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5 들국화 향기처럼
나는 아침마다 인근 산에 등반을 한다. 왕복 2시간 거리이다. 가는 도중에는 촌민가도 있다. 가는 여정에는 경사도 있고 평지도 있어 다양한 경험을 얻는다. 등반코스는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산림이 우거진 곳이 대부분이다. 아침을 이렇게 보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 급할 것이 없고 하루가 여유롭다.
매일 등반을 하다 보면 동행인이 생기기 마련이다. 요즈음 코로나 시기이다. 산행에서도 누구나 마스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눈인사 같은 것도 없이 무심히 지나친다.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알아도 모른 척 지나간다.
세종시 아파트 지역 가까운 산이다. 도시민이 많이 찾고 주변 인근 토백이 사람도 제법등반한다. 아는 사람과 같이 걸으면 등반이 많이 재미롭다. 나는 외지인이기 때문에 도시민이든 현지인이든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혼자 아침 운동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그냥 혼자 등반한다.
세종에서 오래 전에 알던 친구 하나가 있다. 그는 여기 현지 토백이이다. 현장일을 하는 친구로 마침 일을 하다가 손을 다쳤다. 그래서 그는 당분간 쉬고 있다. 내가 매일 아침 등반을 하려면 그의 집앞을 지나가야 한다. 내 등반 이야기를 듣고 그도 함께 했다.
추석 며칠 전날이었다. 그가 등반을 하면서 돌아가는 길에 솔잎을 구하였다. 송편을 찌기 위해서는 솔잎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누라가 아마도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송편을 찔 때 솔잎이 필요한 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채집하는 지는 몰랐다.
그와 함께 소나무 하나를 찾았다. 양송이나 일본송이 아닌 순수 국산소나무가 좋다고 한다. 부드럽고 솔잎이 짧고 굵어서이다. 소나무 하나를 찾아 가지를 꺾어 우리는 손에 한무더기로 하여 쥐고 내려 왔다. 우리가 솔잎을 채취할 때 지나가는 사모님들이 솔잎을 부탁하기에 소나무 가지를 꺾어 드리기도 했다. 내가 쥔 것은 그의 집에 도착하여 그에게 전해졌다.
보통 꺾은 소나무 가지에서 솔잎만 별도로 분리해서 채취하여(마치 콩나무 묶음같이) 하산하여야 하나, 일이 많아 우리는 작은 가지로 정리하여 손에 쥐었다. 소문으로는 솔잎만 따서 한매듭으로 한 후 장날에 5,000원에 파는 할머니들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추석 며칠 전날에 말이다.
내가 등산을 하면서 밤을 줍게 된 것도 그 친구가 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등반 길에 무엇인가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밤을 줍고 심지어 숲속까지 들어가서 줍기도 했다. 아하 그렇게도 밤을 줍는구나 하고 나도 같이 하게 되었다.
어느날 그 친구가 다른 등산길을 권했다. 갑자기 야생 들국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왜 필요하냐고 물어 본 즉, 마누라와 다투어서 들국화 한다발을 갖다 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야생 들국화 향기가 강하고 매혹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들길에서 야생 들국화 가지를 꺽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기다리기 무엇해서 따라했다. 그는 많이, 나는 적당한 양의 꽃가지를 손에 쥐고 산에서 내려왔다.
나는 작은 병에 들국화 묶음을 넣어 책상에 두었다. 이때까지도 정말 이 꽃의 향기를 제대로 몰랐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일을 하고 있는 중, 그가 약간의 들국화 가지 묶음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꽃다발을 병에 꽃아 사무실 선반에 얻었다. 마누라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남은 몇줄기를 내 사무실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때 갑자기 표현할 수 없는 강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무척이나 황홀했다.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으흐, 이 향기가 그것이야.”
사람냄새가 나고 세상 냄새에 젖은 사무실에서 그 진하고 별스러운 향기가 갑자기 퍼지니 누군들 다 강하게 느끼고 취했으리라. 그런데 강하면서 매혹적인 그 향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나중에는 향기보다 그냥 내 눈앞에 들국화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아마도 들국화 향기가 계속 퍼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향기에 젖은 코가 조금씩 무감각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처음 들국화를 꺽어 내 코 가까이에서 느끼고 취하였으나 그 다음 집에서 꽃병에 담을 때는 그 향기를 처음 만큼 못 느꼈다. 그 이후 집에 머물 때는 더 그랬다. 아마도 꽃병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내 집에 들국화 존재를 몰랐으리라. 아마도 이 역시 처음 들국화 향기에 젖은 내 코가 조금씩 무감각되었던 모양이다.
이틀 후였다. 다시 책상 위의 꽃을 바라보았다. 향기는 있지만 느끼지 못 한다. 꽃이 좀 더 피었음을 알게 된다. 병 속의 물도 반으로 줄었다. 향기를 느끼지 못해도 아릅답다. 향기는 본래 있는 것이데 너무 젖어서 내가 못 제대로 느낄 뿐이다. 꽃잎이 매우 작은 흔하디 흔한 야생 들국화이다. 요것을 모아 꽃병에 담아서 보니 생각 이상으로 보기가 좋다. 짙은 노랑색이 특별하고 그 자태가 요염하다. 가까이 보면 볼수록 너무나 매혹적이다.
삶에도 향기가 있다. 그리고 그 본래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면 볼 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 느낌은 무디어 진다. 사람 향기도 그렇다. 처음에는 감동적이다가 시간이 가면서 우리는 그 존재를 조금씩 잊어간다. 나중에는 있으니 있구나 한다. 어떤 때는 마구 대하기도 한다. 부부와 가족사이도 그렇고 친구사이도 그렇다. 내 자신의 삶도 그렇다. 가끔씩은 떨어저 다른 환경에서 있어보고 다른 시간을 가져보고, 그리고 다시 다가가면 삶의 향기와 느낌이 더 새로울 수 있다. 다시 대하는 사람의 향기와 느낌도 새로울 것이다.
들국화 향기처럼 내 삶의 향기, 본래 아름다웠던 내 삶을 새로이 느끼는 동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시에 오늘 친구가 들국화 한다발로 아내의 향기, 본래 매혹적이었던 그 향기를 새로이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1207 고민하는 A Creator가 되길 원한다 (0) | 2021.12.07 |
---|---|
211016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0) | 2021.10.16 |
210921 추석 날 아침 등산 길에서 (0) | 2021.10.12 |
210803 화사하게 핀 들꽃처럼 지저기는 새처럼 (0) | 2021.08.03 |
210719 바다와 호수가 있는 고성 화진포 (0) | 202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