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50428 애들에게는 고향이 무엇인가

Hi Yeon 2015. 4. 28. 09:10

 

 

 

 

 

150428 애들에게는 고향이 무엇인가

 

작년 겨울이 시작되는 어느 공휴일이었다. 나는 작은애에게 자동차를 몰고 같이 바람이나 쉬고 오자고 제안했다. 작은애는 아버지의 심기를 알아 차렸나? 흔쾌히 받아들이고는 "Saint John이 어떠세요?" 라고 권했다. 그래, 당근이지. 우리는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Saint John은 대서양연안에 면한 항구이고 초기 캐나다의 관문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민하면서 이곳에 랜딩을 하였고, 1년 살다가 인근 도시 Fredericton으로 이사를 하였다. Saint JohnFredericton에서 차로 1시간이면 갈 수가 있는 도시이다.

 

운전은 작은애가 하였다. 가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은 금방이었다. 도시 입구에 들어서자 그는 내 눈에 아주 익은 곳으로 운전해 나갔다. 즉 우리가 살았던 곳, 그 애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스케이트를 시작하였던 아이스링크로 죽죽 운전하면서 훑었다. 그러면서 작은애는 차에 내려서 직접 방문도 해 보고는 "내가 여기서 걸었지...", "아버지, 내가 여기서 스케이트를 시작했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추억을 더듬었다.

 

그 다음 바다를 보려 우리는 Saint John의 유명한 Iving 해변자연보존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다다르자 차가운 겨울바다 바람이 부는 데도 불구하고 작은애는 백사장으로 내 손을 끌어냈다. 우리는 대서양연안 해변인 Saint John 바닷가 모래 변을 거닐고, 뛰고, 그리고 소리도 마구 쳤다.

 

파도소리, 넓은 모래사장, 하얀 파도... 나는 고국대신 그것을 차용하고 있었지만 작은애는 어릴 때 처음 보았던 이국의 정경을 더듬는 것 같았다. 아니 그는 고국의 그것과 혼동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돌아오면서 나는 작은애가 가 보았던 곳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 여리고 감수성 많았던 어린 시절... 모든 것들이 그의 눈과 마음에 깊이 아로 새겨졌을 것이다. 1년뿐 이었지만 작은애에게는 특별했을 것이었다.

 

이틀 전 큰애가 왔다. 아비 곁을 떠난 지 만 2년이 되었다. 이 도시에서 대학 3년을 보내고 봄이 오자 돈 벌려 간다고 나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캐나다 대륙중간쯤 멈추고는 그곳에서 다시 공부하고 있다. 동부에서 서부로, 다시 서부에서 동부 끝까지 오기는 힘이 들었나? 그 중간에서 그냥 주저앉아 버렸던 것이다. 그것이 어제 같은 데 2년이라는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려버렸다. 몇 달 전 큰애로 부터 전화가 왔었다.

 

아버지, 방학이 되면 바로 아버지께 갈께요”.

 

, 여기 볼 일이 있나?”

 

아니어요, 한번 가보고 싶어요.”

 

큰애는 여기서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후 부모를 떠나 타지에서 2년을 보내 보니 캐나다의 작은 이 도시는 그에게는 고향이었다. 그 시절 알던 형, 친구, 동생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눈에 박았던 이 작은 도시의 정취를 더듬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밤새 날아오면서 두 도시를 환승하면서 잠도 못 잤을 텐데 도착하자마자 큰애는 장 보러 가자고 했다. 큰애가 자기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저녁을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맥주도 샀다. 스시 레스토량에서 일한 경험으로 그는 맛있는 한상을 금방 차려냈다. 한 가족이 둘려 앉아 우리는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전에는 이 아비를 처다 보지도 않았던 놈들이 말이다.

 

고향은 무엇인가? 그들이 가장 물렁하고 야리야리할 때 보면서 들으면서 느끼고 비비며 살았던 곳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때그때 우리 애들이 몸과 마음이 외부 환경에 의해 아로 새겨지고 또한 끌기고 할퀴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가. 이 아비는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다. 애들은 그냥 자라는 줄만 알았다.

 

어린 시절 고국에서, 그것도 모자라서 타국에서, 상처와 아픔들, 그리고 여러 가지 서러움도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무심한 이 아비가 그토록 밉고 원망스러웠을 텐데. 빡빡한 이 아비 성격 때문에 남보다 더 마음의 상처가 많고 깊었을 텐데. 그 뿐인가. 마음대로 고향을 바꾸어 버린 이 아비가 그렇게 야속했을 텐데 말이다.

 

큰애가 차린 음식을 보니 눈이 아릿해졌다. 왜냐하면 이민생활이 나이 먹은 나에게 그토록 힘이 들었으면 여린 그들은 어떠했으리라 하고 마구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또한 같이 살면서 눈에 박아졌던 것들을, 마음에 새겨졌던 것들을 추억으로서 공유해 주는 것만으로 나는 고마웠기 때문이다.

 

큰애가 "그때는 왜 같이 시장에 못 왔지" 하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얼마나 장을 잘 보던지, 그렇게 뻑뻑했던 큰애가 이제는 어찌나 사냥하게 말을 건네던지, 도착한 바로 그날 큰애가 차린 저녁상을 받고는 나는 그만 쉬이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맥주로 목을 매번 축여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