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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01002 동생아, 와 이렇게 몸이 아프노

Hi Yeon 2024. 1. 16. 21:49

201002 동생아, 와 이렇게 몸이 아프노

 

추석이 다가오면서 고향방문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방송은 코로나로 고향방문을 자제하라고 겁을 매번 주었다. 고향에 가는 것이 그리 큰 대수인가? 추석 전에도 여러 번 일보는 겸에 고향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별일 없었다. 가서 어떻게 지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고향 어른들의 방에는 TV가 항상 켜져 있다. 사람 소리가 그리워 TV에서 나오는 사람 소리라도 듣고자 하루 종일 틀어 놓는다. 고놈이 연속극 아니면 코로나 관련 뉴스로 앵무새처럼 하염없는 하루를 채운다. 별 것 아니라도 같은 말을 매일매일 많은 시간을 통하여 듣다 보면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판단력이 흐려진 노년에게는 극한 공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자식일지라도 보고 싶어도 자식을 밀어내야 한다.

 

애들아, 오지 마라

 

추석 이틀 전 큰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80이 넘은 노년의 누님은 작년 남편을 여의고 혼자 시골에 산다. 인근에 아들딸들이 살고 있어 그리 외롭지 않다. 갑자기 혼자가 되어서 또한 나이 탓에 외로움과 몸의 노쇠로 인한 아픔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남편을 보살피고 있을 때는 삶의 무게 때문에 그런 외로움과 아픔이 더 했으나 느낄 여유와 틈이 없었다. 이제 혼자가 되고 시간이 억수같이 밀려오니 감추어졌던 고통이 생색을 내는가 보다.

 

동생아, 와 이렇게 몸이 아프노? 하루 괜찮다 보면 다음 날은 몸과 마음이 천금만금이야? 동생, 이번 추석에 내려올 거지? 내려와라. 보고 싶다.”

 

한 달 전에 찾아뵈었는데 보고 싶다고 한다. 자식들과 손자들을 자주 보는데도 막내 남동생이 보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자식 보는 것과 형제 보는 것이 다른가 보다. 사실 자식에게 보고 싶다.’ ‘아프다라고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다. 표현하더라도 빙빙 돌려서 말한다. 그런데 막내 동생인 나에게는 있는 그대로 말을 한다. 내가 허물없이 대하고 엄니같이 누님같이 친구같이 대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누님이 시집을 갔다. 그럼 보통 별 정이 없다. 그러나 나는 내 꼬치 내 놓고 다니는 어린 시절에 시집간 누님 댁에서 많이 지냈다. 그래서 나는 누님에게는 다정하고 특별한 정을 느낀다. 누님도 나를 동생처럼 자식처럼 정을 준다.

 

아마도 부모와 자식은 우리의 문화 특징인 상하관계 혹은 종속관계이어서 서로의 대화가 많이 경직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노년의 세대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뿐만 아니라 자식이 부모의 정서를 이해하고 다독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세대차가 큰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형제간에는 정서의 공통성이 있어 대화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형제를 찾는가 보다. 내 누님과 나는 나이차로는 20살 이상이나 누님은 나 사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추석날에 고향에 계시는 형님도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말 액면 그대로인지를 헤아려야 보아야 했다. 진짜 안 오면 섭섭하거나 삐진다. 어른들은 보통 이렇게 표현하고 이렇게 마음 상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누님이 보고 싶다고 내려오라고 하니 내려가야지 하고 나는 마음을 바꿔먹고 갑작이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누님에게 추석날 전화를 하여 누님, 추석날 못 내려가지만 대신 한달 이내에 꼭 경주 방문하여 찾아뵙게요하니 좋아라 하셨다. 누님과 대화를 하고 난 한동안 누님의 말씀이 가슴에 떠나지 않는다.

 

동생아, 엄니 나이가 지금 내 나이 일 때 엄니를 찾아보면 엄니는 가끔 이런 뜬금없는 말을 했다. ‘애야, 왜 이렇게 아프노? 팍 죽었으면 좋겠다나는 그때 그 말을 듣고는 엄마를 이해 못했지. 지금이 내가 딱 그런 심정이야. 나도 그때는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는데 왜 엄니 심정을 몰랐지. 지금 생각을 해보니 엄니 생각이 많이 난다.”

 

나는 그때 어머니와 생활을 좀 같이 했었다. 나도 그런 어머니 말씀을 들은 적이 많았다. 같이 생활하다 보면 혼자 중얼거리는 어머니 말을 들은 것이다. 나이차가 나지 않는 큰딸도 진정 부모의 외로움과 몸 아픔을 이해 못하는 것을 보면, 이것만은 혼자 이겨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누님에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하여 한마디 하였다.

 

누님 그때 어머님은 장날에 빨간색 신발도 사고, 연두색 치마도 사서 입고, 그 옷 입고 춤도 추었는데, 누님도 시골집에만 있지 말고 빨간색 바지 하나 사서 입고 빨간 루즈도 바르고 다녀 보세요. 갑자기 젊어진 것 같아요. 누님은 그래도 많이 신식이고 배웠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