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27 상여를 매니 문득 우울해진다
내 고향은 경상도 경주이다. 경주에서 태어나 자라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상경했다. 서울에서 생활하였고 그곳에서 가정을 꾸몄으니 나는 서울 사람이기도 하다. 그 후 어찌어찌 하다가 대전으로 내려가 충청도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산지가 20년이 되어 간다. 자연히 친구도 여기서 새로 사귀게 되었다. 고향 친구는 이제 어디 사는 지 잘 모른다. 여기 친구들이 사실 내 친구이다. 이웃사촌인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경조사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주로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오는 것이 전부다. 갑자기 오늘 친구의 부친 부음을 받았다. 나는 봉투만 전하고 귀가하였다. 나이 60이 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런 장소에 잘 가지를 않는다. 친구 아버지를 뵌 적도 없는 내가 굳이 문상을 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도 하였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데 대표로 문상을 갔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친구야, 내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시간 있어?"
"응, 별일 없어"
"그래, 그럼 내일 든든하게 입고 와"
"왜?"
"상여를 맬 거야"
목과 등을 다쳐 아프다는 것을 깜박 잊었다. 한번 말이 나왔으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다음 날 할 수 없이 든든하게 옷을 입고 등산화를 싣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친구가 차를 대고 내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나는 친구 자동차를 탔다. 자동차는 시골로 한참을 달렸다. 저 멀리 작은 산 구릉 밑에 모시 모자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따라 추위는 매서웠다. 우리는 실장갑과 모시 모자를 받아쓰고 상여를 메었다. 상여를 메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추위와 상여 무게를 견디며 절차를 따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그 소리는 옛적과 변함이 없었다. "어어, 어이, 어어 어에" 나는 입이 얼어 소리가 안 나왔다. 분위기를 위하여 한잔이 돌려졌다. 영문도 모르고 한잔을 벌컥 하니 그제야 소리가 조금 나왔다.
"어어, 어이, 어어 어에"
이 시절에 무슨 상여야. 충청도 광산 김씨 자손이다. 상주가 원하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예전의 상여는 아니었다. 신형 상여였다. 전문업체가 마련한 것으로 가볍고 엉성하였다. 양쪽에서 5명(총 10명)이 메었다. 옛날 상계에서 준비한 상여는 전용 나무로 좌우 각각 폭으로 2칸, 길이로 6칸(총 4칸 * 6칸)격자를 짰다. 이는 총 24명 이상의 상여꾼이 필요한 셈이다.
그때는 상가에서 묘지까지 상여로 가야 한다는 거리상의 문제가 있었고 가파른 산을 기어 올라가야 했다. 당연히 무겁고 튼튼해야 했다. 요사이는 산턱 밑까지 자동차로 와서 그곳에서 묘지까지 가니 거리가 짧다. 그래서 상여는 가볍고 간단했다.
그때는 상여꾼들이 동네 젊은 사람들이었다. 상여를 메고 장사를 지내는 일은 종일 하루 일이었다. 그날은 늦은 밤까지 상여꾼들의 술주정과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아무도 탓하는 이들이 없었다.
오늘은 2시간이면 족했다. 우리는 점심 전에 돌아왔으니 말이다. 많이 간소화 되었지만 관습이란 그 시대 사람이 떠나지 않고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내 시대가 상여를 메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한다. 60에 상여를 메었으니 말이다.
나이 60이면 옛날에는 곧 죽을 목숨이다. 곧 죽을 목숨이 사자를 메고 가는 꼴이다. 전에 내 나이 30에 상여를 메었는데 세상이 요렇게 요상하게 변해 버렸다. 그만큼 장수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30대 나이의 손자들이 상여를 메지 않으니 관습은 대를 넘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번갯불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오늘의 세대는 특히 더 그렇다. 30년 전에만 해도 30대의 나이에 집신을 싣고 흰 상복을 입고 꽃상여를 메었는데, 오늘 60 나이에 스마트 폰을 주머니에 넣고 상여를 메고 있으니 말이다.
친구 자동차로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친구들이 불평했다. 상여를 메는 도중 상주로부터 받은 돈 봉투를 한두 사람의 상여꾼이 다 낚아챘다고 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 가도 다 그렇다. 이는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상여를 매니 문득 우울해진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태어나서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세상의 관습과 종교, 예법과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양지 바른 명당에 옥체를 묻고 좋은 술과 예법으로 절을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니다. 나는 바람같이 살고 바람같이 가리라. 그러나 헛된 망상임은 안다. 부처가 돌아가시면 어떤 예법을 원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세상의 풍습대로 하면 된다고 한 답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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