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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20820 이제 해돋이보다 낙조가 더 좋다

Hi Yeon 2022. 8. 20. 18:41

 

220820 이제 해돋이보다 낙조가 더 좋다

 

2022 8 15, 23일 휴가로 친구와 함께 갔던 곳은 서해안 삽시도(대천 앞바다)였다. 자동차로 섬둘레를 둘려보고 트레일을 걸었다. 이곳은 시유지가 많은 관계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삽시도는 삼각형 섬으로 안쪽은 육지 방향이고 바깥쪽은 서해 방향이다.

 

우리는 서해 방향의 백사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백사장 언덕에 지인의 작은 펜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지도로 보니, 내가 있었던 곳은 진너머 백사장이었고 내가 놀면서 보았던 지평선 저 끝의 작은 섬은 오도였다.  

 

의도하여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지인의 작은 펜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이곳에 왔었다. 와서 보니 마치 유럽의 휴양지에 온 기분이었다. 아니 그곳보다 더 좋았다. 넓디넓은 백사장과 솔밭,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섬과 기암절벽, 나긋이 춤을 추듯 넘실거리는 파도와 파도소리, 바닷물 밑으로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 모래바닥, 가도가도 깊어지지 않는 바다… … 그리고 얄미울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하게 내 몸을 때리는 바닷물과 파도… …

 

이 모든 것이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따스한 온기의 바닷물이 내 몸에 쓰며들어 내 육체와 마음을 쓰다듬는 것이다. 아마도 내 친구가 그 맛에 낙조가 질 때까지 바닷물 속에 있었는가 보다. 물론 석양의 붉은 노을과 바닷물, 이것과 만나는 그 빛깔과 속삭이는 파도소리에 도취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내가 미치고, 그리고 친구들을 살짝 툭 쳤다. 그들은 더 미쳐버렸다.”

 

그날 저녁 모두 바닷기운에 흠뻑 취한 채 시원하면서 따스하게 하루밤을 보냈다. 아마도 삶에서 얻는 가슴속 상처가 다 아물었다는 느낌이었으리라. 이 정도였다. 아마도 사랑하는 한 커플이 이곳에 왔더라면 무슨 일이 당연 생겼겠지.

 

 

 다음날 아침이었다. 부시시 일어나자마자 나는 다시 그 백사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바뀌 돌아보았다. 어제의 감응은 없었다. 화사한 백사장과 바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어느 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백사장이었다. 밤과 아침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마치 은은한 조명속의 밤 깊은 파티장에 취해 잠들어 깨어보니 밝게 햇살이 비치는 아침이었다. 뭐 이런 것이었다.

 

맨발로 바닷물에 들어가 보았다. 물론 따스한 온기의 바닷물, 살랑거리는 파도와 파도소리, 그리고 모래바닥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하늘과 바닥의 빛깔은 화사한 햇빛 때문에 어제의 그것은 아니었다. 아침과 저녁 사이로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서해를 바라보고 있어 특유의 낙조가 펼쳐진다. 태양이 떠오르는 해돋이 동해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분위기와 빛깔, 그리고 이런 감흥이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하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문득 갑자기 우리 인생 고갯길에서는 화사한 동해보다는 붉은 빛으로 물드는 서해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살 만큼 살았다. 알 만큼 다 안다. 그래도 분위기에 취한다. 젊은 사람들보다는 늦게 취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분위기에 취할 필요는 있다. 이제 스스로 즐겨도 그리 긴 나날이 없다. 그래서 우리 시절에는 낙조 분위기가 더 제격이다.

 

현실 세상에서 밝은 빛 속에 꿈을 꾸면서 해 볼 것은 다 해 보았다. 이제 다시 해돋이로 감동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제 어스럼한 붉은 빛에서 추억을 되새기도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분위기에 미치기도 하고, 이렇게 석양이 주는 따사로움으로 현실세계에서 생긴 상처와 고름을 치유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 해돋이보다는 낙조가 더 좋다.

 

밝게 화사하게 비치는 저 멀리 하늘과 먼바다이제는 이런 동해를 보면서 꿈에 젖어 소리 지르지 않으리리. 낙담하여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울지 않으리리. 동해 바닷물은 너무 차가웠다. 모래는 너무 거칠었다. 파도는 너무 사나웠다. 시퍼른 바다는 너무 깊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젊었을 때 일이다.  한마디로 일어나라하는 동해안이었다.

 

 

 반면, 이곳은 나를 따스하고 부드럽게 푹 담겨주는, 엄마의 그곳과 같이, 마치 나를 보고 그냥 쉬어라, 내가 다 알아서 하리라하는 것 같았다. 따스한 온기의 바닷물, 부드러운 모래바닥, 살랑거리는 파도, 가도가도 깊지 않은 바다, 내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바닷물, 속삭이는 파도소리, 붉은 빛깔로 물든 저 멀리 하늘과 먼바다, 그리고 낙조… … 이곳의 모든 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붉게 물든 가슴을 안고 어두워지는 석양이 못내 아쉬워 모래바닥에 내 이름을 적어 보았다. 이 밤이 지나면 바닷물이 내 이름을 지워 버리겠지만 그래도 난 조각하였다. 언제가 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나를 디자인 하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