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4 긴장과 몰입의 하루
영화 “영웅(The Hero)”을 보았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 천하가 결국 선이다. 사랑도 큰 대의를 넘을 수 없고, 인간 본성도 천하의 대의에 따라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중국다운 영화이다. 중화사상의 기본을 보는 것 같았다. 영상미와 그것에 따르는 감미로운 음악이 돋보였다. 3번째 보는 영웅이지만 그때마다 보는 이를 하여금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오늘 일요일이다. 폭염경보가 있었다. 정말 더웠다. 그렇다고 집콕하기는 싫었다. 괜히 등산이나 나들이를 하기에는 따분했다. 아침 일찍 내 집 현장으로 갔다. 어제 구입한 조명등을 달기 위해서다. 방, 거실, 주방, 현관, 등등 등 등 갯수만 30개에 달한다. 대략 예산이 100만원 정도이다.
전기업자를 불려 시키면 인건비가 만만찮아 직접 달기로 했다. 그것을 직접 해? 하고 사람들은 다 나를 말렸다. 폭염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이틀을 고생해야 하지만 사실 알면 등달기는 쉽다. 요즈음의 조명등은 전부 LED등이다. 디자인이 좋고 가볍다. 구조만 잘 이해하면 누군든지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단지 전기의 특성을 알고 난 이후이다.
일을 할 때 나는 10년전까지는 한치의 오차가 없었다. 일을 할 때는 한가지 일을 하고 그 다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2-3가지를 했었다. 그래야 시간이 절약된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면, 물을 끓이면서 동시에 고기를 설고 양념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말이다. 그때는 여러가지 일을 해도 잘 돌아갔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칼을 놓친다거나 물을 팅긴다거나 그릇을 깬다거나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Step By Step, 시간이 걸리더라고 한가지를 하고 그 다음 일을 한다. 다행이 이렇게 하니 일을 즐길 수 있고 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한가지 일에만 집중을 해도 가끔 착오가 생긴다. 몰입을 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 나이탓인가 한다.
아침 일찍 현장으로 달려가서 등달기를 시작했다. 전등을 달기 위해서는 전기 매인 파워를 오프해야 한다. 즉 전기 인입단자의 누전차단기를 내려야 한다. 당연 그렇게 하고 작업했다. 등을 달았다. 그리고 전등이 제대로 작동하나? 하고 차단기를 올렸다. 오케이, 환한 전등을 보고 만족했다. 그리고 커피 한잔을 했나? 다른 작업을 했나? 다음 등을 설치하기 위해 천정의 인입선을 절단했다.
“펑”
불꽃이 튀었고 손에 쥔 장비가 하늘로 날았다. 내 손은 시커먼 연기로 그을렸다. 내가 그 상황을인지하였고 내 손이 남아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아픈 손을 쥐고 얼른 자동차에 올라 몰았다. 타운 중심지 매장에 가서 아이스케키와 얼음 한봉지,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을 샀다. 우선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왼손으로 아이스케키를 잡았다. 그리고 집에서 얼음에 물을 넣어 왼손을 푹 담겼다. 내가 할 수 있는 처치는 다했다. 그 다음이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막걸리 한잔을 마셨다.
몰입할 때는 가끔 착각이 생긴다. 그 착각이 사고로 이어진다. 전기를 만질 때는 하나 작업에 차단기 확인, 그리고 또 하나 작업에 차단기 확인이 기본이다. 할 때마다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등을 달고 점검하기 위해 차단기를 올렸고, 그리고 딴 짓과 딴 생각을 하다가 그 사실을 잊고 그냥 다음 작업에 무심코 들어갔던 것이다.
만약 두 선을 한꺼번에 절단하지 않고 한 선씩 절단했더라면 나는 감전으로 더 큰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해서 순식간에 죽는구나 하고 몸이 떨렸다. 막걸리 한잔이 위로가 되었다. 왼손이 얼음과 같이 차가워지더니 아픔이 많이 사라졌다. 움직여 보니 괜찮았다. 다시 현장으로 갔다. 그래도 하던 일을 끝내야 한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오후 4시까지 등달기 작업을 했다.
일당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내 일이다. 사고가 생겨도 내 일에 몰입하니 좋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은 막걸리를 마셨다. 땀 흘리고 마시는 막걸리이다. 마실 자격이 있다. 그리고 샤워하고 영화 영웅을 보았다. 영화 볼 자격이 있다. 그만큼 막걸리 맛이 있고, 그만큼 영화가 재미있다. 체력이 받쳐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많이 나태하여 그런 삶이 즐거워라 하고 바래 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이 사고 뿐만 아니라 다른 사고가 있었다. 다락에서 등작업을 끝내고 청소를 하면서 쓰레기를 창너머 저 아래로 던졌다. 그때 창대에 두었던 핸드폰이 같이 다이빙을 하였다. 5m 아래 내 핸드폰이 바닥에 처 박혔던 것이다. “어머나!” 창대에서 FM방송으로 음악이 울리던 그 핸드폰이 바닥에 쳐 박히고도 바닥에 누워서 계속 음악을 쏟아내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내 핸드폰을 보니 멀쩡했다. 물론 음악은 계속 흐르고
오늘 이렇게 멍청했고 이렇게 운도 따랐다. 젊었을 때는 나를 억박질렷을 것이다, 멍청하다고. “사는 것이 이렇지 뭐” 하고 넘겼다. 하지만 나이 한 살을 더 먹음에 따라 좀 더 여유를 갖고, 좀 더 단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다. 좀 복잡한 것은 피하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열심히 살다가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영의 세계로 가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도인이 되어 그렇게 되는 것은 괜찮지만 사고로 그렇게 되기는 싫다.
오늘 저녁 영화 한편이 나를 다독겨렸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역사속의 인물들이 아름다운 영상과 감미로운 음률과 함께 펼쳐졌다. 내가 그들인양 몰입이 되었다.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 삶에 몰입하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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