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at Bougival by Pierre-Auguste Renoir(1883) from Wikipedia
231108 철없는 댄스의 꿈
촌놈이 처음으로 보는 서울은 너무나 넓고 컸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상 물정을 거의 모르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서울생활에서 좌충돌 우충돌 하였다. 한마디로 혼란이었다.
시골에서 보내는 학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말이다. 서울 학생들 모두는 풍요로웠다. 왜 서울 저놈들은 풍요롭고, 촌놈인 나는 가난한지 그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부에서 갑자기 과외를 전면 금지하였고 나는 공부하면서 돈 벌 기회마저 없어졌다. 공납금은 어찌어찌 모아 해결했지만 서울에서 먹고 자고 하는 문제는 큰일이었다. 돈이 없으면 굶어야 했다.
동료들은 끼리끼리 놀았다. 돈 없는 촌놈이 끼일 곳이 없었다. 다 서울 저들만의 세상이었다. 이때 촌놈은 공부에 몰입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치열하게 공부에만 열중했어야 했지만 나는 공부도 하기 싫었다. 그 대신 서울이라는 공룡을 보고는 반항심만 더 커졌다.
학교 앞에서는 매일 데모였고 체류 탄의 매캐한 냄새가 거리를 매웠다. 나도 주먹을 쥐고 뛰어나가 보았지만 오히려 내 경제적 형편은 더욱 더 나빠졌고 고통만 더했다. 나는 자포자기 했다. 그리고 혼란에 빠지면서 거리로 나와 대모를 하는 이념 행동주의보다 인생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술을 배웠고 그 이후로 밥 먹을 돈으로 매일 술독에 빠졌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혜화동 성당을 지나면 혜화동 고개가 나온다. 그 고개 중턱에 내 허름한 월세방이 있었다. 혜화동 성당 석조건물 옆에 마리아 동상이 있었다. 비틀거리며 그 옆을 지나면서 “이 놈의 서울을 다 집어 삼킬 거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혜화동 고개를 넘으면서 미친 놈 같이 흐느적거리면서 주먹을 허공에 찔렸다. 그래도 그런 젊은이를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목소리와 내 몸짓은 한적한 고개를 넘는 자동차 소음과 매캐한 배기가스에 파묻혔다.
1년을 그렇게 지내고 대학 2년이 되었다. 공부를 안했으니 당연 대부분의 과목이 낙제였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려 다시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 2년을 마치니 학과 2등이었고 그래서 장학금이 나왔다. 5만원이었다. 그때 하숙비가 2만에서 3만원했다.
이 돈으로 무얼 하나 곰곰이 생각했다. 매일 술을 퍼 마시면 몇 달 갈 것 같았다. 이 돈을 자랑하면 작으나마 향토장학금마저 끊긴다. 그럼, 없는 셈 치고 무얼 할까?
혜화동 고개를 넘으면 삼선교가 나온다. 그 입구에 유명한 나폴레옹 제과점이 있고 언덕 따라 조금 오르면 한옥단지가 있었다. 그곳에 외숙모 댁이 있었다. 처음 도시구경을 하는 나를 아버님이 그래도 외숙모 근처가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곳에 나를 하숙시켰다. 몇 달 하숙생활을 하다가 삼선교 언덕에 있는 허름한 월세방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종로까지 걸어 다녔다.
어느 날 삼선교 대로변을 걷다가 문득 댄스교습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당시 사교댄스가 크게 유행하여 서울 시내에 댄스교습소가 많이 있었다. 나는 건물 2층 계단을 타고 올라가 창 너머로 보았다. 넓은 플로어에서 두세 팀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할 때는 항상 핑계가 있는 법이었다. 언젠가는 서울을 다 말아서 먹을 정도로 성공했을 때 수많은 대중 앞에서 보란 듯이 나는 환상적이고 우아한 춤을 출 것이다. 외국 소설책을 많이 접한 내가 머릿속에서 또 다른 나의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날 바로 나는 거금 2만원을 들여 댄스교습소에 등록했다.
예쁘고 젊은 아가씨 선생이 파트너가 되어 나를 가르쳤다. 매일 밀고 당기면서 스텝에 따라 넓은 플로어를 빙빙 돌았다. 배우는 것은 괜찮았으나 아가씨와 손을 맞잡고 마주 보며 춤추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고 민망했다. 촌놈이 난생 처음으로 여자 눈동자와 코를 바로 두고 보면서 춤을 추려니 너무 쑥스러웠다. 어찌하여 아가씨 가슴이 내 몸에 닿을 때면 나는 움칠했다. 이제 겨우 20세가 되는 앳된 얼굴의 남자가 말이다. 아가씨 선생 말로는 같이 춤을 출 때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숙기가 없었다.
지르박, 왈츠, 도로도, 탱고 이렇게 기본 스텝만을 배우고는 두 달 만에 그만 두었다. 아가씨 선생이 나 보고 나이 더 먹고 오라고 했다. 예쁘고 젊은 그 아가씨 선생은 공주 같았으며, 나는 하는 짓과 옷 입은 걸로 보아도 꾸중물 줄줄 흐르는 아주 촌놈이었다.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스스로 타락하기엔 너무 어렸고 순진했다. 철없는 댄스의 꿈이었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1215 자기를 버리고 더러움을 담는 무명옷 (1) | 2023.12.15 |
---|---|
231123 내 식으로 제로에너지 주택을 지어라 (1) | 2023.11.23 |
230817 떠남이 아쉽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다 (1) | 2023.08.17 |
230815 우선 근사하게 보여야 한다 (1) | 2023.08.15 |
230725 내 사랑, 그 아름다운 곡선 (0) | 2023.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