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71

211207 고민하는 A Creator가 되길 원한다

211207 고민하는 A Creator가 되길 원한다 설계사무소를 할 때였다. 지인을 통해 공장증축을 해 달라는 의뢰가 왔었다. 설계는 하나의 지능지식산업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업활동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얼른 옷을 잘 차려입고 공장을 방문했다. 그 공장은 도시 근교에 있는 기타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집약산업은 이미 한국에서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이전한 상태였지만 이 공장만큼은 여전히 한국에서 버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급 기타 브랜드 ‘콜텍’였다. 현재 공장규모와 작업흐름을 조사하고 도면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경영자와 공장장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공장장과 여러 번 만나고 밥도 먹었다. 회사와 생산품인 기타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추가적으로 노동자 작업흐름과..

211016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211016 가을의 풍요로움과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211016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매일 아침 등산길이 매우 즐겁다. 동행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면 산 입구에서 그를 만난다. 그리고 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면서 간다. 그는 주로 가정, 아내, 그리고 직장에서 힘든 이야기를 한다. 막일을 하면서 겨우 가정을 꾸려가니 그렇고, 삶의 피로도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크니 그렇고, 나이도 60을 넘겼으니 그럴 만했다. 그는 자주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자연인을 꿈꾼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러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금 사는 것이 힘이 드니 괜히 불평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홀로 사는 자연인은 피치 못할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살 것이다...

211015 들국화 향기처럼

211015 들국화 향기처럼 나는 아침마다 인근 산에 등반을 한다. 왕복 2시간 거리이다. 가는 도중에는 촌민가도 있다. 가는 여정에는 경사도 있고 평지도 있어 다양한 경험을 얻는다. 등반코스는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곳이 대부분이다. 아침을 이렇게 보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 급할 것이 없고 하루가 여유롭다. 매일 등반을 하다 보면 동행인이 생기기 마련이다. 요즈음 코로나 시기이다. 산행에서도 누구나 마스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눈인사 같은 것도 없이 무심히 지나친다.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알아도 모른 척 지나간다. 세종시 아파트 지역 가까운 산이다. 도시민이 많이 찾고 주변 인근 토백이 사람도 제법등반한다. 아는 사람과 같이 걸으면 등반이 많이 재미롭다. 나는 외지인이기 때..

210921 추석 날 아침 등산 길에서

210921 추석 날 아침 등산 길에서 추석날이다. 남들은 다 고향에 갔을 것이다. 추석날은 우리의 최대 명절이다. 가족 친지를 만나고 차례를 지내는 추석은 일년 중 으레껏 하는 큰 행사이다. 요즈음은 차례를 지내는 것보다 가족과 만남을 더 중요시 한다. 누구는 가족과 휴양지로 가족끼리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간단한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많다. 귀신은 다 할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 어디에 제사상을 차려도 다 알고 간다. 제사상에 과일과 찌짐을 놓든 초장회나 파스타를 놓든 잘도 드신다. 오히려 귀신도 현대적인 음식을 더 좋아할런지 모른다. 정종보다 소맥이나 치맥을 더 좋아할런지도 모른다. 조상 귀신님은 허구한날 과일과 찌짐, 마른 명태나 생선구이에 소고기국을 추석날마다 드신다. 아마도 요즈음 음식을 한..

210803 화사하게 핀 들꽃처럼 지저기는 새처럼

210803 화사하게 핀 들꽃처럼 지저기는 새처럼 7월 말이다. 참 무덥다. 습기에 고온이니 짜증까지 난다. 아침에 일어나 1시간 몸을 깨운 후 산에 올랐다. 아침 햇살은 벌써 중천이다. 아침 9시가 다 되어가니 말이다. 몸을 깨우는 아침 시간이고, 모자와 마스크를 덮어 썼고, 날씨마저 무더우니… 산행 중에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별로 없다. 입가에 수증기가 차고 덥고 답답했다. 산행 중 잠깐 마스크를 풀고 모자창을 올렸다. 왠 일일까? 평소에 무심코 보았던 들꽃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들꽃이 작은 벌판을 꽉 매웠다. 무슨 꽃일까?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귀도 열렸는가? 산새 소리는 매우 요란하다. 평소 산행 때 무심코 듣고 외면했던 소리이다. 시끄러울 정도이다. 무심코 나에게 물어 본..

210719 바다와 호수가 있는 고성 화진포

210719 바다와 호수가 있는 고성 화진포 한반도는 동고서저 형태이다. 동쪽은 높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은 평야가 많다. 그래서 동해안은 수심이 깊고, 서해안는 수심이 얕다. 동해에는 해안선이 단조롭고 강줄기가 짧은 반면 서해는 오밀조밀하며 섬이 많으며 강줄기도 길다. 아마도 동쪽 육지가 솟아 올라 산이 되었고, 서쪽은 가라앉아 평야가 되었나 봐. 산이 높고 바다가 깊으니 당연 동해안에는 호수가 없다. 부산에서 강릉까지 달려 보아도 동해안에 호수를 본 적이 없고, 또한 큰 강을 본 적이 없다. 동해안 가까이 섬도 없다. 솟아 오른 동해안 산줄기는 바다로 향한다. 그 산줄기와 산줄기 사이가 계곡이 되고, 그 계곡에 동해 바닷물이 든다. 그곳이 얕으면 백사장으로 발달하고 수심이 깊으면 항구가 되고 ..

210718 한계령의 추억

210718 한계령의 추억 그녀와 결혼하고 몇 개월 후 어느 휴일, 우리는 자동차로 설악산을 찾았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길을 넘고 넘어 한계령에 도착했다. “여기가 한계령이야” “시원하고 좋네” 난 그녀와 이렇게 한계령에서 저 멀리 보이는 첩첩 산을 잠깐 즐기고 그리고 떠났다. 그것이 다였다. 32년 전 일이었다. 오늘 한계령에 섰다. 한계령휴게소 찻집에 들렸다. 저 아래 산너머 산이 내 눈 아래 펼쳐졌다. 느긋하게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떠오르는 그 추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있지도 않는 기억을 억지로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행이 있어 그냥 되돌아가야 했다. 한계령에 오기 전에 일행이 나에게 물었다. “한계령에 가 보셨어요?” “아뇨.”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싣고 탱크 같은 자동..

210618 애들은 시끄럽다

210618 애들은 시끄럽다 나는 박진영(JYP)을 매우 좋아한다. 그는 노래, 작곡, 춤, 등등 다방면에 재능이 탁월하면서 원칙론자이고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강남스타일’ 싸이(PSY)와 함께 SBS TV에서 LOUD라는 이름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에 방영되는데 이번 주 방영은 3회이다. LOUD는 힙합(Hip Hop) 경연 오디션이다. 힙합은 비트가 빠른 리듬에 맞춰 자기 생각이나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는 랩과 레코드의 스크래치, 마치 곡예와도 같은 격렬한 동작의 브레이크 댄스가 가미된 새로운 감각의 댄스 음악이다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을 교육시킬 때 전통적인 공부에 얽매인다. 유행, 재미, 인기보다는 현실적 폼과 경제적 이득을 따지는 것이다. 무를 천시하고..

210613 불국사 입구에서 버찌 맛을 보고

210613 불국사 입구에서 버찌 맛을 보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산보를 나간다. 지금 경주 불국사 시내 원룸에 머물고 있다. 내 원룸 큰길 건너에 작은 호수가 있다. 이름은 ‘영지’이다. 호수변 산보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호수를 두 번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 식사을 한다. 핸드폰은 9,000보를 알린다. 영지 호수 둘레길은 벚꽃이 조성되어 있다. 사실 벗꽃이 만발하고 있을 때 그 하얀 빛깔과 모양을 보고 “아, 벗꽃이구나” 하고 실감을 하지만, 꽃이 지고 나무잎이 무성할 때는 나는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그냥 가로수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날 무심코 걷는 도중, 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짙붉디 붉은 검정색의 열매가 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하나 따 먹어 ..

210414 어머니같은 내 누님

210414 어머니같은 내 누님 오늘도 사진을 본다. 내 기억에 없는 사진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한 장면이다. 보면 마구 울고 싶다. 울고 나면 영화의 한 장면인가 했다. 큰 누님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시집을 갔다. 그래서 나는 생질(누님의 자녀)들과 같이 자랐다. 누님 집에서 혹은 내 집에서… 남편의 평생실직으로 평생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누님이었다. 생활고에 마음과 정신은 돌같이 굳어버렸다. 살아야 하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평생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것, 그것은 남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남편이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누님은 그후로 방황했다. 왜, 이리도 우울하고 허전하며 외로울까? 그러나 누님은스스로 일어설려고 무단히 노력했다. 나는 금방 일어설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랑..

210401 누님을 생각하며 생질들과 저녁 모임을

210401 누님을 생각하며 생질들과 저녁 모임을 화장장과 비석 작업에 참여하고,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생질들과 돌아가신 누님 댁에서 누님을 회상하며 이야기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금 눈을 붙이니 아침이었다. 머리는 띵하고 몸은 찌뿌득하였다.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밖으로 나갔다. 후배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니 큰 생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님 큰 딸은 현직 교장이며 나보다 1살 아래이다. 3살밑으로 남동생이 있는 데 불국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곳으로 와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였다. 그리고 전해 줄 사진이 많다고 하였다. 점심을 대충 먹고 바로 그곳으로 갔다. 48평 아파트에 식당이 제법 넓었다. 누님의 큰 딸, 큰 아들 내외, 그리고 둘째 딸과 막내 딸 내외, 이렇게 ..

210331 누님을 떠나 보내며

210331 누님을 떠나 보내며 누님을 마지막으로 보려 영안실로 갔다. 잘 차려 입은 누님을 보니 또 한번 통곡이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밖에 없었다. 두배를 하고, 삼배도 하고, 또 18배를 했다. 잘 가시라고 바닥에 업드려 합장하고 빌고 또 빌었다. 경주 시내에서 화장장으로 가는 길은 30분 거리였다. 장례 버스에서 딸들이 울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누님이 남겨둔 유품 중 일기장을 읽어 보고는 대성 통곡이었다. 누님은 20년 동안 하루 하루 일을 적어 놓았다. 딸 이야기, 아들 이야기, 손자 이야기가 있었고 친정집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도 있었다. 삼촌, 삼촌… 삼촌 이야기도 있다고 하면서 나를 보고 딸내들이 울음보가 터떨었다. 갑자기 내 눈에도 눈물이 났다.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경..

210516 어머니에게 보내는 맏딸의 아름다운 언어

210516 어머니에게 보내는 맏딸의 아름다운 언어 인간은 죽은 후 7일 동안 다시 태어나 죽고, 이것이 7번 반복되면서 그 동안 죽은 자의 공덕이 심판되어 내세에 태어난다. 죽은 후 더 좋은 내세를 위해여 지내는 대승불교 의식이 바로 49재(칠칠재)이다. 49재가 끝나면 죽은 자는 다음 세대로 떠났다고 보고 탈상을 한다. 자식들은 상주에서 벗어나는 시기이다. 불교의식인 49재가 요즈음 사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으로 정착되고 중시된다. 49재 의식에서 스님은 죽은 자가 모든 죄와 업을 털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염불한다. 누님의 49재였다. 경주 포석정 옆에 있는 망월사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12시까지 진행되었다. 스님의 염불을 귀담아 들어보니 반야심경, 다라니경, 등등 몇가지가 들렸으나 ..

191227 고국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191227 고국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고 저녁이며 일찍 일을 끝낸다. 그리고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쉬면서 공상이나 디자인 혹은 글을 쓴다. 즉 일을 한 후 저녁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사실 일할 때도 거의 혼자이고, 물론 학부 시간에는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도 하지만, 저녁에 또 나만의 시간을 가지니 하루 대부분 혼자인 셈이다. 낮은 의지의 시간이고, 저녁은 감성의 시간이다. 낮 시간은 디자인한 것을 구체화하는 시간이고, 저녁 시간은 디자인 혹은 구상 시간이다. 낮은 현실적인 시간이고, 저녁은 상상하면서 쉬는 시간이다. 즉, 현실과 상상을 왔다 갔다 한 후에 잠자는 것이 나의 하루이다. 캐나다에서 ‘공예 대학교’를 다닐 때는 그런 생활을 줄곧 해왔다. 그리고 ‘졸업후과..

180405 다쳤을 때는 자기 관리가 최고이다

180405 다쳤을 때는 자기 관리가 최고이다 캐나다에서 두 번의 자동차 사고를 당한 후 나는 자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시꺼먼 버스 범퍼가 내 등 뒤로 다가오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때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나 스스로 깜짝 놀란다.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한다. 밤에 혼자 있으면 가끔 무엇인가 시꺼먼 범퍼가 다가오는 것 같다. 평소 사고 소식을 매스컴을 통하여 듣고 보고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일로 여겼다. 그런데 나도 당하고 보니 사고가 내 삶을 부셔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고로 찢어지고 부서진 몸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치유된다. 그러나 상처 난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우리의 깊숙한 내면의 세..

171227 상여를 매니 문득 우울해진다

171227 상여를 매니 문득 우울해진다 내 고향은 경상도 경주이다. 경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상경했다. 서울에서 생활하였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몄으니 나는 서울 사람이기도 하다. 그 후 어찌어찌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가 충청도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산지가 20년이 되어 간다. 자연히 친구도 여기서 새로 사귀게 되었다. 고향 친구는 이제 어디 사는 지 잘 모른다. 여기 친구들이 사실 내 친구이다. 이웃사촌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조사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주로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오는 것이 전부다. 갑자기 오늘 친구의 부친 부음을 받았다. 나는 봉투만 전하고 귀가하였다. 나이 60이 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장소에 잘 가지를 않는다. 친구 아버지를 뵌..

170404 조금 적게 먹고 살아간다면

170404 조금 적게 먹고 살아간다면 사람의 욕망은 크게 나누면 식욕, 색욕, 물욕을 들 수가 있다. 그중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먹는 문제' 즉 식욕이다. 먹고살기가 어려울 때는 최소한의 먹을거리로 살아간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좋아짐에 따라 최우선으로 움트는 것이 바로 식욕이다. 그 다음으로 색욕이고,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물욕이 생긴다. 식욕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건강을 한평생 좌우한다. 나이와 건강에 좌우되는 색욕과 개개인의 주관이 많이 관여되는 물욕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먹는다'는 것은 우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원초적인 욕구이면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정도만 먹으면 된다. 필요 이상 먹는 양만큼 건강..

170228 이보게 친구, 한잔 하게

170228 이보게 친구, 한잔 하게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은퇴한 친구와 함께 작은 도시의 시청 앞 건물에 사무실을 열었다. 다행히 지인들과 친구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빈손으로 오라고 하였으나 몇몇은 화분을 보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인데 생각보다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같이 일하는 내 친구는 마당발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비슷한 또래는 다 그의 친구이다. 나와 그는 절친이고 동문이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고, 같이 막걸리를 마신다. 자연히 그의 지인은 내 지인이다. 복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전원도시의 시청 앞 사무실에서 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일을 즐길 수가 있으니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그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이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하다. 주로 그가 ..

170226 노년에 능동적으로 산다는 것

170226 노년에 능동적으로 산다는 것 사무실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뛰어 다닌다. 이런 경제적인 활동에서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하는 일이 더 많다. 시간이 날 때 혹은 저녁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이러한 예술행위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이 활동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하나의 차이를 알게 된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돈 벌기 쉽고, 반면 먼 미래를 보고 활동하여야 예술분야에서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오늘 무엇이 가장 유행하고 있는가? 지금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가, 혹은 가까운 내일은 어떻게 변할까를 고민하여야 당장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반면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과거에서 현재까지 유행하지 ..

151022 길 위에서 고국 행을 머뭇거리다

151022 길 위에서 고국 행을 머뭇거리다 나는 10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었다. 이민 오자마자 사업을 하였으나 1년을 못 넘기고 스스로 접었다. 그 후 많은 방황을 끝내고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애 둘을 키우고 보살피는 데 전력을 다 하였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애들은 학교과정 뿐만 아니라 주대표선수로서 체육활동도 잘 해 주었다. 큰애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나도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큰애는 독립하여 공부와 취업을 병행하였고 그리고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작은 애가 대학공부와 취업을 병행하면서 독립하였다. 이제 두 아들이 내 곁을 떠나 공부를 하게 됨으로서 이때부터 나는 동부캐나다 작은 도시에 혼자 지냈다. 그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변별..

150624 캐나다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다

150624 캐나다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다 2006년 5월 29일, 우리 가족은 캐나다 동부지역 NB주, Saint John에 랜딩하여 반년을 지낸 후 NB주 수도인 Fredericton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Gas station & Convenience & Bar를 구입하여 운영하다가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되팔게 된다. 그 이후 2008년부터 주에서 제공해 주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와 애들 돌보기를 2년 하였으나 생각 많큼 영어는 늘지 않았다. 말하기도 그렇고 듣기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경상도 출신으로 한국말도 대충 흘려서 말하는 나로서는 영어는 정말 어려운 상대였다. 2년을 열심히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

150603 작은 항아리

150603 작은 항아리 캐나다에 이민 올 때는 큰 가구들은 다 버렸으나 대부분 살림살이는 가져 왔었다. 10년 후 애들은 커서 타지로 떠났고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가방 한 개만 남기고 캐나다 살림살이를 모두 다 정리하였다. 이때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모두 처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정든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중에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항아리이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갖가지 젓 종류를 직접 항아리에 담가 만들었다. 자연히 뒷마당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특히 어머니는 대가족의 큰 며느리이다 보니 우리 집에는 항아리 종류가 많았고 그 크기가 컸다. 가족 중에 내가 마지막으로 가정을 가졌고, 그때쯤에는 우리 집에서는 더..

150514 이제 막내도 떠나고

150514 이제 막내도 떠나고 오늘 막내가 떠났다. 살고 있는 집이 팔렸기에 나도 한 달 후 유월이 되면 떠나야 한다. 큰애는 2년 전 이미 타주로 떠난 상태이다. 이민 올 때는 고국의 살던 집을 처분하고 가재도구를 모두 가져 왔지만 지금은 가져 온 가재도구와 여기서 구입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다 버리던가 아니면 거라지 세일로 처분해야 한다. 애들이 내 곁을 떠나면서 나도 가볍게 이 도시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막내가 떠나고 난 다음 날 집안을 둘려보니 큰애 방과 작은애 방에 옷가지며 침구, 책상, 그리고 애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다. 애들 둘 다 여행용 가방 하나만 챙겨서 떠났기 때문이다. 고국에서 가져온 것들, 캐나다 생활 10년 동안 구입한 옷가지, 예복, 운동복들, 그리고 책상과 책..

150509 큰아들의 방문

150509 큰아들의 방문 먼 타주로부터 오는 아들을 배웅하려 나는 공항으로 나갔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공항 입구에 자동차를 대니 마침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이니 쉽게 그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는 벌꺽 그를 안았다. "내 큰 아들아, 잘 왔다." 얼마만인가. 한참을 그를 가슴으로 안고는 나는 쉬이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2년 전 바로 이맘 때 온타리오의 어느 산골로 나무 심는 일로 간다고 한 놈이 이제 내 품에 있느니 말이다. 얼굴을 처다 보니 그는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아들이 차린 저녁상과 술잔으로 늦은 밤을 보낸 후 머무는 10여 일 동안 그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이 그리도 좋..

150428 애들에게는 고향이 무엇인가

150428 애들에게는 고향이 무엇인가 작년 겨울이 시작되는 어느 공휴일이었다. 나는 작은애에게 자동차를 몰고 같이 바람이나 쉬고 오자고 제안했다. 작은애는 아버지의 심기를 알아 차렸나? 흔쾌히 받아들이고는 "Saint John이 어떠세요?" 라고 권했다. 그래, 당근이지. 우리는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Saint John은 대서양연안에 면한 항구이고 초기 캐나다의 관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민하면서 이곳에 랜딩을 하였고, 1년 살다가 인근 도시 Fredericton으로 이사를 하였다. Saint John은 Fredericton에서 차로 1시간이면 갈 수가 있는 도시이다. 운전은 작은애가 하였다.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은 금방이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자 그는 내 눈에 아주 익은 곳으로..

150128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 이제는 가슴이 터진다

150128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 이제는 가슴이 터진다 적설량20-30cm를 넘나드는 눈 폭풍으로 도시전체가 고요 속에 빠져 버렸다. 학교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상가가 문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이 출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침, 이때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눈은 보통 도시를 마비시킨다. 일반적으로 눈 폭풍이 주말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폭풍은 주중에 시작되면 그 피해는 최악이 된다. 수요일 아침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눈 폭풍이 몰아치니 주말로 이어지는 한 주 전체가 당연 연휴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완전무장을 하고 눈보라 속을 뚫고 걸어서 학교에 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아차! 내가 눈 폭풍의 뉴스를 들었건만 건성으로 들었을 모양이었다. 출입카드로..

140903 우리를 스스로 죽게 하는 것들

140903 우리를 스스로 죽게 하는 것들 칠흑 같은 새벽이었다. 선임병이 나를 급히 깨웠다. "야, 일어나 빨리 빨리" 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눈을 비비면서 얼른 옷을 입고 군화를 실었다. 그리고 선임병을 따라 나섰다. 밖에는 이미 야전 앰뷸런스가 시동을 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엔진소리와 함께 두 줄의 헤드라이트가 안개에 둘려 쌓인 어두운 밤을 뚫고 흐느적흐느적 미친 듯 춤을 췄다. "야 무엇해, 들것을 실어야지, 그리고 빨리 타" 모두가 고요히 잠든 한밤중이었다. 선임병과 나를 실은 앰뷸런스는 꼬불꼬불 거리는 길을 따라 어디론가 산속 깊숙이 가고 있었다. 지프차만한 작은 앰뷸런스 안에는 군의관이 앞에, 선임병과 나는 뒤에 타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140901 이민생활 두 아들 이야기

140901 이민생활 두 아들 이야기 만 23살 되어가는 큰아들이 있다. 그를 캐나다로 데리고 온지가 벌써 8년이 넘었다. 그러니까 만 15살을 넘어 캐나다 땅을 밟은 것이 된다. 학년으로 따지면 그때가 중학교 3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2년 동안 이민 진행사항을 애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정되지 않은 사항으로 괜히 애들이 동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미리 애들이 알면 다른 모든 가족들이 저절로 알게 되어 반대와 걱정이 교차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주권이 나오자 그때 처자식에게 공식적으로 알렸다. 물론 아내는 그 전에 진행사항을 미리 알고 있었고 완강히 반대하면서 버티고 있었다. 공부에 그리 관심이 없었던 큰애는 아버지가 또 일을 벌이네 하는 정도였고 11살인 초등학교 6학년의 둘째는 나이..

140717 어머니의 생선조림

140717 어머니의 생선조림 나는 동해 수평선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그럴까? 널따란 초목을 바라보는 것보다 탁 터인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았다. 뿐만 아니라 부둣가에서 그물을 터는 사람들의 모습, 생선을 다듬고 나르는 아낙네들, 통통거리며 항구를 휘 저으며 나아가는 고깃배들, 그리고 그 짠 내, 이것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들판에서 콩밭을 메는 사람들, 바람에 출렁이는 벼이삭의 물결, 혹은 개천에서 미역 감는 애들과 같은 감흥보다는 나에게 더 친근했다. 들판에서 혹은 바닷가에서는 많은 종류의 싱싱한 야채와 과일, 혹은 해물이 난다. 그중에 바다야채와 해물에 대한 기억들은 그러한 이유로 나에게는 특히 남다르다. 요사이에는 해물들은 잡는 즉시 냉동되어 세계도처에 공급..

140511 어머니의 외로움

140511 어머니의 외로움 오랜 이민생활 후 고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우선 나는 고향집을 방문하였다. 지금은 어머님이 저 세상으로 가셨지만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고향집이었다. 아직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었다. 큰형님은 어머님이 평생 살아 오셨던 그 집을 남에게 세를 주기가 마음이 걸렸는지 그대로 두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은 누렇게 빛만 바래고 있었다. 그렇게 아직도 우리 집은 읍내 입구 길가에 마치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것처럼 떡 버티고 있었다. 어머니의 정취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거실 앞 창 너머에 눈길을 주면 동네 큰길이 보였다. 그리고 창가에 다가가면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안방에서는 뒷마당이 보였다. 집의 앞은 거실이 있었고 뒤는 안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