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0 김환기 화백이 생각납니다.
백자 달항아리가 있습니다. 순백색에 푸른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좀 못 생긴 것 같은 그래도 당당함을 보이는, 국보 262호(용인대 박물관, 높이 49cm) 백자 달항아리입니다.
느낌을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온화한 백색,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임 없는 형태”
보는 이 모두 그런 느낌이 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아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보니 순백색에 온화함을 느낍니다. 정확한 기하학적인 곡선이 아닌 다소 흐트러진 곡선이 보입니다. 형태가 완전하지 않고 어떠한 문양이 없으니 꾸임이 없다고 하면 맞습니다. 색, 선, 형태에서 보이는 맛은 바로 순수이지요.
그런데 넉넉함은 매우 주관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니 좀 치밀하거나, 예리하거나, 바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보니 그냥 편안합니다. 그래서 그 느낌을 ‘넉넉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백자는 참으로 만들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그리고 그 순백색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당시 몸으로 가마 불을 때고, 경험과 느낌만으로 그 강약과 시간을 조절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성공률이 높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예가의 특별한 예술성도 필요합니다.
조선시대 천대받는 최하류층, 그 바닥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양반들 눈에는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겨우 숨 붙을 정도로만 끼니를 이어가면서 몸과 마음을 던져 겨우 하나를 만들면, 그것을 누가 가져가나요? 나으리들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공물로 바쳐야 한다고 별 대가없이 뺏다시피 가져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걸 알면서도 그들은 왜 백자 달항아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또 만들었을까요? 대충 만들면 될 일인데 말입니다. 사람대접 못 받고 짐승같이 살아도 살아가는 의미를, 자존감이라 할까, 만들기 위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김환기는 뉴욕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먼저 작업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달항아리가 나옵니다. 그후 국지적이고 민속적이 아닌 세계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점화로 자기 이름을 세계에 알립니다. 그 점화는 우주 같고, 세계 같고, 우리 인간 같기도 합니다.
글세요? 봐도 봐도 정확히 딱히 뭐라고 그 느낌을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냥 느낌으로 감명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만이 아는 것이 아닌, 우리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세계 모든 지역 모든 계층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세계 사람에게 그만의 세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왜 일까요? 삶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달항아리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아니 사랑했다고 하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달항아리는 언제나 강한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백자 달항아리가 뛰어나고 감명 깊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만 그렇다는 것을 그는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그림을 그리자 하면서 점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은 민족도, 사상도, 경계도, 상하도 그 어떠한 범위가 없는, 모든 사람에게 느낌을 주는 세계화와 우주화가 된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그는 미국에 건너갈 때는 우리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습니다.
백자는 순순한 백토와 무색투명한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1300-1350도로 구워집니다. 이 백토(태토)와 유약에는 아무리 제거를 해도 철분이 조금은 남아 있습니다. 구울 때 그 미량의 철분 때문에 산소 유입으로 황색 빛이 조금 나거나, 산소를 완전 차단으로 청색 빛이 조금 납니다. 황색 빛은 중국북방에서, 청색 빛은 중국남방에서 유행하였으며, 우리나라 백자에서는 주로 청색 빛이 납니다. 사실 너무 약한 빛이라 느낌으로 보는 색깔이겠죠.
그런데 그것을 가져간 나으리는 그 귀하디 귀한 백자를 잘 모셔두고 눈으로만 감상했겠지요. 잘못 다루다 가는 흠이 가고 혹이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Fragile입니다. 작은 충격에도 깨지고 바닥에 떨어지면 역시 바로 박살이 납니다. 아주 다루기 어렵고 위험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더 귀한가 봅니다. 쉬이 깨지고, 흠이 가고, 흉터가 나니 남아 있는 것이 귀해지니까 말입니다.
온화하고 유려하고 넉넉한 달항아리입니다. 그런데 깨지기 쉽습니다. 그 달항아리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작은 충격에도 쉬이 다치고 깨지는가 봅니다. 한번 깨지면 그만이지만 다시 더 좋은 달항아리를 만들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유능한 도예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 마음은 한번 깨지면 그만입니다.
왠지 요즈음 달항아리 백자를 보면, 사진으로만 보아도, 온화함, 유려함, 넉넉함보다는 왠지 모르게 안쓰럽다. 위험하다, 고집스럽다, 분노한다,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요. 어찌하다 나라를 떠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그 달항아리는 여전한데, 지금 내 눈에는 순백에서 어름푸시 나는 그 청색 빛이 옹고집과 분노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달항아리는 여전한데, 지금 혹시나 넘어질까? 깨질까? 하고 더 불안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나이 때문인가요?
김환기 화백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는 달항아리를 승화시켜 모든 세계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점화를 죽을 때까지 그린 그를 오늘은 매우 생각이 납니다. 그런 그를 항상 사랑으로 변함없이 응원해주고 이해해 주고 지원해준 그의 아내 김향안도 항상 같이 떠오릅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더 대단한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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