. 매일 애들도 들락날락, 그들 친구들도 들락날락거렸다. 이건 통재 불가능했다. 문을 잠그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하고는 한 가지만 부탁을 했다. “애들아 제발 외부 문이라도 닫고 다녀라, 만약 그 문이 계속 열려 있으면 보기에 이상하지 않겠니?”

 

사실 집 안의 국보 1호는 55인치 TV였으니까? 아니 내가 그린 벽에 걸린 그림액자도 있었지. 누가 이런 것을 가져가겠어. 사실 캐나다 작은 도시에서, 그래도 주의 수도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지만 살 동안 분실된 것은 없었다. 매우 편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민가기 전 한국생활에서도 그런 나의 생활습관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파트 문이야 꼭꼭 잠그고 다녔지만 자동차 문은 잠그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였다. 현장출장을 자주 가야 하는 직업 때문에 문을 안 잠근 채 자동차를 대충 주차하고 일을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 차가 중고차였고 그 당시에는 느슨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아마도 이런 나의 습관과 성격 때문에 이민을 한 후에도 계속 행동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캐나다 이민생활에서 뭐 그리 내 것이라고 챙겨야 할 것이 없어서 대충 생활한 것 같기도 하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내에 나가서 급히 지리를 뜰 때 내 가방을 챙겨야 하는 데, “잠깐이면 돌아오는데하고는 가방을 자동차에 그냥 두고 내 볼 일을 보곤 했다.

내 치밀한 성격에 이렇게 덜렁대고 대충하는 것을 보면 나도 이해불가능이다. 그렇게 생활해도 하나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타성에 젖었지 않나 생각된다. 2016년도 캐나다를 떠날 때까지 내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한국에 귀국하여 1년이 지났다. 낙심한 일이 있어 한잔 술을 걸치고 자동차에 중요한 서류박스를 둔 채 귀가했다. 아마도 그때 자동차 문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곳 아파트 단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락가락하는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단지였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서류박스가 없었다. 그 박스 안에는 중요한 이민서류와 여권서류, 그리고 나의 개인서류가 있었다.

 

그 당시에도 아파트에는 군데군데 CCTV가 있었다. 경찰서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그들에게는 일부러 바쁘게 하면서까지 장시간 CCTV를 확인할 의욕이나 성의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마냥 퉁퉁거렸다. 여러 번 찾아가 부탁도 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 알았어요하는 말 한마디만을 듣고는 나는 돌아서야 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자동차에 중요한 물건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자동차를 홀로 둘 때는 꼭 문을 잠갔다. 그러나 일을 보고 자동차에 돌아와 보면, 간혹 자동차 문은 잠갔지만 자동차 창문이 열려 있거나 자동차문 자체를 잠그지 않은 때도 종종 있었다. 어떤 때는 자동차를 대충 주차하다가 딱지를 떼기도 했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 요즈음 다 그렇겠지. 얼마나 편한지. 그냥 나오면 문은 자동으로 잠긴다. 아파트 창문도 그렇다. 환기하다가 닫기만 하면 자동으로 잠긴다. 내 덜렁 성격에 딱 맞다. 그런데 자동차를 그렇게 해 놓았다가 낭패를 본적이 있어 나는 자동차를 잠글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리고 그 다음 손수 잠그도록 한다. 이때 가끔 깜박할 때가 있다. 집에 들어와서 쉬고 있으면 관리아저씨로부터 자동차 문이 열려 있으니 잠그세요.’라는 전화를 간혹 받는다.

 

사무실에는 나 혼자 근무한다. 출장을 가서 돌아와 보면 문이 그냥 열린다. 나갈 때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1시간 정도의 잠깐이니 그냥 넘어갔다. 며칠 전 고향을 다녀왔다. 12일 여정이니 사무실을 비운 기간은 32일이다. 그 사이 택배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 택배원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옆집에 두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무런 연락도 소식도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출근했다. 문이 그냥 열린다. 사무실 안에는 택배 물건과 여러 광고지, 그리고 누군가 들락거렸던 흔적도 있다. 아뿔싸, , 그런데 내 여러 은제공예품들이 책상 위에 그대로 뒹굴고 있는데, 가격을 따지면 대단한데, 그런데 대충 훑어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다 그대로 있는가 하고 따져 볼 수가 없었다. 대충 보니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요즈음 쉽게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경우는 없어 보인다. 특히 세종시는 그렇다. 최근에 개발된 도시이다. 구석구석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한마디로 꼼짝 마이다. 아마도 나는 이런 환경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가 나면 경찰이 내일처럼 해주는 것은 아니다. 확인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상 조심해야 되지만 이제는 그냥 깜박한다, 문 잠그기를.

 

나는 간혹 이마나 얼룩을 잘 다친다. 나가다가 문이 있는지 모르고 그냥 나가다가 이마와 문이 충돌한다. 생각 중이거나 손이 무엇인가 하는 중에 고개를 들다 보면 머리를 찍곤 한다. 나가다가 앞에 단이 있는지 모르고 발이 걸려 넘어진다. 캐나다 예술대학에 다닐 때는 심했다. 주변이 항상 있는 그대로가 아니면 나에게 심심찮게 문제가 발생했다. 프레스에 손가락을 넣고 스위치를 On한다든가, 뒤통수를 박는다든가. 머리를 문짝에 박는다든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넘어진다든가

 

평소 머리에 좋은 디자인이 생기면 눈에 그것만 보인다. 이민 전에 내가 설계업을 할 때도 그랬다. 내 머리 속에서는 항상 선과 면으로 구성된 공간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고 보면 내 눈 앞에 벽이 있었다.

 

무엇인가 할 때는 나는 생각에 젖어 주변 상황을 간과하는 모양이다. 남들은 눈치가 없다고 핀잔을 준다. 나쁜 말이겠지. 그때는 바로 앞의 문짝을 못 보고 이마를 찍지만 문짝너머 세상도 간과하는 것 같다. 사람을 보지만 몰입할 때는 사람 마음을 못 보는 것이다. 순간 깜박한 것이겠지.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 눈치가 없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한다. 내가 노망기가 있나? 건망증이 심한가? 하고 스스로 의심하면서 그래, 그럴 수 있지 뭐하고 스스로 변명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머리속의 현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런가? 아마도 집 문을 잘 잠그지 않는 것도, 자동차 문을 잘 잠그지 않는 것도, 그리고 사무실 문을 간혹 열어둔 채로 출타하는 것도 나의 게으른 성격이나 혹은 타성에 젖은 나쁜 습관이라기보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내 머리 속에 또 다른 깊은 생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눈앞에 있는 현상을 보지 않고 머리 의 환상에 몰입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내가 상대의 눈치를 많아 보는데 상대 마음을 읽기보다 상대를 피해서 그런가? 특히 어떤 일에 몰입할 경우는 상대 마음을 간과했겠지. 그것은 몰입할 때는 다른 것에 덜렁덜렁 하는 급한 성격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