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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401 누님을 생각하며 생질들과 저녁 모임을

Hi Yeon 2021. 5. 17. 14:27

210401 누님을 생각하며 생질들과 저녁 모임을

 

화장장과 비석 작업에 참여하고,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생질들과 돌아가신 누님 댁에서 누님을 회상하며 이야기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조금 눈을 붙이니 아침이었다. 머리는 띵하고 몸은 찌뿌득하였다.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밖으로 나갔다. 후배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있으니 큰 생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님 큰 딸은 현직 교장이며 나보다 1살 아래이다. 3살밑으로 남동생이 있는 데 불국사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곳으로 와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였다. 그리고 전해 줄 사진이 많다고 하였다.

 

점심을 대충 먹고 바로 그곳으로 갔다. 48평 아파트에 식당이 제법 넓었다. 누님의 큰 딸, 큰 아들 내외, 그리고 둘째 딸과 막내 딸 내외, 이렇게 나를 포함하여 7명이었다. 며느리와 사위를 빼면 어찌 보면 우리는 가족과 같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놀고 웃고 울었던 사이였고, 맏딸과는 대학공부를 같이하였던 사이였다. 누님은 나의 어머니 같은 존재이니 삼촌과 조카 사이라 하기보다 형제 사이였던 것이다.

 

식당에서 모여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놀았다. 누님이 계실 때는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다 모이기가 어려웠다. 누님이 돌아가시니 이제 우리 모여서 서로의 정을 나눈다. 남자가 3명이지만 술잔 비우는 속력은 여자가 빨랐다. 어쩌라 산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나.

 

큰 딸이 어머니(내 누님) 유품 중 사진첩과 일기장을 가져왔다. 사진첩은 잘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내 아버지 청년기 사진도 있었다. 나도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잘 빼입은 20대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였고 신사였다. 아버지 출생(21년생)을 보면 그 당시는 아마도 1940년 정도로 보였다. 어머니는 참으로 미인이었다.

 

대부분 불속에 들어갈 물건이다. 누님이 남긴 사진첩은 내가 챙겼다. 큰 사진첩 한권은 나를 비롯한 우리 집 가족 역사가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누님이 챙겨 두었던 앨범이다. 가만히 보면서 생각해보니 그 사진첩은 바로 내 젊은 시절 고향에서 요양 차 머물 때 내가 손수 정리하였던 앨범이었다.

이민을 가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나는 어머니 장례에 오지 못했다. 그때 누님이 보관하였던 것이다. 내 젊었을 때 사진들이 그대로 있었다. 내가 이민을 가고 깜깜히 잊어 버렸던 내 과거가 여기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누님의 일기장을 하나하나 넘기며 읽었다. “아들이 왔다 가다.” “딸이 선물을 보내오다와 같이 사실관계를 현재형으로 써 나갔다. 힘들 때나 남편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사실관계보다 감정의 표현이 많았다. “왜 이리도 아플까?”,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들까?”, “너무 외롭다.” 라는 식이다.

 

돌아가신 분의 일기장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큰 실례이지만 누님의 일기장은 하나의 수필이고 수채화였다. 사실과 자신의 감정을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였고 누더기가 없었다. 그렇게 고생하였건만 누구를 폄하하거나 평을 하는 내용도 없었다. 한 권의 일기장에는 아름다운 일상의 내용들로 가득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글을 섰다는 것은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책상에 앉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큰 딸이 나에게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누님은 그 당시 노래 부르고, 시를 젖고, 글을 쓰고 하는 지성인이었다. 한문도 하고 영어도 했다. 39년생이니 시집을 갔을 누님 20살 나이는 625전쟁이 끝나고 복구시절인 1958년이었다.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다.

 

여자는 집에 있다가 시집을 가야하고, 그리고 출가외인이며 참아야 하는 존재였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존재가 못 되었고 여건도 못 되었다. 내 울타리 넘어 세상이 있다는 것조차 간과하고 살아야만 했다. 그 울타리를 넘어서면 큰일 나는 줄로만 알았다. “감성 풍부하고 똑똑한 한 여인이 풍습에 묻혀 닳아 헤어져서 그냥 사라지다.” 나는 오늘 이렇게 표현했다. 세상으로 나갔더라면 한 가닥 했을 여인이었는데 말이다. 네 고향이 산골짝 안의 막힌 세상이었다는 것이 한이 될 뿐이다. 도시에 태어났더라면 누님은 훨훨 날았으리라

 

누님의 남긴 사진첩과 사진들을 쇼핑백에 넣어 들었다. 생질가족들이 노는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저녁 10시에 나왔다. 며칠 잠을 못 잤더니 많이 피곤했고, 오늘만이라도 일찍 눕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