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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1 과잉에는 조절호르몬이 없다

Hi Yeon 2021. 5. 21. 14:20

출처 : inc.com, getty images, 2021. 05. 21

 

 

210521 과잉에는 조절호르몬이 없다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 중에 Leptin이 있다. 이 호르몬은 포만감을 느끼면 먹기를 그만 하라하고, 몸에 에너지가 필요하면 허기를 느끼게 하여 음식을 먹어라하고 머리에 명령을 보낸다. 그래서 Leptin은 우리 몸의 에너지와 영양의 밸런스를 조절하는 매우 중요한 호르몬이다.

 

만약, 이 식욕조절호르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우리는 배고픈지도 모르고 먹이를 찾지 않게 될 것이고, 먹을 것이 많을 때는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날 것이다. 이러 듯 생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하여 태초부터 지금까지 몸의 밸런스를 유지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었다. 허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반응하지만, 그것이 만족되면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식욕조절 호르몬인 Leptin을 생쥐에게 투여해 보니, 생쥐가 투여량에 따라 적게, 혹은 많이 먹음으로써 체중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인간에게 해보았다. 그러나 생쥐실험과 다르게 사람에게는 체중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동물과 다르게 인간은 음식의 과잉보다는 부족이라는 당면과제에서만 대처하면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계속 배불리 먹어도 식욕조절호르몬(Leptin)은 어떠한 작용도 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도 동물과 같이 어떻게든 살아남도록 되어 있다. 배고프면, 추우면, 덥다면, 속박을 받으면, 힘들면, 혹은 전쟁 중에서도,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응하여 스스로 몸 밸런스를 맞추어 살아남도록 진화하고 진화하여 왔었다. 그 이야기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의지보다는 본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움이 해소되고 점점 좋아져 밸런스가 과잉방향으로 달리면 식욕조절호르몬은 관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자람을 극복하여 살아남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과잉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모자람보다 과잉상태에서 우리에게는 더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과잉의 섭취는 지금 매우 흔하면서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과잉은 몸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회복할 수 없는 끔직한 여러 질병을 유발한다. 대표적인 것이 당뇨병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는 급격히 늘고 있다. 이 병은 아직까지도 현대의학에서 그 원인 인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속박, 억압, 구속, 탄압에서도 관습과 문화라는 이름아래 우리는 너무나 잘 적응해 왔다. 정신적 어려운 상태에서도 우리에게는 살아남으려는 생존호르몬이 작용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신적 여유가 충족되어도 우리는 더 많은 여유와 행복을 또 원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더 갈등하고 더 혼란스러운 것 같다. 더 잘 살고, 더 행복해 보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반대로 떨어지고 정신병은 더 많이 생긴다. 즉 물질 과잉에 대한 저주가 당뇨병이라고 하면 이는 정신적인 당뇨병인 셈이다.

 

이것으로 보면, 정신적인 과잉상태를 조절하는 호르몬은 우리에게 없는 것 같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보조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브레이크이다. 그러나 그 의지는 훈련에 의해서만 조금 돌아간다. 아마도 하느님은 그래서 인간에게 의지라는 것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알아서 해, 만약 조절하지 않으면 내가 벌을 줄거야하면서.

 

젊었을 때 생업으로 일할 때는 무척 바빴지만 그리 혼란이 없었다. 가족을 부양할 때도 매우 어려웠지 역시 큰 혼돈도 없었다. 자주 제 때 먹지 못했지만, 배고픔만큼 먹는 것이 달콤했다. 조금 무엇인가 이루어지면 성취감에 영혼은 달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렸다. 이제 은퇴를 하고 시간적으로 매우 여유롭다. 누군가를 부양해야 할 일도 없고, 나를 몰아세우거나 잔소리하고 귀찮게 할 사람도 없다. 마음 조리면서 해야 할 일도 없다. 다 내 마음대로다.

 

그런데 배고픔이 없는 데도 계속 먹으려 한다. 잘 곳은 적당한데 더 좋은 집을 원하고, 입을 것은 충분한데 더 폼 나는 것에 눈이 간다. 여유로운 시간이 넘치는 데도 불구하고 더 찬란한 시간을 바라고, 삶이 본래 그런 것인데도 불구하고 삶의 특별함을 꿈꾼다. 나 혼자 내 마음대로 산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편하고, 하나의 어려움도 없다. 과거와 비교해 보고 따져 보아도, 사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이제는 모든 것이 밸런스에서 과잉방향에 서 있다.

 

경주에 잠깐 내려와서 조용히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다. 지루하였고 답답하기도 했다. 먹고 싶으면 언제나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자고 싶으면 언제나 자고, 깨고 싶으면 그때 캔다. 어딘가 가고 싶으면, 언제나 갈 수 있다. 이렇게 여유롭고 좋지만 그렇게도 달갑지가 않다. 가끔 혼란에 빠진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내 스스로 브레이크 밟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내 의지의 브레이크를...

 

조금 모자랄 때가 좋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오히려 행복이라는 만족 속에 욕심과 시샘이 더 많은 것 같다. 조금 행복이 모자랄 때는 적당한 마찰과 자극이 있어 오히려 행복하다. 나도, 가정도, 국가도 돌이켜 보면 모자람에 살아남으려는 역사가 대부분이다. 물질인 면에서 또한 정신인 면에서도 우리의 과잉역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과잉으로 가는 길에는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에 따른 연습과 균형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역사에서 보면 모자라서 망하는 경우보다 남아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