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2 톨스토이(Leo Tolstoy)와 반지
애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때의 가장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산업전선에 충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당연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과거 우리 시절에는 절대적인 선이었다.
이제 살만하니 본인도 가족도 자기만족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분출한다.
당연 서로 간 충돌이 생긴다.
애초에 가장이 경제적인 가족부양에 아니 충실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글쎄다.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이제 복지사회 안에 있으니 우리 사회도 이와 똑 같은 것 같다.
사자 새끼는 자라면 스스로 사냥을 해야 한다.
내가 서양 물을 먹어서 그런가.
나만 챙기면 되니, 나는 자유롭다.
내가 총각일 때 시골 가난한 촌놈이 메이커 옷으로 폼 내고 다녔다.
서울물 먹다 보니 그랬다.
가족 부양시절에는 어림없었다.
그런 것이 조금 불만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제 간혹이라도 메이커로 폼 낼 수도 있다.
형편이 안 되면, 짜가로 얼마든지 치장할 수 있다.
이제 그런 욕망은 없다.
노년이라 철 들 때이기도 하다
잘 못 입고 잘 못 먹어도 불평은 없다.
내 형편이 그런 수준이니까 말이다.
그것보다 이제는 그런 곳에 삶의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서양 물을 좀 먹었나 보다.
옷은 가릴 수 있고,
먹는 것은 영양수준 이하 아니면 되고,
잠은 내 폼대로 잘 수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말이야. 요놈의 마음은 쉽지 않다.
젊을 때는 내내 술을 달고 다녀도
매일 내 좋아하는 테니스장에 살아도
밤늦게까지 작은 노트북을 붙잡고 일을 해도 견딜 만했다.
별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안 그렇다.
작은 돈이지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은 풍성하다.
이렇게 옵션이 많기에 생각도 고민도 많다.
한 달 잘 규칙적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스스로 무너지기도 한다.
한 달 잘 마음잡고 의미 있게 살다가 어느 날 삐뚤어지기도 한다.
그때는 소주 한 병 먹고 달래 보기도 하고
밖에 나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해봐도 안 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되기는 한다.
이때는 이렇게 규칙적으로 마음 다잡고 살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나기도 한다.
내 별 수 있나
결국 인생 별것 있나 하며 마을을 달래고 다잡는다.
책상에는 빨간 책장의 톨스토이 책(Wise Thought for Every Day)이 있다.
고마운 분이 보낸 것이다.
간혹 읽는다.
그때마다 잠깐 효험이 있다.
그러다가 책상 위에 그 책이 있는 데도 그 존재를 잊는다.
책상 위에 그놈이 있는 데도 눈에 비치지 않는다.
무슨 묘안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
갑자기 미친 놈 같이 작업대에 앉는다.
자르고, 자르고
정리하고, 정리하고
조립하고, 조립하고
은용접...
그리고 자르고, 샌딩
광내고...
이렇게 반지가 탄생했다.
요것을 손가락에 두면 아니 보려도 보인다.
보면 뭔가 들린다.
잘 모르지만 그것이 뭔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정확히 모르지만 톨스토이처럼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뭔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눈을 크게 부렵 뜨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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