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14 어머니같은 내 누님
오늘도 사진을 본다. 내 기억에 없는 사진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한 장면이다. 보면 마구 울고 싶다. 울고 나면 영화의 한 장면인가 했다.
큰 누님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시집을 갔다. 그래서 나는 생질(누님의 자녀)들과 같이 자랐다. 누님 집에서 혹은 내 집에서… 남편의 평생실직으로 평생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누님이었다. 생활고에 마음과 정신은 돌같이 굳어버렸다. 살아야 하고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평생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것, 그것은 남편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남편이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누님은 그후로 방황했다. 왜, 이리도 우울하고 허전하며 외로울까? 그러나 누님은스스로 일어설려고 무단히 노력했다. 나는 금방 일어설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와 같았다. 삶에 대한 고뇌였나? 평생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구속했고, 이제 갑자기 멍에가 풀려서 그랬나? 이제는 굳을 대로 굳은 마음이고 정신이다. 육체는 노약하고 아프다. 다시 자신으로 돌아가기는 가야 하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보기는 보아야 하는데, 이제 나이는 80중반이고 몸은 성한 곳이 없다.
자형이 돌아가시고 누님이 혼자 힘들어 할 때 나는 누님과 자주 통화를 했다. 어떤 때는 1시간을 넘겼다. 누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하는 말이다. 남동생하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다고 한 시간을 넘겨? 누님의 아들 딸이라는 가족 속에 동생인 나도 있었는가? 내가 생질과 함께 누님 집에서 혹은 내 집에서 자랐기 때문인가? 어머니 같은 누님이다. 자식과 할 말이 있고 형제와 할 말이 따로 있는가 보다.
보통 부모는 자식들에게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 애들이 걱정할까 봐? 그러나 동생인 나에게는 그런 부모의 우려보다는 그냥 순수 감정으로 대했다. 나에게는 “아프다”, “외롭다”, “엄마가 생각난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예를 들어 권했다.
“누님 장날에 빨간 치마도 사고, 빨간 구두도 사서, 입고 싣고 입술에 빨간 루즈도 발라 다녀 보세요. 훨씬 좋아질겁니다. 그 옛날 어머니도 가끔 그리 하셨는데…”
내가 귀국하여 드린 내 책을 드렸을 때 하루밤 사이 다 읽고는 나에게 전화 하셨다.
“야야 잘 썼네”
“근데, 읽어 보았어요?”
사실 내 책을 누군가에게 드릴 때는 그분들이 내 책을 읽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동생아, 하루밤에 금방 다 읽었어”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누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누님은 그때, 1950년대, 신여성이었던 것이다. 형님들이 누님에게 한문을 배웠다고 하였다. 배울 것은 다 배운 여성이였지만 누님은 그 당시 풍습 속의 보잘 것 없는 여자일 수 밖에 없었다.
큰 누님의 유품중에 일기장과 사진첩이 있었다. 오랫동안 써 온 읽기장이었다. 큰 생질(조카딸)이 나에게 보여주었다. 사진도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했다. 일기장은 누님 자신의 이야기만 있었다. 그렇게 힘든 일생이었지만, 누님의 글 대부분은 “고맙다”, 혹은 “잘 했어야 했는데”… 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경제적으로 보편적인 인생이었더라면 글을 쓰거나, 정치를 하거나, 혹은 사회 활동을 하거나… 무엇인가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950년대 사진 속에 양산과 핸드백을 들은 누님의 모습(사진에서 좌측)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2018년 5월 30일, 누님의 일기장에 있는 시다.
우리집엔 여러가지 꽃나무들이 많다
초봄부터 차례로 꽃이 핀다
일찍이 옥매화가 피고
목련이 피고
목단화가 피고
앵두꽃이 일찍이 핀다
또 박태기 꽃나무도 피고
또 노란 꽃도 피고
또 오월초에 작약이 만발되어
보기가 좋다
장미꽃이 만발이다
일년초 꽃이 너무 곱다
장에 가서 사온 꽃
이름 모르는 꽃
만발이 너무 곱다
노란꽃
이름을 모르는 것이 왜 그렇게 이쁜지
볼수록 귀엽다
그리고
달마리꽃도 곱다
꽃만 들여다 보아도 행복함을 느낀다
노로에 즐거울 일이 뭐 있겠는가
꽃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여자에 대한 단단하고 무서운 관습이 누님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관습은 그때 상황에 사람들이 만든 것,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은 아니다. 인간보다 관습이나 관행이 우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님은 나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그런 누님이 내가 이 봄날에 무심코 경주를 찾은 날 사고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후의 울음과 예법이 무슨 필요가 있나? 좀 자주 찾아 뵈었어야 했다. 그리고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모시고, 바람도 쉬게 하고, 밥도 사먹고…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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