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2 내 영혼의 이름 Yeon & Andrew
내 이름은 ‘연배’이다. 이것은 내 이름이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부모와 가족이 나를 그렇게 부르니 그렇다.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그렇게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연배‘이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면 당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보거나 답한다. 그리고 내 이름을 적어야 할 때도 저절로 그렇게 적는다. 그렇게 이름과 나는 항상 동일했다.
직장을 가지고부터 내 이름 대신 나는 다른 호칭을 가지게 되었다. ‘정기사’였다. 건축엔지니어였기에 나는 ‘정기사’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건축기사로써 일을 했으니 당연했다. 처음에는 서먹하더니 자주 들으니 그것도 내 일부가 되는 듯했다. 어디서 ‘정기사’라고 하는 비슷한 말만 나오면 반사 신경이 작용했다. 직장 밖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도 하고, 혹은 이름을 적을 때는 내 이름을 사용하긴 하였지만 그것은 간혹이었고 언제나 나는 ‘정기사’로 불리었다.
내 영혼은 하나인데 마치 다른 영혼으로 변하는 순간들이었다. 이름이 없어지는 과정이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구나 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내가 설계사무소를 운영할 때는 또 다른 호칭으로 불러졌다.
“정소장”
밖에 머무는 것은 남자의 일상이다. 고객분, 직원,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 관공서 공무원, 등등 모두가 나를 그렇게 불렸다. 내 호칭은 그렇게 굳어졌다. 매일 그리고 자주 내가 그렇게 호칭되니 내가 나를 말할 때도 그런 호칭을 쓰게 되었다.
“예, 0소장입니다.”
내가 왜 소장인가? 글쎄다. 공직의 소장이라면 아주 높은 직위의 사람인데 공직이 아닌 일개 작은 건축설계사무소, 어떤 때는 직원도 없는 1인 회사의 나를, 왜 나를 소장으로 부를까? 형무소 소장? 등기소 소장? 그리고 보니 대서소도 소장이다.
회사의 장이니 사장이라고 부르고, 사무소의 장이니 소장이라고 부르겠지? 병원의 장이니 원장으로 부르겠지? 그럼 변호사 사무소의 장은 왜 ‘변호사’라고 부를까? 의사는 왜? 의사 선생님이라 부를까? 몰라? 어쨌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건축주, 하청업 사장들, 모두 나를 그렇게 불렸다. 어떤 때는 “정소장” 어떤 때는 그냥 “소장님”
처음에는 내가 형무소 소장인가? 왜, 나를 그렇게 불러대나? 하고 반항하였으나 불리는 것을 어떡하랴? 누군가 아양을 떨 때는 마치 내가 큰 놈의 소장인가 싶었기도 하고, 삶이 나에게 짐이 될 때는 소대가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성공한 형제 중 한 분이 나를 그렇게 불렸다. 나를 내려서 부르는 것임 눈치로 알았지만 웃음으로 넘겼다.
자꾸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가? 좋게 부르든 나쁘게 부르든 그것도 자주 겪으니 당연 하듯 나의 보통 단어가 되었다. 공기처럼 말이다.
하나의 직업으로서 성공한 사람은 다른 근사한 호칭을 얻었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10년 동안 불러지는 호칭이 그대로이면 갈 데까지 간 것이 아닌가? IMF라는 금융 환란이 발생하고 사회가 개혁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과감히 이름 같지 않은 그 호칭을 스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태평양 바다를 건너 캐나다로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부모가 준 내 이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들으면 왠지 편안했다. 얼마나 좋은가? 나를 나라고 부르는 것이 당연했다. 영혼의 이름이다. 태어나면서 그렇게 들렸으니 말이다. 이민 생활이 몇 년 지나자 내 한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가끔 불편했다. 철없이 나도 내 이름을 바꿔 보기로 했다.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한인들이 많았다. 나도 그들을 따라 영어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Andrew”
캬? 이것, 정말로, 마치 내가 영국 놈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그런데, 들을 때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남이 된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가? 나를 부르는가? 내 몸에 다른 영혼이 있는가? 그렇게 불릴 때마다 내가 다른 나로 인식되었다
그러던 중 캐나다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학급생과 학교 관계자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내 본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부모 가족이 불렸던 내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영어 발음이 어눌하였나? 아니면 그들이 듣고 따라 하기 어려웠나? 자연스럽게 내 이름의 두 번째 음은 생략되었다. 그리고 외자로 불리게 되었다
“Yeon”
사실 “연”은 조상님이 부여한 항렬자이다. 내 이름이 불릴 때 앞소리가 우선 음이 되었기에 외자로 불리더라도 나에게는 별 차이가 없었다. 내 영혼을 불려 일으키기에는 “연”이라는 글씨와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쨌든 한국인이 아닌 모든 캐나다 현지인은 나를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특히 학교 동료, 교수, 학교 관계자들이 정말로 정겨운 목소리로 나를 그렇게 불렸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볼 때마다, 눈빛을 마주칠 때마다, 스쳐가기만 해도, 언제나 그들은 나를 그렇게 불렸다. 지금도 그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Hi Yeon”
그 소리를 들으면 내 영혼이 내 몸에서 확 튀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높고 낮음, 좌우, 크고 작음, 등등 인간이 만든 관습의 냄새, 모양, 감촉이 없는 오직 내 영혼만을 느꼈다. 금속공예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작품에 쓰는 언어도 바로 이것이었다.
금속공예를 하면서 사이버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닉네임이 필요했다. 처음 잠깐 사용하다 잊어버린 내 영어 이름인 Andrew는 다행이 없어지지 않고 On-line 세상에 머물고 있었다. 사이버 모임인 역이민 카페에서 그것이 저절로 내 이름이 되었다. 역이민 카페에 나는 2013년 5월 22일 첫 글을 올리고 지금까지 수필 형식 장문의 글을 850개를 올렸다. 매 일주일마다 한두 개의 글을 올린 셈이 된다. 그때마다 나는 Andrew을 사용하였고 독자 회원분들은 댓글로 그 이름을 불려 주었다. 요즈음 오프 모임에서 회원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만나는 회원분들은 Andrew로 기억하고 부른다. 그때마다 나 스스로 Andrew라고 인사한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나도 이제 진짜 Andrew가 된 기분이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Andrew인가 보다 한다. 이제 나는 두 혼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태생, 그것은 한국적이다. 다른 하나는 후천, 이것은 이국적이다. 그래서 말이다. 내가 “(Hi), Yeon”이라고 불리기에는 한국사람 사이에서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다 그렇게 부른다. 예술작업에서는 Yeon은 내 영혼이며 캐나다에서 금속공예가로서 내 이름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에 사시는 한국분에게는 나는 Andrew이다. 그들이 나를 부를 때 Andrew는 내 영혼이 된다. 부르기에 기억하기에 매우 편한 이름이며, 부를 때 Hi Andrew도 괜찮아 보인다. 이것은 끝에 “님”이라고 붙일 불편함도 없다.
지금은 고국에서 산 지 8년이 되어간다. 사실 한국에서 내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 별 볼일이 없는 직함이 보통 사용된다. 아니면 무슨 사장하면서 성에다 사장이 붙는다. 아니면 그냥 호칭 없이 대화한다. 옛날과 같이 또 다시 나의 이름이 없어지는 순간들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 상대를 부를 호칭은 우리에게는 매우 애매하다. 개인 이름을 부르면 버릇없다 하고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면 이도 많이 어색하다. 보통의 관계에서 형님이라고 호칭 하면 좀 오버하는 것 같고 동년배에게 친구라고 하면 좀 닭살 돋는 것 같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분에게 동생이라고 부르면 하대한다고 기분 나빠 한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끼리는 사장 같이 아무 직함이라도 붙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행이 외국에 사시는 한국 분에게는 나는 Andrew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불리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생각 없이 금방 나는 돌아본다. 좀 이국적이고 후천적이라고 생각되지만 이제는 마치 내 영혼 같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이름은 Yeon이다. 이는 예술가로서 내 영혼의 이름이다. 그곳에서 Yeon이라 불리면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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