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601 뒷골목 야바위 게임
80년대 초였나? 가끔 용산역 뒷골목으로 가면 좌판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투전을 하는 무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6각 팽이 돌리기”와 “화투 3장으로 진품 찾기”였다.
"6각 팽이 돌리기"는 옆면에 1번부터 6번이 새겨져 있는 6각형 팽이로 투전을 하는 야바위의 일종이다. 손님들이 한두 번호에 돈을 걸고 난 후, 좌판 주인이 팽이를 돌리고 그 팽이가 넘어지면서 나오는 번호와 손님이 걸은 번호와 일치되면, 그 손님은 배팅한 금액의 5배를 받는 야바위 게임이다. 즉 100원을 1번에 걸고 팽이에서 1번이 나오면 500원을 받는 방식이다.
"화투 3장으로 진품 찾기"는 주인이 화투의 일광, 삼광, 팔광의 3장을 가지고 서로 섞은 다음 밑면을 손님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이 다시 좌판에 카드 3장을 그림면이 보이지 않도록 가지런히 차례로 놓고 배팅을 요구한다. 팔광이라고 생각되는 카드에 배팅하시라고.
누가 보아도 당연 이것이라 생각되는 판이다. 어느 한 손님들이 주인 손에 돈을 쥐어주고 그 카드를 뒤집는다. 그것이 팔광이면 배팅한 손님이 배팅한 금액의 10배를 좌판주인으로부터 받는 일종의 야바위이다.
즉, 주인이 3장 화투를 보여 주고 그 다음, 사람들 눈앞에서 손으로 3장의 화투를 차례로 바닥에 놓은 후 천천히 두세 번 순서를 바꾼다. 그리고 손님이 1000원을 배팅하여 3장 중 한 장을 찍고 직접 뒤집어 보아 그것이 팔광이면 만원을 받는 방식이다.
내가 처음 용산역 뒷골목을 찾았을 때 여러 군데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안을 들어다 보니 좌판에다 군용 담요를 깔고 화투 3장을 좌판에 내려놓고 한참 흥을 돋우고 있었다.
좌판주인이 요상한 손놀림으로 3장의 화투를 바닥에 가지런히 놓자, 얼른 손님 한사람이 지폐 1000원을 바닥에 던지고는 3장의 화투 중 1장을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을 뒤집자 팔광이 나왔다. 그러자 주인은 흔쾌히 만원을 손님에게 지급하였다.
그것을 지켜본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만지작거리면서 다음 판을 지켜보았다. 주인은 다시 요상한 손놀림으로 화투장 3장을 좌판에 펴고는 손님을 유혹하였다. 바로 전에 손님이 돈을 따는 것을 지켜본 한 손님이 5000원을 배팅하면서 화투장 한 개를 집었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뒤집고 나서는 얼굴을 찡 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손님이 집었던 것은 당연히 팔광이 맞아야 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도 스스로 내 눈을 의심하였다. 바로 좌판 주인은 남은 화투 2장 중 오른쪽 1장을 뒤집고는 그것이 바로 팔광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 손님은 흥분하였다. 다시 화투장을 좌판에 놓기를 재촉하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바로 그 손님은 이제 이만 원을 놓았다. 옆에 두 사람들도 흥분하였는지 덩달아 만 원씩 배팅하여 총 4만 원이 되었다.
나는 주인의 손놀림을 숨을 죽이고는 총을 발사하듯 정확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손님들이 찍은 것이 팔광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곧 좌판주인은 손님들을 진정시키고는 조용히, 천천히 군중들이 찍은 화투장은 그대로 두고 그 옆의 것을 뒤집었다. 일광이었다.
모두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 다음 주인은 남은 2장 중 군중이 찍은 그 화투장을 오른손 바닥으로 집고는 군중들이 배팅한 돈을 왼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펴는 동시에 왼손의 돈이 그의 호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이만 원을 잃은 손님과 만원을 잃은 손님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들은 다시 판을 벌리기를 재촉하였다. 십만 원 수표 1장이 그들의 지갑에서 나왔다. 그 손님이 수표 1장을 내려놓는 순간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나를 당겼다. 뒤돌아보니 등치 큰 놈들이 나를 끌어내더니 “여기를 떠나라” 혹은 “가 보라” 하고는 꾹꾹 수셨다.
떠나면서 주위를 뒤돌아보니 몇몇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났지만 그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일단 나는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왔다. 여전히 야바위꾼들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돈을 탐하고 있었다. 전번에 보았던 것이 못내 아쉬워 건물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투 3장 놀이 좌판의 하나에 접근하였다.
전번보다 더 자세히 관찰하였다. 여전히 한 사람이 배팅하고 팔광을 찍자, 주인이 10배의 돈을 지급하였다.
이제 나도 욕심이 슬슬 나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 손놀림을 내 머리 속으로 넣고는 여러 번 다시 재생해보았다. 그리고 그 주인의 손놀림을 다시 한 번 더 관찰하였다.
"아하 ! 그 찰나에 화투 한 장을 보내는 척 하면서 안 보내구나 ! 보이는 대로가 아닌 반대편에 있는 화투를 찍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주머니속의 만 원을 좌판에 던지고는 내가 먼저 화투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뒤에서 여러 사람이 밀더니 좌판은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가까스로 몸을 빼내고는 좌판 위에 있는 내 돈 만 원을 움켜쥐고는 "나 살려라" 하고는 마구 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조용하기를 기다려 건물 뒤편에 몸을 숨기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주먹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오른손을 살며시 펴보니 그곳에는 구겨진 만 원 지폐 1장과 화투 1장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통한 오른손 엄지 뿌리로 화투의 사각모서리를 조금씩 내밀었다. 조금 보이는 그 귀퉁이 그림은 분명히 팔광이었다. 나는 손바닥에 있는 구겨진 만 원 지폐와 팔광 그림을 내려 보면서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냥 갈 수가 있겠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야지!" 하고는 다시 그 주변으로 되돌아갔다. 여전히 구석구석 야바위꾼을 둘러싼 사람들로 붐볐다. 모든 것들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멀리서 그들을 관찰하였다. 제대로 찍으면 돈을 받아가는 경우도 많았고 돈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두 세 사람들이 좌판 주위에 몰려있는 무리의 뒤를 돌면서 그중 한 사람의 팔을 당기더니 낮고 험한 목소리로 “어이, 가세요!” 하고는 사람들을 여러 번 쫒아 내었다. 그러면서 가끔 그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배팅하고는 제대로 찍었다고 10배의 돈을 받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멀리서 그 장면을 저녁 무렵까지 계속 지켜보았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대충 파장하고 사람들이 뿔뿔이 헤어지자, 그 때 좌판 주인하고 몇 사람들이 서로 수군수군 하더니 돈을 함께 세는 것이 아닌가!
내 입에서 욕이 새어 나왔다.
“개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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