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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613 불국사 입구에서 버찌 맛을 보고

Hi Yeon 2021. 6. 13. 12:35

210613 불국사 입구에서 버찌 맛을 보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산보를 나간다. 지금 경주 불국사 시내 원룸에 머물고 있다. 내 원룸 큰길 건너에 작은 호수가 있다. 이름은 영지이다. 호수변 산보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호수를 두 번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 식사을 한다. 핸드폰은 9,000보를 알린다.

 

영지 호수 둘레길은 벚꽃이 조성되어 있다. 사실 벗꽃이 만발하고 있을 때 그 하얀 빛깔과 모양을 보고 , 벗꽃이구나하고 실감을 하지만, 꽃이 지고 나무잎이 무성할 때는 나는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그냥 가로수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날 무심코 걷는 도중, 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짙붉디 붉은 검정색의 열매가 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하나 따 먹어 보았다. 그 맛이 희한했다. 텁텁, 약간 달콤, 특별한 향기였다. 실수로 그것이 손바닥에 터졌는데 손가락이 피로 물들 듯하였다. 맑은 피 같았다.

 

맛이 나쁘지 않아 5개 정도를 따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에도 5개 정도 따 먹었다. 먹기에 해로운 열매라도 5개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슨 열매인지 모르고 더 많이 먹을 자신이 없었다

 

며칠 후 세종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벗꽃 열매 즉 버찌라고 하였다. 그래서 얼른 온라인으로 그 실체를 알아 보았다. 버찌, 이것은 Berry 종류였다. 건강에 아주 좋은 열매이며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놈을 보고 먹어 본 이유는 그놈의 색깔이 검붉다는 것, 그리고 향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지면 피 같은 과습이 흘렸고, 그래서 그 색깔과 크기는 분명 베리종류 열매이리라. 그리고 세넷 알 정도는 약이 되리라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화천에 23일 캠핑을 마치고 경주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먹을 것을 위해 시장을 좀 보면서 피곤한 몸을 느긋하게 하기 위해 소주 한병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소주 한잔과 대충 먹다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하면서 내가 즐겨보는 연속극 밥이 되어라(MBC TV)’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할 때 목숨을 걸고 도워주는 사랑이 진정 사랑이다.” 주인공의 말에 눈물이 났다. 이 나이에 멜로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니덕분에 소주 반병을 마셨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났다. 피곤함과 소주 반 병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산보하는 내 규칙성이 깨져 버렸다. 대신 늦은 아침을 먹고 토함산을 올랐다. 토요일 오전이었다. 약간의 이슬비가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토함산으로 향하는 탐방로는 아주 한가했다. 안개 낀 깊은 산속 등산로를 걸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한 등산로이지만 오늘은 특별했다. 석굴암으로 향하는 산길, 그 고적함, 안개마저 내 시야를 가렸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어느듯 석굴암 입구였다. 종소리가 계속 울렸다. 종루에서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로 종을 울리고 있었다. 한번 종을 울리는데 1,000원이었다. 안개 낀 종루에서 비움을 바라며 마음에 종소리를 담았다.

 

내려 오는 중간에 약수터가 있다. 그곳에서 약수물로 목을 축였다. 불국사 입구로 내려왔다. 관광객이 오르내리는 입구 산보길에는 줄줄이 나무가 있다. 이제 눈에 그것이 확 보였다. 꽃이 필 때는 열광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도 보지도 않는 그 나무, 버찌였다. 머리 위로 손에 미치는 그 놈을 따서 먹어 보았다. 알고 먹으니 그 맛은 더 특별했다.

 

 

어쩌다가 버찌가 손가락에 터졌다. 붉은 피가 손바닥에 흘려 내렸다. 난 혓바닥으로 훔쳤다. 피는 비린네가 난다. 대신 버찌는 상큼한 맛이었다. 그 버찌가 바닥에 떨어지고 바닥을 검붉게 물들인다. 그 위로 행인들의 발자국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왜 안 따 먹을까? 몰라서 그럴까? 먹으면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그럴까? 먹을 것이 많은 요즈음 세상에서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럴까? 관습에 젖어서 그럴까? 그런데 나는 별종이어서 그랬을까?

 

봄날 눈빛으로만 환호를 받는 그 벗꽃, 혼자 애쓰며 붉게 익다 익다 이제 애가 탔나 검붉은 색이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없는 그 짙붉은 버찌, 그 몸은 결국은 바닥에 떨어진다. 터져 납작하게 껍질만 바닥에 있는 그 모습이 아련하다. 남에게 찬란하게 보이기만 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몸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다. 아무도 관심없는 버찌, 이슬비 내리는 불국사 길에 멈추어 서서 먹어 보는 피빛의 버찌 맛과 그 기분은 텁텁, 약간 달꼼, 특별한 향, 한마디로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어느 자유로운 인생 맛, 어느 자유로운 사랑 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