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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3개월 캐나다 생활을 계획하다

Hi Yeon 2023. 5. 15. 10:18

230515 3개월 캐나다 생활을 계획하다

 

2006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 이민 후, 2015년 말에 혼자 귀국하여 1년간 도서관에서 지내다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서울에서 게임장을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그 게임장은 직원이자 지배인 한 명이 모든 것을 맡아서 운영하는 1인 시스템의 가게였다. 내가 일을 분담할 경우 지배인의 수입이 그 만큼 줄어, 혹이여 직원이 그만 두게 되면 가게 운영이 어럽게 될 수 있었다..

 

단골 손님들과 주변 가게 주인들 조차 그 직원(지배인)이 사장인 것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 그 직원은 사장처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신불자였기에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돈 관리는 깔끔했다. 그 직원을 내 보내고 내가 직접해 보아야 별 이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원을 다독거리고 독려하는 것 밖에 없었다. 투자금만 회수되면 그때 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하였다.

 

돈을 벌 수 있을지, 아니면 까질지 모르는 막연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하나의 꾀 비슷한 일탈을 생각했다. “너를 믿고 나는 다른 사업을 하기 위해 멀리 간다. 지금 대로만 해달라라는 인식을 주고 나는 가게를 직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래서 전에 졸업한 예술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여 1년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일탈 1년 동안 나는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 동안 가게는 크게 나빠졌다. 박근혜 탄핵 사건으로 경기가 급격히 하강했기 때문이었다. 귀국하여 나는 급히 단골 부동산사장의 도움으로 폐업했다. 물론 많은 손실을 보았다. 게임산업은 경기연동사업이다. 정치와 경제를 크게 보지 못하고 시작한 이유였지만 내 욕심탓도 컸다.

 

만약 그때 폐업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어짜피 피하지 못할 손실이라면 아까운 세월에 공부 하나 건졌다고 여겼다. 만약 그때 학업마저 안했더라면, 돈 잃고 아무 것도 못했으니 나는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실망이 매우 컸으리라.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캐나다 학교에서 1년간 공부와 작업을 병행했다.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캐나다로 건너가서 1년 더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 더 이상 캐나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나라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계를 위하여 나는 부동산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크게 열고 주로 토지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고객에게 전문적인 정보를 주는 건축사이면서 동시에 공인중개사인 내가 고객이익 우선이 아닌 매매 제일주의 세일즈로 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고객들에게 또한 동료 중개사에게 건축사로서 전문적인 자문과 법규정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개업을 하자 바로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하여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2년 후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투자금 정도만 받고 사무실을 부탁하고, 코로나 팬데믹의 마지막 쯤인 2022년 말, 나는 경주로 내려와 손수 내 집짓기를 하였다.

 

내가 무엇을 하면 꼭 세계가 요동을 쳤다. 그참, 우연인가? 내가 서울에서 가게를 시작하니 민중탄핵으로 대통령이 쫒겨 나면서 국가적인 혼란이 생겼다. 그리고 경제가 주저 앉았다. 갑자기 가게 손님이 확 줄었다. 나는 큰 손실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정리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이때 한번 더 경험했다.

 

내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열고 5개월후부터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었다. 경기는 확 꺼졌고 사람의 이동이 확 줄었다. 당연 부동산 거래도 크게 줄었고 내 사무실은 겨우 유지가 되었다.

 

2022년 이른 봄 나는 집짓기를 했다. 그런데 그때 발을 맞추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다. 집짓기 착공을 하자마자 세계 경제가 추락하더니 건설자재가 폭등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나는 집짓기를 1년만에 완성했다. 다행이 직접 공사를 함으로서 원가를 많이 절감하였고 어려움도 극복했다.

 

2023년 봄, 집짓기를 끝내고 보니 그 위력을 떨치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다. 누구든 나라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 의도는 집짓기를 끝내고 여기 고향에서 건축사로 일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 자신도 말리고 형제도 말렸다. 너답게 편안하게 은퇴하여 대놓고 놀아라고 했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한 결과 그냥 푹 퍼져서 놀면서 사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따져보면 정말 그리 긴 인생이 아니다. 바로 내일이다. 이제는 체면도 폼도 사치이다. 배 아니 고프고 아니 추우면 된다. 그래서 지금 일절 경제활동을 접고 야인으로 돌아가 나를 놓아버리고 막 놀면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 해보니 무심무욕이니 너무 좋았다. 창너머 들판에서 아낙네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을 느끼고 글을 쓴다. 그 맛은 달콤했다. 두 달 정도 전원생활하면서 느긋하게 살아보니 전에 다녔던 캐나다 학교생활이 생각났다.

 

최근 귀국하여 여러가지 사업을 했다. 고국에서 가게를 경영하면서 캐나다로 건너가 학업에 열중했다. 애들과 함께 이민생활을 하면서 택시를 몰고 대학교에서 공부도 했다. 이렇게 이제까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었다. 아마도 흘려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었나? 욕심이었나? 아니다. 삶의 도피였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그곳에 가고 싶었다. 이제는 아니다. 과거와 전혀 다르다. 과거 캐나다 대학생활과 다른 기분이다. 그냥 가고 싶었다. 만약 학교에 다시 간다면 이전과 확실히 다른 삶의 멋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서 느긋하게 작품을 만든다. 커피샆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과 눈빛으로 정을 나누고, 창너머 옛스러운 건물에 비치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캐나다 작은 고도의 거리를 걷으면서 하이하고 말을 거는 사람들의 포근한 표정을 느끼고, 한강보다 더 넓고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옆으로 하면서 조깅을 하고, 찬란한 캐나다 여름 속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평원을 달리고... … 나는 마치 정지된 시공에 있는 듯하다.

 

새무지를 삼키면서 작은 방에서 혼자 고독을 달래기도 하고

 

그러면 아마도 내 마음과 머리에 수상한 이미지가 생겨 나도 모르게 작업대에 앉게 되고, 그리고 무엇인가 디자인하고 만들겠지.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삶의 작은 이미지가 녹아 든 하나의 작품이 갤러리에서 고객을 유혹하겠지. 이것이 전혀 아니라 해도 내 마음에 평온이라는 만족감 하나라도 건지겠지. 따뜻해지는 내 눈빛을 느끼면서

 

집짓기 다 해 놓고 잠깐 전원생활을 즐기더니, 이제 그 집을 비워 놓고 간다고?” 내가 나를 나무랬지만 사업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가? 무심의 전원생활은 언제든지 가능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야하고 그냥 질렸다.

 

5 26일 출발하는 미국 LA 경유 캐나다행 편도 비행기표를 싸게 구하고, 그리고 동부 캐나다 현지에 방 하나 빌렸다. 누군가로부터 괜찮아말 한마디에 힘도 났다. 3개월 있다 보면 또 다른 마음이 생기겠지. 안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그때 또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