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6 가을의 풍요로움과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211016 손수 만든 애호박 고추탕
매일 아침 등산길이 매우 즐겁다. 동행하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걸음을 재촉하면 산 입구에서 그를 만난다. 그리고 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면서 간다.
그는 주로 가정, 아내, 그리고 직장에서 힘든 이야기를 한다. 막일을 하면서 겨우 가정을 꾸려가니 그렇고, 삶의 피로도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크니 그렇고, 나이도 60을 넘겼으니 그럴 만했다.
그는 자주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자연 속에서 홀로 사는 자연인을 꿈꾼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러고 싶은 모양이었다. 지금 사는 것이 힘이 드니 괜히 불평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홀로 사는 자연인은 피치 못할 사연이 있기에 그렇게 살 것이다. 하나의 도피인 셈이다. 나도 간혹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기에 그를 다독 그린다.
“친구가 변하면 좋겠지.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워. 남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쉽고 부작용이 적은 것 같아. 마누라에게 그렇게 해 보게나”
나도 못 하였을 것을 친구에게 권하니 속으로 따끔했다. 어쩌나 살갑게 말은 그렇게 해야지.
전에 혼자 산행을 할 경우에는 나름대로 즐거움을 만들었다.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이 만든 열매를 감상하였다.
촌 동네에는 보통 대추나무가 많다. 대추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하여 마당에 많이 심는다. 다니는 골목길 변에 대추나무가 몇 그루 있다. 나무는 그리 크지 않는데 대추열매는 정말로 많이 주렁주렁 달렸다.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대추는 바닥에 떨어진다. 길바닥은 대추로 포장이 될 정도이다. 누구하나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
산에서 내려오면 이곳을 지난다. 볼 때마다 대추 하나를 따 먹어 본다. 달고 먹을 만했다. 이때가 아침 9시 30분 전후가 되고 아직 내 배는 빈속이다. 이렇게 빈속으로 매일매일 대추 하나를 따서 깨물어 자근자근 씹어 먹어 보면, 마치 작은 보약을 먹는 기분이 된다.
마을과 들판에 이런 대추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건강에 좋다는 블루베리(초코베리)를 심은 밭도 있다. 처음에는 주인이 수확을 하더니 별로 이득이 없는가? 대부분이 열매가 달린 채 그대로 낙과한다.
그대로 두면 결국 스스로 모두 낙과하거나 새들의 먹이가 된다. 내가 한두 개 따 먹는다고 큰 대수인가? 지나가면서 두세 개(한 알이 콩알만 하며 색깔은 짙은 포도색이다)를 따 먹어본다.
자근자근 씹는다. 육질만 있고 과즙이 없어 별 맛이 없다. 약간의 쓴맛과 떫은맛이다. 항산화 성분이 많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양이지만 두 세알 아침 하산 때 먹어본다.
시골집 어느 집에 포도나무도 있었다. 농약을 뿌리지 않은 정말 자연산이다. 지나가면서 한 알을 따 먹어본다. 한 송이가 아니고 정말로 몰래 한 알만 따는 것이다. 그리고 입에 넣고 깨물면 한 알이라도 그 향기가 특별하다. 그 포도나무도 사람의 손길이 없어 결국에는 낙과하거나 말라 비틀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 모든 것이 다 가을의 풍요로움이다.
산에서 내려오면 동네 입구에 들어선다. 입구 앞은 고추밭이 있다. 넓지 않는 밭은 아마도 팔기 위한 농작물을 경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농부가 밭뙈기가 있으니 놀리지는 못하고 제철 작물을 심는다. 밭 절반은 고추 줄기가 있는 채로 갈아 업혀져 있었다. 밭 귀퉁이에는 여전히 고추가 달랑달랑 달려 있는 고추 줄기가 많다.
평소 이곳을 지나치면서 나는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쳤다. 친구는 이곳 토박이이다. 그 밭주인이 누구인지도 안다. 언젠가 파헤쳐질 고추농사가 아닌가. 그는 밭으로 들어가서 고추 몇 개를 땄다. 나도 따라 했다. 그래서 긴 것, 짧은 것, 비틀린 것 (상품 가치는 없지만 이런 것이 맵고 맛있다)으로 한 30개가 내 주머니에 채워졌다.
동네 안으로 들어왔다. 촌민가 뒷마당에 애호박이 나무에 걸쳐져 있었다. 친구가 보고는 작대기로 후려쳤다. 잘 되지 않았다. 내가 후려쳤다. 주먹보다 더 큰 애호박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는 놈은 크게 자라면 결국에는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쳐 박힌다. 호박은 애호박일 때가 맛있다. 그때 따야한다.
이렇게 하여 내 다른 주머니에는 애호박이 들어가게 되었다. 오른 주머니는 고추, 왼 주머니는 애호박이 있다. 어쨌든 이런 짓은 혼자 할 일은 아니다. 농부가 그냥 땅에 파묻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외지인이 그렇게 하다간 도둑놈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요놈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였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애호박이다. 부드럽고, 향기 좋고, 특히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애호박을 얇게 설어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우면… 그 맛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고추가 있으니 다른 요리를 생각하였다. 고추는 굉장히 좋은 천연 향신료이다. 고추와 애호박을 이용하여 맑은 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냄비에 물을 붓고 한 숟가락 쌈장(이것밖에 없다)을 넣고, 게 간장을 먹고 남은 간장 궁물 5숟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끓였다. 간이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나는 평소 싱겁게 먹으니 괜찮았다.
그곳에 애호박을 설어서 넣고 끓이다 약간의 양파와 고추 3개를 총총 설어 넣었다. 그리고 끓는 마지막에 계란을 하나 넣고 라면 스프 1/5분량을 첨가했다. 옛적 어머님이 자주 해주었던 애호박조림에 새우젓이 안성맞춤이지만 있는 재료로 해 보았다.
냄비의 김을 빼고 난 후 쟁반에 담아 먹어보았다. 게 간장 맛과 고추의 깔깔한 맛이 더하여 애호박 맛이 가을 하늘을 날았다. 국물이 맑고 청명하고 깔끔하였다. 애호박에서 깔끔한 야채 맛이 났다.
나는 음식을 가리지는 않으나 찌게나 국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찌게나 국 요리는 복잡하고 간단히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애호박 고추탕 국물까지 싹 비웠다.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였다. 물론 작은 그릇에 담긴 양이었지만...
내가 만들어서 그랬나? 재료는 오늘 딴 고추와 애호박이다. 그 맛은 깔끔, 담백, 부드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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