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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7 소나무 숲과 바위, 그리고 유적이 함께하는 경주 서남산

Hi Yeon 2021. 5. 17. 14:13

210417 소나무 숲과 바위, 그리고 유적이 함께하는 경주 서남산

 

경주에 태어났다고 경주의 모든 곳을 다 가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사람이 설악산을 가보았으나 서울 북한산을 가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자기 것은 언제라도 가 볼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 것에 대한 호기심이 적어서 그럴까?

경주는 많은 유적지가 있다. 나 역시 저런 곳도 있구나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남산 탐방코스는 10곳을 넘는다고 한다. 젊었을 때 남산을 탐방한 경험은 있으나 같이 간 동료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동료들과의 추억은 남아 있지만 남산에 대한 추억은 가물가물하다.

 

그제는 통일전을 출발하여 동남산을 둘려보았다. 이 탐방여정에서는 산에서보다 산에서 내려와 유적을 들려보는 맛이 컸다. 오늘은 남산탐방의 주된 코스인 서남산 코스(삼릉-용장골)를 택했다. 삼릉-용장골 코스는 4.6km 거리이다. 나는 자동차를 삼릉에 주차하였기에 용장골에서 삼릉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그 거리(3km, 국도를 따라 도보)를 더하면 총 약 8km의 여정이었다. 나의 경우 3시간 반 정도 걸렸다. 반나절의 여정인 셈이다.

 

삼릉-용장골 코스는 보는 재미도 솔솔했고 등산하는 재미도 컸다. 그리고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기분마저 났다. 삼릉 입구의 솔밭과 용장골의 소나무 숲은 일품이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연적 돌계단과 만들어진 계단이 반복되어 흥미로웠고, 그래서 올라간다는 힘듦을 잊어버리게 했다. 내려올 때는 계곡의 자연석과 울창한 자연림 때문에 한반도에서 최고인 설악산을 연상시켰다.

 

군데군데, 구석구석,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진 신라시대의 바위벽화와 탑이 있었다 마치 과거로의 여행같은 산행이었다. 돌계단, 소나무 숲, 계곡과 바위, 자연, 그리고 신라유적들이 어울려져 있는 여기는 사시사철 어느 날에 오더라도 대단하리라 생각되었다. 더구나 경주 도심 근처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 났다. 경주 관광지의 중심인 첨성대 주변을 관광한 후 그곳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가면 남산 밑에 포석정이 있다. 그 옆에 탐방 입구가 있는 삼릉이 있다.

 

보통 처음 가보는 산행은 매우 흥미롭다. 주변을 보고 감상하고 느끼기에 바쁘다. 그러나 다음에 갈 때는 다소 흥미가 줄어들면서 심심해진다. 이때 나는 천수경을 암송하곤 한다. , 특별한 의미로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그냥 암송하다 보면 나 자신을 잊기 때문이다.

 

산행을 마치고 용장골에서 내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삼릉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국도변에서 시내 버스를 기다렸다. 내 뒤에 온 분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시내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갔다. 3km 넘는 국도를 따라가는 일이다. 나도 보도를 따라 걸었다. 먼 길이다. 산행을 한 후 걸어니 더 심심하고 피곤하기도 했다.

 

오늘 생긴 작은 사건이다. 가는 도중 무엇가가 이마를 쳤다. 깜작 놀랐다. 인도안으로 삐져 나온 나무가지가 내 이마를 친 것이다. 이마에 약간 줄무늬가 생겼다. 보니 부려진 나무가지가 눈높이 정도로 인도 안에 나와 있었다. 전에 행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가지를 잘라버린 것인데 아직도 행인을 다치게 할 정도였다.

 

나야 천수경을 암송하다가 무심코 이마에 작은 줄무늬 하나를 넣었지만, 앞을 주시하면서 걸어도 사람을 다치게 할 정도라고 생각되자 그냥 갈 수 없었다. 손으로 그 가지를 잡고 별 짓을 해 보았다. 꺽지를 못했다. 포기했다. 옛날 같으면 가만히 두지 않았건만 장비가 없으니 꽁지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요즈음 경주 토암산을 다니고 그리고 남산을 두루 다니고 있다. 경주에서 살면서 평소 다녀 보지 못했던 곳을 주로 구경하고 있다. 경주를 좀 더 알고 나면 그 다음은 세월을 낚는 일이 되겠지. 어느 날 남산 구석에서 스케치를 한다던가, 그것도 심심하면 추억의 신라인들과 잡담을 즐기던가.

 

 

소나무 숲에 있는 삼릉(신라시대 세 왕의 무덤)이다. 아마도 그때 그 왕, 그때 그 사람들은 소나무를 무척이나 좋아했나 봐. 세개의 릉이 줄을 지어서 소나무 숲 사이로 햇빛을 받으니 신비스러웠다.

 

! 위대한 신라인의 유산이여

 

죽어서라도 자신을 자랑하고 보존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추억과 반추를 주기 위한 사자와 산자의 위대한 뜻이리라 나는 굳이 믿고 싶고, 또 그리 해석하고 싶다.

 

 

남산 탐방로 입구의 삼릉숲이다. 키가 크고 굴곡진 빽빽한 소나무 숲사이를 지나는 기분은 특별했다.

 

 

남산에는 설악산이나 북한산 만큼이나 구석구석 바위가 많다.

 

 

 

저 멀리 바위에 새긴 부처상이 보인다. 그 밑에 어떤 남자가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것은 신라인들의 일상이었으리라.

 

 

남산의 특징은 소나무 숲이다. 바위 틈에 살아가는 한 소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소나무를 평평한 밭에 옮겨 심으면? 제대로 자기 흙을 붙여서 옮겨 심어도 아마 살지 못할 것 같다. 아니야, 잘 살겠지.

 

식물이란 혹독한 환경에 살수록 좋은 환경에 적응하기는 쉬울 것이다. 식물에게는 업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환경이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라는 업이 자신을 구속시키기 때문이다.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남산 용산사곡 석조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