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01019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

Hi Yeon 2024. 1. 17. 13:34

201019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들

 

살다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어 중년에는 그런 일을 잘 헤쳐 나간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직장이나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한 노년은 그저 살아온 경험으로 인생을 쉬거나 즐기는 세월이다. 다소 무기력해지는 나이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때 간혹 스스로를 자제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좀 행복한 이야기이다. 노년에 생활비를 벌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보니 앞만 보고 간다. 그러나 생활고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말 못할 고민을 한다. 여기서 혼자 고립까지 요구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할 때 정말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앞만 보고 갔다. 간혹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의 시간이 있었지만 금방 제자리로 돌아와 앞으로 나아갔다. 사는 것이 다 그러려니 했고 그러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꿈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은 나와 다른 외국인들이었지만 그들은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꿈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관심이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었고 힘차게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귀국한지 벌써 4년이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이민생활보다 훨씬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캐나다에서 밥벌이로 했던 일보다 더 대우받는 일을 한국에서 하고 있건만 과거보다 갈등은 심하다. 가만히 따져보면 과거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많이 희미해졌다는 것이고 나이 탓도 있는 것 같다. 이제 60을 넘겨 절반의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나아졌는데 좋다는 생각이 왜 안 들까? 주변 환경 탓을 해보자. 한국사회가 무한경쟁사회이고 물질위주사회이기에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자극을 받기 때문일까? 또한 경직되고 무원칙의 원칙이 남무하고 깡마른 사회에서 나는 자주 물에 기름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일까? 캐나다에서는 힘이 들었어도 시간은 정지되었고 그런 정지된 시간의 연속이 행복감을 주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내 탓도 있겠지. 힘이 들더라도 다시 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를 그냥 수동적으로 보내기보다 내가 시간을 잡고 내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활기차게 만드는 것 같다.

 

갑자기 무료하고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다. 며칠 전에는 친구와 함께 소주를 했다. 알코올이 나의 감정을 잠재우기보다는 이제는 악몽이 되었다. 간혹 마시는 술이 이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나를 더 혼란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 과거에는 한잔 술을 걸치면 외로움이나 무료함이 묻혔지만 이제는 혼란만 더해졌다. 젊었을 때는 별일 없이 잘 마시고 지냈는데 말이다. 아참, 그때는 꿈이 있었지.

 

코로나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 고놈이 사람을 서로 멀리 하게 만든다. 멀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뿐인가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게 한다. 가까운 가족끼리 그렇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그렇다. 서로의 모임뿐만 아니라 추석이나 설 같은 특별한 날에도 고향에도 못 가게 한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사람은 사람과 만나야 한다. 그래서 가족이 있고 사회가 있는 것이다. 권력은 가족끼리도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언제나 혼자 있기를 강요한다. 세상은 이리도 삭막한데 온라인으로만 보고 대화하라고 윽박지른다. 노인들은 온라인의 대화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개인정보 노출로 일상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누군가 보고 있고 듣고 있고, 내 위치가 항상 기록되고 감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은 오직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권력은 현상만 보고 사람을 윽박지르고 겁을 준다. 오랫동안 그런 환경에 사람들이 길들어지니 이제 그것이 최선이 되었다. 코로나 확산을 방해하는 생각과 작은 행동마저도 해서는 안 되는 무서운 악이 되었다. 조금만 정부에 협조하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흑백논리만 있다. 다른 선택이 없어졌다. 이런 수단이 사람을 양떼를 몰듯 몰아가고 있다. 다른 비열한 목적성이 가미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중 힘없는 많은 양떼들은 지금 소리 없이 울며 쓰러져 가고 있다.

 

사실 코로나보다는 흐트러진 감정이 더 위험하다. 코로나는 정복될 수 있지만 우리의 사회가 더 삭막해지면 그 악영향의 폭발력은 가름할 수가 없다. 코로나를 막자고 하나의 길로만 윽박지르면 우리 사회가 의도한 방향과 영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잘 살펴보아야 하지만 위정자는 코로나 확산방지를 권력유지에 좋은 방편으로만 생각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코로나에게 희롱을 당하는 꼴이 된다.

 

충분한 삶터를 가진 자들은 코로나에 다소 견딜만하다. 가족이 있는 자들도 견딜 만하다. 철밥통 공직자들에게도 이 정도는 별 탈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코로나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그런 여유도 여력도 충분하다. 그들에게 정부지원금도 나왔다. 그토록 자주 갔던 해외여행을 못가서 불편할 뿐 그래도 견딜만하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코로나라고 하여도 울고불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20평도 안 되는 삶의 공간에서 온 가족이 매일 뒹굴며 산다. 가족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방 하나에 의존하는 혼자 사는 사람들도 정말로 많다. 몇 평의 공간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만 방 밖으로 나오지 말란다. 사람을 만나지 말란다. 이렇게 외로운 사람에게는 코로나 때문에 더욱 고립된다. 이렇게 코로나 때문에 사람구경조차 힘들다.

 

그뿐인가? 많은 사람들이 실직 당하고 감봉된다. 누군가는 폐업하거나 수입이 왕창 줄어든다. 가족이 순식간에 붕괴된다. 가족이 파괴되면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 코로나가 때문에 취업이나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마저 없어진다. 한두 평에 사는 혼자도 많다. 가득이나 힘든 상황에 사람을 고립시킨다. 작은 공간에서 고립되고 어려운 형편에 놓인다면, 그리고 그런 환경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나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꿈의 상실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배고파도, 아무리 외로워도, 꿈을 먹으면 살 수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는 꿈이 없는 것 같다. 있다면 중산층들에게는 꿈이 있겠지. , 있겠지. 어떻게 하면 내 것을 유지할까? 어떻게 하면 젊어 보일까? 어떻게 하면 맛있는 것을 먹을까? 하는 그런 꿈이겠지. 그것은 꿈같지 않는 욕심에 불과하다.

 

며칠 전 사무실에서 동료 친구를 만났다. 30대 조카가 있었는데 이틀 전 스스로 죽었다고 하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는 매스컴에 나오는 뉴스에 내 머리와 가슴을 맡긴다. 어떤 하나의 사건이 뉴스로 나오고 그것이 반복이 되면, 마치 그것이 세상에 유행되고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뉴스거리는 없어진다.

 

현장은 그렇지 않다. 구석구석 세상에서 우리가 예견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것보다 수천 배 다양한 일들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어떤가? 항상 책상에 앉아 입으로만 일을 한다. 현장이 실종되고 권력자들은 책상머리 규정을 만들어 혼란을 부추긴다. 그리고 코로나 정책을 계속 수단으로만 밀어댄다. 인간이 없는 세상, 배고픈 세상, 꿈이 없는 세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고립만을 강요한다.

 

정부도 그렇지만 일반 대중도 닮아간다.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코로나 방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은 악으로 취급한다. 나 배 든든하니 나 위험하지 않게 무조건 조심하라는 것이 아닌가? 중산층일수록, 형편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혹은 자기 몸이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처지가 아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책상에서는 모른다. 중산층들도 그런 이웃이 얼마나 많고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게 지내는지 모른다. 평생 학교에서 시킨 대로 잘 외우고 시험 잘 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한계이고, 권력욕에 빠진 인간들의 눈높이이다.

 

올해 2월부터 시작한 코로나는 10월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는 계속 지속될 것 같다. 코로나를 퇴치한다고 해도 아마도 이전 사회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고립의 시대, 온라인의 시대, 마스크의 시대는 계속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상실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꿈이라도 꿀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배고픔이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꿈이 없는 것이다. 배고픔과 외로움이 만나면 아마도 두 배가 아닌 제곱의 크기로 문제가 생길 것이고, 상실된 꿈은 삼승의 곱으로 확대시킬 것 같다. 그래서 나훈아가 부른 테스 형이 유행하는 것 같다. 위정자들이, 높고 잘 났다는 그 많은 권력 위정자들이 어찌 이 노래 하나보다 못하단 말인가?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