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5 작업에 몰입하면서 시공에 갇혀 산다
오늘 토요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 작업실(Studio)에서 작업한다. 당연 토요일과 일요일은 집에서 쉰다. 말이 쉬는 것이지 하는 일 없이 방 안에 죽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캐나다 작은 도시에서 머문 지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여 밖으로 나가 걸었다. 다운타운까지 갔다 오면 거의 만보가 된다. 이것저것으로 움직이면 하루 만 오천 보는 그냥 넘는다.
평일은 다운타운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가서 작업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만 오천 보는 쉽게 넘어간다. 작업실에서 낑낑대며 디자인하고 무엇인가 만들기 위해서 용을 쓰면 몸이 경직된다. 이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30분 정도 요가 같은 스트레칭을 한다. 이러고 보면 하루 하는 일양이 만만치 않다. 이제는 너무 걸어서 그런가?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5월 26일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경유지 LA에서 1주일 머물고 다시 몬트리올을 경유하여 6월 3일 새벽 4시에 캐나다 동부 프레데릭톤에 도착하였다. 그때부터 렌트 방에 자고 학교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목표 없이 생각 없이 살다가 갑자기 나를 시공에 가두어 두니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렌트 방 하나에 혼자 간단 식으로 해결하고 매일 먼 길 걸어가서 작업실에서 무엇인가 한다. 보이는 것은 나와 다른 낯선 사람들... ...
여기 생활 처음에는 내 자신이 초라해지면서 외로움까지 엄습했다. 내가 미쳤나? 숨이 막혔다. 한 달이 되고 이제는 좀 익숙해지고 훈련이 되었나? 괜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낯설고 힘들어도 곧 익숙해지나 보다. 아마도 한국생활에서 편안하게 젖어 살아서 그랬겠지. 더 나은 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고통이고 혼란이며 갈등이었다. 이 길밖에 없다면 사실은 별일 아닌데 말이다.
자연 속에서 공기는 깨끗하고 날씨는 시원하다. 배 안 고프고, 잠 잘 자고, 하고 싶은 내 할 일이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말이다. 사람마음 참 요사하다. 매일 이런 생각이 난다.
여기 내 집이 있고, 내 가족이 함께 하고, 주위에 내 친구가 있으며, 내 고집대로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또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 자가용으로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고, 비행기 타고 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내 자고 싶은 곳에 얼마든지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학교에서 작업을 한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운동 겸 스트레칭을 한다. 그 이후로는 할 일이 없다. 컴퓨터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본다. 이것도 매일 해보니 시시하다.
작업실에서 작업은 처음이라 그저 멍하다. 딱히 무엇을 해야 할 것도 없다. 학교 프로그램을 할 때는 적당하게 프로젝트가 주어진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그냥 내가 편하게 작업장에서 내 작품을 기획하고 만든다. 종류와 크기와 수량도 내가 정하고 내가 한다.
한 달이 지나고 이제는 강가를 거닐 때나 걸을 때, 혹은 멍하게 있을 때도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만들 것인가 하고 무심코 생각에 젖기도 하며 몰입도 한다. 그리고 작업을 한다. 이때 작은 만족감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인생도 따지고 보면 본래 그런 것이다. 그냥 마시고 놀고 즐기면서 목적지 없이 바다를 향해하는 것보다는 작지만 뭐라도 나의 세계를 만들고 꿈꾸며 향해하는 것이 훨씬 좋다.
욕심대로 여기 내 집과 가족이 있고, 내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고, 타고 싶은 비행기 마음대로 타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나는 그냥 퍼져서 그냥 대충 시간을 보내며 인생을 즐기겠지. 그리고 내 인생이 다 가면 나라는 놈은 후회하겠지.
이래도 후회하고, 저래도 후회한다. 내 스스로 의도한 것이지만 시공에 갇혀 사니 어쩔 수 없이 내 세계를 만들면서 그 속에서 알찬 시간을 보낸다. 한 달이 지나니 이제 겨우 적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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