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여러번 째이다. 콜을 받자, 바로 어디인가를 알았다. 중심부가 아닌 외곽쪽이었다. 큰 길을 한참을 가다가 작은 몇개의 길을 거치고는 바로 눈에 익은 집이 보였다. 집 앞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어린 꼬마의 손을 잡은 젊은 사내가 눈에 들어 왔다. 그들를 태우러 온 차가 옆에 있는 지 조차 의식함이 없이 그는 꼬마와 깊은 포옹을 하였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동작으로 꼬마를 차좌석에 앉히고 안전밸트를 채우더니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젊은사내가 꼬마를 태우고 아빠인 본인도 함께 타는 줄로 알았다. 그것이 아니었다. 그 젊은이는 꼬마만 차에 태우고 차의 문을 닫고는 자기 집으로 바로 돌아섰다. 그리고 나에게는 주소를 주고는 눈빛과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었다. 난 처음에는 어떨 결에 그것의 의미를 확실히 몰랐다. 몇 번 되풀이 되다 보니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가 돌아서면서 신호를 보냈다.
“어이! 잘 부탁해 !”
“ 알아서, 염려마!” 난 손을 살짝 들면서 답을 하고는 출발하였다.
차는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꼬마는 무엇이 좋은 지 싱글벙글하였고 내가 뒤돌아 보니 생긋 웃었다.
“안녕? 꼬마야” 했더니,
“좋아요 , 아저씨는 안녕하세요?” 하고 꼬마가 답했다. 그리고 나이를 물어보니 6살이라고 하였고 남자애였다.
차는 시내쪽 강변을 거쳐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다시 외곽으로 한참을 달려 아파트 밀집지역에 들어섰다. 그 사내가 알려 준 번지의 아파트에 들어서자 바로 현관에서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나왔다. 아마 사내로 부터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요금을 지불하고 꼬마를 내리고는 꼬마와 서로 포옹하면서 재잘거렸다. 그리고는 그들은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차를 돌리면서 가만히 생각에 들러갔다. 젊은 여인들이 살다가 애기를 낳았고 그리고 헤어졌고 그래서 애기 키우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고 상상하였다. 꼬마는 각자 생활터전이 다른 부모사이에서 아빠와 시간도 보내고 엄마와도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일주일에 여러번 혼자 아빠집에서 엄마집으로 혹은 엄마집에서 아빠집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물건을 택배로 보내듯.
차는 다시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것에 대한 작은 불안한 마음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한줄기의 편안함이 내 가슴에 쓰며들기 시작하였다. 왜나하면 나는 이런 똑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할 때마다 젊은 사내나 젊은 여자 그리고 꼬마, 모두에게부터 어떠한 침울 불평 혹은 슬픔이라는 느낌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나를 믿고 꼬마를 택배를 보내듯 보냈다기 보다 여기의 안전한 운송시스템을 믿고 그렇게 하였다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 하나의 문화와 하나의 사회시스템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슴을 보았던 것이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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