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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331 누님을 떠나 보내며

Hi Yeon 2021. 5. 17. 14:25

210331 누님을 떠나 보내며

 

누님을 마지막으로 보려 영안실로 갔다. 잘 차려 입은 누님을 보니 또 한번 통곡이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밖에 없었다. 두배를 하고, 삼배도 하고, 18배를 했다. 잘 가시라고 바닥에 업드려 합장하고 빌고 또 빌었다.

 

경주 시내에서 화장장으로 가는 길은 30분 거리였다. 장례 버스에서 딸들이 울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누님이 남겨둔 유품 중 일기장을 읽어 보고는 대성 통곡이었다. 누님은 20년 동안 하루 하루 일을 적어 놓았다. 딸 이야기, 아들 이야기, 손자 이야기가 있었고 친정집 이야기, 그리고 내 이야기도 있었다. 삼촌, 삼촌삼촌 이야기도 있다고 하면서 나를 보고 딸내들이 울음보가 터떨었다. 갑자기 내 눈에도 눈물이 났다.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경주하늘마루공원에 도착했다. 화장과 공원묘원이 일원화된 최신식 시설이었다. 화장을 하고 항아리에 누님의 유골가루를 받아 자형 고향인 경주 내남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작은 야산에 유골가루 봉지를 묻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한문으로 유인영일정씨옥이가 세겨져 있었다.

 

일장춘몽이다. 인생 다 그렇다. 그것도 모르고 오늘도 자기 생각에 억메이어 우리는 마냥달리고 있다. 어느 산소에는 여자는 성만 표시한 경우가 많다. 누님의 경우 이름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여자라는 이유로 하나의 비석에 남편 이름 옆에 여자의 이름이 있다. 죽고 나서도 우리는 유교의 풍습에 내 몸을 맏긴다. 죽어도 여자는 남자의 일부분이다.

 

각자 비석이 있으면 얼마나 좋으라. 이민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부모님 산소였다. 이민을 한 후 처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합장되었고 그래서 비석도 하나이다. 아버지 비석을 붙잡고 울면 아버지 생각이 나고, 어머니 비석을 붙잡고 울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버지 비석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고, 어머니 비석을 보고 어머니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하나의 비석을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꺼번에 연상하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 몸으로 보라는 것이다. 혹이여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어머니 비석을 끌어 안을 수가 있다. 비석은 돌아가신 분들을 한꺼번에 기념하는 것이라기보다 돌아가신 그분의 형상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혹이여 누님이 보고 싶으면 누님과 자형을 함께 모신 비석을 끌어 안아야 한다.

 

비석 설치 작업은 2시간 정도 걸렸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되니 오후 5시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이제 상주와 가족들과 서로 헤어질 시간이었다. 나는 서울에 사시는 누님을 신경주역으로 태워주고 되돌아 오는 길에 그냥 임대 원룸으로으로 갈 수가 없었다. 다시 큰 누님이 사신 전원주택으로 갔다. 그곳에 이미 4명의 생질(남동생이 누나의 자녀들을 부를 때의 관계어, 누님은 1 3녀를 자녀를 두었다)과 그 가족끼리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새벽 2시까지 생질들과 이야기를 했다. 누님과 생질 그리고 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우리 이야기였다. 우리 어릴 때 같이 놀았지, 외가집에서, 그리고 누님집에서그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혹은 누님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때는 울고 어떤 때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