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7 고국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고 저녁이며 일찍 일을 끝낸다. 그리고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쉬면서 공상이나 디자인 혹은 글을 쓴다. 즉 일을 한 후 저녁에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사실 일할 때도 거의 혼자이고, 물론 학부 시간에는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도 하지만, 저녁에 또 나만의 시간을 가지니 하루 대부분 혼자인 셈이다.
낮은 의지의 시간이고, 저녁은 감성의 시간이다. 낮 시간은 디자인한 것을 구체화하는 시간이고, 저녁 시간은 디자인 혹은 구상 시간이다. 낮은 현실적인 시간이고, 저녁은 상상하면서 쉬는 시간이다. 즉, 현실과 상상을 왔다 갔다 한 후에 잠자는 것이 나의 하루이다.
캐나다에서 ‘공예 대학교’를 다닐 때는 그런 생활을 줄곧 해왔다. 그리고 ‘졸업후과정’을 다닐 때 변화가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졸업후과정’ 중에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 후로 목과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1mm 이하의 크기를 다루며 눈과 손에 집중하면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 저녁쯤에는 몸이 굳어졌다. 50대 중반이 아니던가? 하루도 빠짐없이 몰입하면서 몇 년이 지나니 눈이 흐려지고 목이 뻣뻣해졌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나는 목과 허리마저 다쳤다. 사실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 하더라도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몰입하면서 세심한 금속 공예와 공부를 해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하던 것을 중단할 수 없었다. 나름 방법을 생각하였다. 작업 중간 중간 스트레칭과 눈을 쉬었다. 그리고 저녁 5시이면 모든 것을 손에 놓고 체육관으로 달려가서 한두 시간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니 저녁 밥맛도 좋았다. 기분도 좋아지면서 저절로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착각 속으로 빠졌다.
집에 가면 달랑 방 한 칸이다. 밖은 캐나다의 홀로 된 짙은 어두움이다. 이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갇힌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 저녁식사 후이면 더 깊은 상상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또한 잠도 잘 왔다. 이렇게 하니 매일 작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사고로 다친 몸이었다 하더라도 하루 일과 패턴은 이렇게 하루하루 돌아갔다. 무섭게 파고들어오는 외로움과 불편함을 나는 이렇게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지금 고국생활은 편안하고 좋다. 좀 나태하기도 하다. 한 1년이 지나고 한동안 그때 그 시설이 그리웠다. 그래서 스스로 나를 옥 메어 그런 생활을 한 6개월 동안 해보았다.
억지로 할 이유도 없었기에 캐나다 생활과 비슷하게 고국에 와서 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해보니 캐나다 삶과 고국 삶 사이에서는 큰 다름이 없었다. 다른 것은 한 곳은 캐나다이고 다른 한 곳은 고국 한국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점은 캐나다는 내 스스로 외부로 나갈 수 없는 차단된 세계이고, 고국에서 생활은 마음만 먹으면 외부 세계로 쉽게 나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에서 생활은 저녁이 되면 외로웠다. 외로움은 나를 더 작품에 몰입시켰다. 그러나 고국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친구를 만날 수 있고, 같이 술도 할 수 있고, 수다도 떨 수 있었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고국에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집을 짓고 그곳에서 작업을 하였다면 어떨까? 외로움은 작품을 만드는 몰입으로 발산되었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작품을 하면서 생기는 외로움은 캐나다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과 비슷했으리라.
이렇게 따져보면 캐나다 생활하고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두 곳의 외로움의 양과 질은 비슷한데 분명 차이는 있었다. 고국에서는 왠지 모르게 편안하다는 것, 그리고 고국에서는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외로움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외로움과 불편함 때문에 고국으로 되돌아왔었다. 그런데 여전히 외로운 것은 왜 그럴까? 캐나다와 고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고 내부적인 요인도 있으리라. 아마도 많이 외로움이 해소되었지만 원초적인 인간의 외로움까지는 해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본능이다. 누구나 가족이 있든 없든, 행복하든 아니든, 내가 고국에서 느끼는 것은 군중 속의 외로움 같은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국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쉽게 외로움을 떨칠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삶의 편안함, 즉 경제적, 문화적, 생리적 편안함 등등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외로움과 불편함도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얼마나 쉽게 해소할 수 있느냐?” 또한 “얼마나 저절로 해소될 수 있느냐?” 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하기란 어려웠다.
젊은 나이에는 외로움과 불편함을 학업이나 일에 몰입하면서 떨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방법도 매우 어렵다. 특히 젊은 나이에 이민한 노년이나 은퇴자에게는 외로움과 불편함은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나는 고국으로 돌아왔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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