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9 한마디 칭찬이 춤을 추게 하다
삼촌댁에서 먹고 자고 학교 다니는 것은 매우 좋았다. 동갑의 사촌이 형제이고 친구였고 먹는 것도 풍요로웠다. 그러나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내 집보다 못했다. 나는 1년 후 삼촌댁에서 무작정 나왔다. 그때 누나가 경주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혼자 경주에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곳으로 갔었다.
“누나, 나 여기서 살면 안 돼?”
풍족한 삼촌댁에서의 생활이 갑자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되었다. 누나는 자기 공부와 학교생활로 바삐 다녔고, 나는 춥고 먹을 것 없는 단칸방에서 혼자 누나를 기다렸다. 고향을 왜 떠났는가? 비쩍 마른 작은 한 아이가 양지 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졸기도 한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항상 홀로 있었다.
큰 형님은 공무원이었는데 마침 경주로 발령을 받았다. 아버지는 모든 역량을 모아 경주 중심지에 아들 부부가 살 월세 집을 구하여 살도록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는 큰 형님 댁으로 옮겨졌다. 나와 나이차가 18년이나 되는 형님과 형수님은 사실 나에게는 형님이라고 하니 형님이었고 형수님이었다. 형님은 무뚝뚝했고 형수님은 남자 같았다.
아버지는 대가족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큰 우군이었다. 우락부락한 권력지향적인 성격의 형수님은 아버지에게는 어린 양이었고 그 덕분에 나에게도 함부로 할지 못했다. 그러나 따로 사는 형님 집에서는 달랐다. 나에게는 크고 무서운 벽이었다. 내 존재는 그분들에게는 살기가 빡빡한 시절 억지로 초청받은 손님이었다. 나의 호칭도 긴 발음의 “도련님”에서 짧고 굵은 발음의“되렴”으로 변했다.
어느 날 나는 학교 수학선생님을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은 형님 댁 근처 월세 집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비쩍 마르고, 작고 못 생긴 애가 학반 제일 앞에 앉아 있고, 말은 없고 조용했다. 큰 교복을 입고 축 처진 어깨에 가방을 메었다. 그런 몰골에 비해 수학 성적이 쾌 괜찮았는지, 눈빛이 좋았는지, 그때 선생님은 이 아이에게 한마디의 칭찬을 해 주었다.
“공부 참 잘 하던데”
대가족의 어른인 아버지와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나르며 먹고 살려고 매일 애쓰는 어머니가 생각난다. 1년에 서너 번 3시간이나 걸려 고향으로 달려간다. 돌아올 때 학비 달라고 때를 쓰는 누나들이 보인다. 그때마다 돈 없다고 울며 쓰려지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곳을 떠나 지금 나는 형님 댁에 있다. 새아버지 같은 형, 새엄마 같은 형수...
나는 시계추처럼 그냥 하루하루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있으면 햇빛만이 나에게 따사로운 존재였다. 방과 후에는 쪼르륵 내 방에 들어갔고 밥 먹을 때만 나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리고 잘 했다 하였다. 선생님이...
그때부터 그 아이는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고 그것도 모자라 참고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반에서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쪼그만 하고 조용한 한 아이가 성적이 오르자, 학우들의 관심이 모였다. 그 아이는 이제 할 일을 찾았다. 오직 공부에 더 열중했다.
집 생활의 어두움과 답답함, 그리고 외로움은 이제 생각나지 않았다. 학우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반 뒷줄에 있는 등치 큰 놈들도 나에게 살갑게 말을 걸었다. 친구들도 많아졌다. 선생님도 친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 아이는 상위그룹에서 공부하였고 졸업할 때는 전교에서 2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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