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516 어머니에게 보내는 맏딸의 아름다운 언어

Hi Yeon 2021. 5. 17. 10:25

창 너머 저 세상을 본다

 

210516 어머니에게 보내는 맏딸의 아름다운 언어

 

인간은 죽은 후 7일 동안 다시 태어나 죽고, 이것이 7번 반복되면서 그 동안 죽은 자의 공덕이 심판되어 내세에 태어난다. 죽은 후 더 좋은 내세를 위해여 지내는 대승불교 의식이 바로 49(칠칠재)이다. 49재가 끝나면 죽은 자는 다음 세대로 떠났다고 보고 탈상을 한다. 자식들은 상주에서 벗어나는 시기이다. 불교의식인 49재가 요즈음 사자의 명복을 비는 의식으로 정착되고 중시된다. 49재 의식에서 스님은 죽은 자가 모든 죄와 업을 털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염불한다.

 

누님의 49재였다. 경주 포석정 옆에 있는 망월사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12시까지 진행되었다. 스님의 염불을 귀담아 들어보니 반야심경, 다라니경, 등등 몇가지가 들렸으나 온통 모르는 신비한 소리의 연결이었다. 그냥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이고 절차같아 별 감정이 없었다. 숙연하다, 혹은 엄숙하다 라고 할까? 딸래들도 염불소리에 흐느끼기보다 그냥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울었을 것이다. 의식이 진행되는 중 한 순간, 맏딸이 스님의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흐느끼며 읽어 나갔다.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우리 곁을 떠나 홀연히 아버지 곁으로 떠나신 어무이.

 

사랑합니다

 

한번도 사랑합니다.” 라고 말을 직접 해본 적이 없는 못난 자식들이 어무이 떠나신 후에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어무이는 내가 전화하면 언제나 받는 줄 알았습니다.

 

전화할 때마다 우리 딸 바쁜데, 와 전화했노?” 하시며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무이. 어무이는 아이구 야야, 바쁜데 머할라꼬 왔노하시면서 우리를 언제나 반겨주시는 줄만 알았습니다.

 

이제는 그 음성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허전할 때 전화할 데가 없습니다. 아버지 떠나신 뒤에도 늘 그 자리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 했는데, 그때는 그래도 어무이가 계셔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젠 아버지도 어무이도 안 계신 텅빈 집에 어무이가 키우던 여러가지 꽃들만이 만발하니 더욱 슬픔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으로 늘 우리 어무이 고맙다고 생각했지만 한번도 고맙습니다.” 라고 말로 한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가 공무원 사표를 낸 이후로부터 어무이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절은 다들 어렵게 살았지요. 아버지도 나름 애쓰면서 사셨겠지만 어무이 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인가 어느 해에 김장할 돈이 없어서 깍두기만 담가 먹은 기억도 있습니다. 집이 없어서 이사를 수없이 하면서 생활전선에서 늘 고생하셨던 우리 어무이. 그래도 언제나 우리에게 먹이는 것을 알뜰하게 장만하여 맛있게 요리하여 주셨고, 그리고 잘 먹여서 모두 건강하게 잘 키워주셨지요. 한창 힘들었던 사춘기 즈음에 네 형제가 인성 바르게 클 수 있었던 것도 가난했지만 어무이가 항상 긍정마인드로 가르치셨기 때문이었죠.

 

처음 교장이 되었던 7년전 정말 기뻐하시던 아버지와 어무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장이 되어라그때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제 맘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한낱 시골 할머니에 불과한 어무이의 이 말씀은 그 어떤 학자의 말씀보다도 더 훌륭했고 고귀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에 늘 새겨 두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정신이 똑바로 선 사람으로 키우신 덕분에 지금 모두 다 무난하게 자라서 올바른 가정을 일구었으며, 그리고 손자손녀도 역시 잘 자라서 이 사회에서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어무이는 우리 네 자식을 다 거두고 먹이고 잘 키우셨는데, 네 명이나 되는 우리 자식들은 어무이 한 분을 제대로 못 모셨습니다.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했는데 안타까운 이별을 하게 만들어서 너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그 순간 곁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힘들게 키운 자식 넷이 이제 다 별 어려움 없이 살 만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겨서 어무이를 잘 모실 만했슴에도 어무이를 외롭게 혼자 계시게 했습니다.

 

어무이가 팔순이 넘은 노인임에도 엄마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무이가 기력이 떨어지고, 입 맛이 없고, 아무 의욕도 없슴을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봐 나는 괜찮다고 하시는 어무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후 일이 주일마다 한 번씩 와서는 잠시 같이 있다 가는 것이 엄마에게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우리가 찾아 뵈올 때 엄마께서 아버지 생각을 하며 우시는 게 너무 싫었는데 이제 저희들이 그렇게 울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혼자서 외롭게 계시다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신 우리 엄마. 미안하고, 그리고 보고 싶어요. 그래서 시시때때로 흐느낍니다.

 

우리도 언젠가 엄마 뒤를 이어 하늘나라로 가겠지만 그때까지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평온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네 형제와 손자손녀가 사는 모습 지켜 보시면서 자손들이 잘 되도록 축원도 해주세요.

 

편히 잠드소서

 

어무이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엄마였고 훌륭한 아내였습니다. 불심도 깊었습니다. 당연 극락세계에 가셨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49재 이후 저희들은 이제 더 이상 울지도 흐느끼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밝게 환하게 웃으시던 어무이의 모습만 기억하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영혼의 안식처로 훨훨 떠나시는 어무이를 배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정옥이 보살님, 아버지 옆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창 너머 저곳에 탑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무이가 2014 12월에 지으신 시를 낭독하겠습니다.

 

이 세상 하늘 아래

거룩한 부처님을 모시고

관세음 보살님을 외우고

위대한 세존 할머니를 받들고

한 많고 원 많은 조상님을 모시고

살아 온 내 인생

 

험하고도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 살아 온 내 인생

구비구비 열두 구비로 넘어온 인생길

울며 불며 살아온 과거

어연간 80 고개를 넘고 말았네

그러나 엄마는 행복을 느낀다.

 

복많은 아버지

알뜰한 어머니

 

부산 선비딸 희야

효자 아들 웅아

착한 딸 미야

효녀 딸 숙이

 

고생 끝에 영화라

행복이 따로 있나

자식 잘 둔 것이 행복이지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49재라는 의식에서 나는 스님 염불을 귀담아 들으며 절을 하였지만 마음은 멀뚱멀뚱하였다. 그러나 큰 딸의 육성이 울리자 그제샤 내 눈에는 눈물이 마구 솟아져 내렸다. 무엇보다 딸의 정성어린 연설로 인하여 누님의 모든 업이 소멸하였으리라. 당연 좋은 세상으로 편히 가셨으리라.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단 말인가? 스님의 염불은 하나의 형식이 되었다. 의식과 절차와 관습은 그냥 부질없고 거추장스러우며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