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으로 제로에너지주택을 지어라
3년 전인가? 고향에 가서 살아보고자 경주를 방문을 하였다. 마침 고향 전원지역에 작은 땅을 후배로부터 소개를 받았다. 기존 허름한 기와집이 있는 80평정도 작은 땅이었다. 근처 대단위 원룸 주거지와 상가가 있고, 시내버스 노선도 있어, 자동차로 20분이면 울산과 경주 시내로 갈 수 있었다. 나는 5천만 원이면 착한 가격이라 생각하고 덜컥 매입했었다.
2023년 이른 봄, 그곳에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철거비용으로 1000만원이 들었다. 그것도 후배에게 부탁하여 최저가로 한 것이었다. 주택과 사무소가 있는 전원건물에서 나의 로망이었던 설계사무소를 운영한다고 생각하니 신이 났다.
내 집을 내가 설계하는 것은 건축가만의 특권이다. 설계를 끝내면 마음이 변하고, 고민하고, 그때마다 또 설계변경을 했다. 작은 집이지만 모형도 만들어 보았다. 설계하는 데 내 노동이 필요하지만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수십 번도 더 설계를 했다. 세상에 그렇게 자주 설계변경 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공무원이 투덜댔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의 그림 같은 집… 사람 사는 곳이란 이런 곳이 최고인가? 글쎄다. 경치가 좋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의 집은 딱 6개월이다.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정을 못 느끼면 아무리 미인이라 한들 6개월이다. 사람 얼굴만 보고 살 수는 없다.
내 집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는 작은 밭이 보이고, 좌우 뒤는 시골마을 집이 있다. 앞으로 저 넘어 개울이 있고, 그 넘어 5층 아파트가 보인다. 밤이면 불빛이 반짝인다. 저 너머 강뚝 도로에는 자동차가 지나가고, 가끔 불빛이 반짝인다. 걸어서 상가에 갈 수 있고, 시내버스 정거장에도 갈 수 있다. 경주 시내, 혹은 울산 시내는 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다. 경치 좋은 전원주택이라기보다 작은 도시에 붙은 밭이 있는 촌동네이다. 막상 살아보니, 조용하고 전원 같은 곳이면서 주변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좋았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동네이구나 하면서…
설계와 시공의 기본 방향은 제로에너지주택이었다. “외부와 내부의 열 이동을 제로로 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주요용도(안방, 작은방, 거실, 작업실)를 햇볕이 충분히 받도록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반대편 북측에는 보조용도(욕실, 안방욕실, 보일러실, 다용도실)을 배치하였다. 햇빛을 받는 남측은 충분히 햇빛을 받고, 햇빛이 없는 추운 북측에는 보조용도 공간이 이중으로 막고 있어, 겨울에는 단열과 방음효과가 탁월했다.
연면적 25평이라는 작은 면적에 방2, 거실, 작업실, 주방, 욕실2, 다용도실, 창고, 다락… 실은 많다. 그래서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서 실마다 남측으로 큰 창문을 두었고, 실마다 천정높이를 다르게 하여 단조로움을 없앴다. 벽, 천정, 싱크대, 북박이 가구, 창문 … 내부는 흰색 톤으로 하여 전체적으로 밝게 하였다. 25평이라는 넓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5평 다락을 두었다. 이렇게 하니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이 되었다. 겨울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도 내부는 따뜻하였고, 실면적보다 창문이 큰 실은 겨울에는 난방이 없어도 정말 따뜻하였다.
벽과 지붕 시공에서 단열성능을 높이고 열이동(Heat Bridge)이 전혀 없도록 했다. 보통 건물은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부와 외부 사이 열이동이 생긴다. 철골구조라 하더라도 내부 뼈대가 외부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고, 지붕철판은 으레 내부와 외부가 서로 연결된다. 아무리 단열을 해도 철판의 열전도로 실내로 냉기가 들어온다. 창틀(단열창틀이라 해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뿐인가? 바닥으로부터도 냉기가 들어온다. 아무리 시공을 꼼꼼하게 하여도 그렇다. 겨울 난방을 하면 이런 열이 빠져나가 아마도 연료비가 30% 이상 허비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시공자는 거짓말이라고 펄펄 뛸 것이다. 겨울에 난방을 하고 지내면 구석구석 이슬이 맺힌다. 눈에 보이는 곳도 있지만 안 보이는 내부 결로도 많다. 그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곰팡이가 핀다. 열손실과 함께 곰팡이와 습기를 평생 안고 사는 것이다.
철이나 콘크리트는 열을 전달하는 데는 일등공신이다. “Cold Bridge(외부 찬기가 내부로 구조체를 통하여 내부로 전도되는 현상)를 없애라.” 그래서 외부와 내부로 연결되는 어떠한 구조체(콘크리트와 철 부재)를 없도록 시공했다. 건물에 붙는 발코니, 차양, 부속건물, 외부바닥을 만들지 않았다. 본집에 이런 용도를 덧붙이면 일괄시공으로 공사비를 낮출 수 있고 주택 편익성이 매우 높아진다. 그러나 나는 모두 포기했다. 그 대신 집 완공 후 필요한 부분을 별도로 시공했다.
처마도 완전히 없앴다. 지붕패널과 벽패널, 벽패널과 벽패널이 만나는 부분은 45도로 잘라서 교차시켰다. 외부 패널철판은 외부 패널철판만 서로 만나고, 내부 패널철판은 내부 패널철판만 서로 만나도록 하여 그 사이 단열재만 있도록 했다. 그렇게 시공하니 집이 완전한 박스모양이 되었다. 사실 건물이 복잡한 형태이면 그만큼 시공이 어렵고 열손실도 많아진다. 가장 단순한 사각박스 형이 최고이다. 아름다운 형태미도 단순한 기하학형태에서 나온다.
겨울이 되면 기초철근콘크리트판 부근 땅이 영하 이하로 내려간다. 당연 철근콘크리트 기초판도 영하로 내려간다. 그 기초판 냉기가 바닥으로 내부에 유입된다. 즉 밑으로 빠지는 열은 엄청나게 된다. 보통 단열재를 깔고 기초판을 시공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철근콘크리트와 건물 무게로 단열재가 줄어들고, 습기에 의해 단열성능은 저하된다. 그리고 철근콘크리트 기초판은 바로 외부에 노출되어 단열성능은 극히 나빠진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기초판을 시공하고 그 위에 단열재를 깔았다. 그리고 외벽 단열재를 기초측면까지 덮었다.
겨울에 내 집 내부에서 외부로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본다. 겨울 햇빛으로 내부로 유입되는 온기만 있을 뿐이다. 사실 태양열 발전기보다 더 효율이 좋은 것이 겨울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다. 전체적으로 열용량이 작고, 열손실이 거의 없어, 내 집은 겨울 저녁에 조금 난방함으로서 충분하다.
건물 출입방향을 고민했다. 건물정면이 아닌 건물 뒤쪽으로 주출입구를 정했다. 출입구를 정면 남향으로 정하면 귀하디귀한 남향면적이 그만큼 없어진다. 그리고 집 앞 정원의 프라이버시가 나빠진다.
집 앞으로 출입문을 내는 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방법이다. “어째 출입문이 집 뒤에 있어?” 하고 사람들이 입방아를 찍었다. 그러나 박스형의 25평의 공간은 그리 크지 않다. 남향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면서 정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출입을 뒤로 하였다. 이점은 서양식이다.
집 조형적인 면을 고민했다. 두 뾰족삼각형을 겹쳐 놓는 기하학 형태를 선택했다. 그리고 앞뒤로 넓은 데크를 두었다. 농촌의 농토와 농가 주택이 수평적이다. 여기에 뾰족 솟은 삼각형이 매우 자극적이다. 활동과 창의가 넘치는 젊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었다. 빨강색으로 하려 했으나 그런 색상의 패널은 생산이 되지 않는다 해서 포기했다.
실내의 아늑함을 추구했다. 주택은 노는 공간이라기보다 쉬고 재충전하는 공간이다. 있으면 잠이 들 것 같은 막힌 공간을 추구했다. 작고 아늑한 공간, 그런 공간들이 오밀조밀 연결되고, 남향 창문 사이로 전원풍경이 보이며, 뒤로는 이중으로 외부와 차단되는 아늑하고 작은 전원주택이다.
저렴한 자재로 꼼꼼하게 지은 80평 땅 위의 25평 전원주택의 별스러운 형태… 요즈음 유행하는 아름다운 자연 속의 예쁜 집이 아니다만, 내 눈에는 삼각형의 기하학 형태미와 단순미는 두고두고 보아도 신선하다. 성능면에서 보면 제로에너지를 추구하였으며 내실에 중점을 두었다. 테크는 내구성을 위하여 시공비가 비싸더라도 철관으로 가구를 짜듯 시공했다.
실마다 다른 천정높이, 다채로운 공간구성, 크지도 작지도 않는 적당한 크기의 남향 전원주택, 내가 최소 경비로 직접 지은 집이다. 최초로 내 마음대로 설계하여 지은 건물이다. 보통 설계의뢰가 오면 집주인(의뢰자)의 생각을 설계에 반영한다. 아무리 전문가인 내가 건의를 해도 건물주인의 요청에 의해 설계가 된다. 그것이 틀린 방법이라 해도… 저것은 아닌데 하여도…. 그러나 내가 고집하면 의뢰자는 오지 않는다. 설계도 의뢰자를 상대로 한 경제활동이다.
원칙을 바탕으로 내가 추구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없을까? 건물주인에게 의뢰를 받지 않고 내 돈으로 땅을 사서, 내 마음 대로 설계, 시공, 완공… 그리고 판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물을 짓는 데는 많은 자금이 소요가 된다. 나에게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늦게라도 그 한을 한번 풀었으니 여한이 없다.
캐나다공예대학교와 졸업후과정를 끝내고 지금 나는 금속공예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품이 다 그렇다. 재료비와 작은 인건비만 건지면 팔아서 다음 작업을 이어간다. 무명의 예술가는 보통 그렇다. 다행이 캐나다는 여건이 좋아, 작품을 팔면 작은 인건비는 건진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은 내 전원주택도 나는 팔았다. 마치 내 공예작품을 팔 듯 최소한의 인건비만 받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쉽게 주인을 찾았다.
공예작품은 팔아야 더 나은 작품을 구상한다.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다. 전원주택도 내 하나의 작품이다. 큰 요인은 경제적으로 돈이 필요해서 팔았지만, 마치 정성으로 만든 내 공예작품을 Sale하듯,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창작가의 마음도 한몫을 했다.
이제 다시 집을 지을 기회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시간을 보낼 수 없다. 창작은 신이 하는 일이다. 나도 A Creator이니 무엇인가 계속 창작활동을 해야 한다. 건물이라는 창작은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나에게는 작은 건물이라 해도 경제적인 형편이 안 되고 노년에 맞지 않다. 그 대신 금속공예에 심취해야 할 것 같다. 금속공예는 작은 금액으로 내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만들어서 내 마음대로 대중에게 내 놓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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