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3 불국사 입구에서 버찌 맛을 보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산보를 나간다. 지금 경주 불국사 시내 원룸에 머물고 있다. 내 원룸 큰길 건너에 작은 호수가 있다. 이름은 ‘영지’이다. 호수변 산보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 호수를 두 번 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 식사을 한다. 핸드폰은 9,000보를 알린다.
영지 호수 둘레길은 벚꽃이 조성되어 있다. 사실 벗꽃이 만발하고 있을 때 그 하얀 빛깔과 모양을 보고 “아, 벗꽃이구나” 하고 실감을 하지만, 꽃이 지고 나무잎이 무성할 때는 나는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그냥 가로수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어느날 무심코 걷는 도중, 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짙붉디 붉은 검정색의 열매가 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하나 따 먹어 보았다. 그 맛이 희한했다. 텁텁, 약간 달콤, 특별한 향기였다. 실수로 그것이 손바닥에 터졌는데 손가락이 피로 물들 듯하였다. 맑은 피 같았다.
맛이 나쁘지 않아 5개 정도를 따 먹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에도 5개 정도 따 먹었다. 먹기에 해로운 열매라도 5개 정도는 괜찮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슨 열매인지 모르고 더 많이 먹을 자신이 없었다
며칠 후 세종에 다녀왔다.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벗꽃 열매 즉 ‘버찌’라고 하였다. 그래서 얼른 온라인으로 그 실체를 알아 보았다. 버찌, 이것은 Berry 종류였다. 건강에 아주 좋은 열매이며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놈을 보고 먹어 본 이유는 그놈의 색깔이 검붉다는 것, 그리고 향기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터지면 피 같은 과습이 흘렸고, 그래서 그 색깔과 크기는 분명 베리종류 열매이리라. 그리고 세넷 알 정도는 약이 되리라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화천에 2박 3일 캠핑을 마치고 경주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다. 먹을 것을 위해 시장을 좀 보면서 피곤한 몸을 느긋하게 하기 위해 소주 한병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소주 한잔과 대충 먹다 남은 음식으로 저녁을 하면서 내가 즐겨보는 연속극 ‘밥이 되어라(MBC TV)’을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할 때 목숨을 걸고 도워주는 사랑이 진정 사랑이다.” 주인공의 말에 눈물이 났다. 이 나이에 멜로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니… 덕분에 소주 반병을 마셨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났다. 피곤함과 소주 반 병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산보하는 내 규칙성이 깨져 버렸다. 대신 늦은 아침을 먹고 토함산을 올랐다. 토요일 오전이었다. 약간의 이슬비가 내렸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토함산으로 향하는 탐방로는 아주 한가했다. 안개 낀 깊은 산속 등산로를 걸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한 등산로이지만 오늘은 특별했다. 석굴암으로 향하는 산길, 그 고적함, 안개마저 내 시야를 가렸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어느듯 석굴암 입구였다. 종소리가 계속 울렸다. 종루에서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차례로 종을 울리고 있었다. 한번 종을 울리는데 1,000원이었다. 안개 낀 종루에서 비움을 바라며 마음에 종소리를 담았다.
내려 오는 중간에 약수터가 있다. 그곳에서 약수물로 목을 축였다. 불국사 입구로 내려왔다. 관광객이 오르내리는 입구 산보길에는 줄줄이 나무가 있다. 이제 눈에 그것이 확 보였다. 꽃이 필 때는 열광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도 보지도 않는 그 나무, 버찌였다. 머리 위로 손에 미치는 그 놈을 따서 먹어 보았다. 알고 먹으니 그 맛은 더 특별했다.
어쩌다가 버찌가 손가락에 터졌다. 붉은 피가 손바닥에 흘려 내렸다. 난 혓바닥으로 훔쳤다. 피는 비린네가 난다. 대신 버찌는 상큼한 맛이었다. 그 버찌가 바닥에 떨어지고 바닥을 검붉게 물들인다. 그 위로 행인들의 발자국이 지나간다. 사람들은 왜 안 따 먹을까? 몰라서 그럴까? 먹으면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그럴까? 먹을 것이 많은 요즈음 세상에서 필요성을 못 느껴서 그럴까? 관습에 젖어서 그럴까? 그런데 나는 별종이어서 그랬을까?
봄날 눈빛으로만 환호를 받는 그 벗꽃, 혼자 애쓰며 붉게 익다 익다 이제 애가 탔나 검붉은 색이다. 그래도 아무도 관심없는 그 짙붉은 버찌, 그 몸은 결국은 바닥에 떨어진다. 터져 납작하게 껍질만 바닥에 있는 그 모습이 아련하다. 남에게 찬란하게 보이기만 하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몸은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다. 아무도 관심없는 버찌, 이슬비 내리는 불국사 길에 멈추어 서서 먹어 보는 피빛의 버찌 맛과 그 기분은 텁텁, 약간 달꼼, 특별한 향, 한마디로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마치 어느 자유로운 인생 맛, 어느 자유로운 사랑 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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