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30 내 사랑, 누님이 가셨다
밤이 새도록 이상한 꿈만 꾸었다. 그참 내가 어제 저녁에 왠 술을 마셨나? 나도 모르게왜 이상한 기분에 취해서 소주를 찬 물 마시듯 했나? 술 탓인가? 잠자리 탓인가? 나는 밤새 꿈을 꾸었다. 꿈은 너무 많아 자세히 생각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냥 찝찝하고 혼란스러웠다.
보통 아침에 일어 났을 때는 나는 우선 씻은 후 방에서 운동과 자가 맛사지를 한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을 한다. 오늘은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귀찮았다. 대충 씻고 간단히 아침으로 더운 물에 탄 Quaker 한 봉지로 해결하고 나서 TV를 보는 찰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부산 누님이었다.
부산 누님은 심심풀이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 분이다. 이런 아침에 왠일이야 하면서 전화를 들었다. 큰 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햇갈렸다. 누가? 누가? 어제까지 멀쩡하신 누님이 왜? 바로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누님 아들 딸들, 나에게는 생질들이다. 그들이 나를 보더니 통곡했다. 내가 형제 중 막내 쪽이고 보면 생질들은 나보다 조금 나이가 적은 중년이다. 생질들이 외가집에서 많이 지냈다. 그래서 나와 생질들은 삼촌 조카 사이가 아닌 형제와 같은 관계였다. 또한 난 어릴 때 누님 집에서 좀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는 가족과 같았다.
내가 태어날 때 누님이 시집을 갔다. 누님은 형제 중 제일 맏이로 나에게는 누님이기도 하고 어머니 같았다. 그 누님이 가셨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여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이 바로 누님이었다. 그때 내 손을 잡고는 “니가 왔구나” 하며 통곡하셨던 누님이 이었다.
맏딸인 누님은 내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정해준 남편과 살면서 평생을 고생했다. 평생 돈 벌어오지 않고 사고만 친 남편과 그리고 네 자식을 먹이고 공부시켰다. 여러 번 누님은 견디다 못하여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출가외인이라는 친정어머니의 호통에 돌아가야 했다. 노래 잘부르는 감정이 풍부한 누님, 글과 시를 즐겼던 누님, 한문과 영어도 잘 아는 누님이었다. 그런 능력을 뒤로 한 체 가족과 생활고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작년에는 지병을 앓고 있던 자형이 돌아가시고는 삶의 방향을 잃고 헤메었다. 평생을 여자를 옥메이었던 남편이었는데, 차라리 홀가분하겠다 싶었는데 누님은 그 반대로 흘려갔다. 허전함에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내는 누님과 전화를 하면 한 시간 이상를 통화한다. 물론 자식들이 효자이고 자식과 만남과 대화도 많았다. 그래도 형제끼리 할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특히 막내인 나와 대화는 솔직하고 진했다. 그때 나는 누님의 방황을 알게 되었다. 평생을 자형이 돌아가시면 잠깐 혼돈의 시간이 있겠지. 바로 씩씩하게 일어설 줄을 알았다. 그러나 반대로 어쩌할 줄 몰라 했다. 마치 평생 속박되었던 망아지가 자유가 되나 오히려 그것을 힘든 것과 같았다.
이제 자형을 보낸지 1년이었다. 그런 방황을 이겨내고 누님은 열심히 운동하고 살아 가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 허리디스크를 고친다고 꺼꾸로 메다는 운동기계에서 운동을 하다가 떨어져 하직하셨다. 아들이 전화을 안 받아 방문하였을 때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 때였다. 사고사였다. 경찰 조사가 끝나고 장례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고 했다. 39년생이니 83세이다. 건강으로 보면 20년은 더 사실 수 있었다.
내가 경주로 내려오는 날 이런 사고 가 있었다니… 오자마자 누님을 찾아뵈었더라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텐데… 내가 미리 내려 온다고 이야기 했더라면 누님은 내집으로 오라고 호통쳤을텐데… 그럼,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경주 원룸을 빌리지 말고 바로 누님댁에 가셔 누님과 당분간 생활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고향에 와서 누님을 자주 찾아뵙고 밥도 얻어먹고 내 차로 모시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하고 싶었는데 누님 어찌 하루도 못 기다리고 이리도 무심하게 가신단 말인가? 이제 효도 좀 할려 하니 그냥 가시옵니까?
만날 때마다 누님은 말씀하셨다. 자형이 가고 한가해지니 어찌 이리도 아픈 데가 많을까?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이제 생각해보니 친정 엄마가 그 힘든 시절에 어떻게 지내셨을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외롭다.
나는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처방을 드렸다. 매일 근처 절에 가시라고 하셨다.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를 완화하기 위해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좌우로 돌리는 목운동과 거북 목운동을 소개해 드렸다. 영양제도 드렸다. 화장을 하고 루즈도 바르고 장날에 가서 빨간 신발과 바지를 싸서 멋도 부려보면 기분이 좋이지고 세상이 너무 좋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고 권해 드렸다. 말만했다. 직접 모시고 해 드려야 했는데 말이다.
코로나로 나갈 수 없어서 그랬나?. 집에서 젊은이나 전문가들이 하는 꺼꾸로 메달리는 운동을 하였다니 기가 찼다. 그리고 사고가 났던 것이다. 살려고 하다가 죽은 꼴이 되었다. 코로나로 병이 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나오지 말라고 쥐어 박는 정부말에 사람이 죽는 꼴이다. 이렇게 죽을 바에 차라리 돌아다니다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만배 낫겠다.
나오는 것은 눈물이요, 한숨이었다. 울며 통곡하는 생질들을 보니 나도 미칠 것만 같았다. 나도 자꾸 자꾸 눈물 눈물이 났다. 그래서 어제 저녁 나도 모르게 멍 하였나? 나도 모르게 소주 한병을 마셨나? 그리고 밤새 꿈을 꾸었나? 아마도 그때 바닥에 쓰려진 누님이 나를 불렸나 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생 소주만 마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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