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312 기초공사를 끝내고 나니 문득 생각나는 것이 후회이다
기초는 건물을 바쳐주는 바탕이고 급수와 배수의 시작점이 된다. 사람으로 치면 척추와 동맥, 그리고 신경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기초설계도면을 보면 건물의 모양을 알 수 있고 건물의 이미지와 가치관을 알 수 있다. 한번 기초가 정해지면 건물을 변경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수십 번 기본설계를 거듭했다. 수십 번 도면을 고치고 고쳤다. 하물며 공사를 시작하고도 2번이나 고쳤다. 주택설계 한 건당 설계비가 수백만이다. 설계변경도 마찬가지이다. 시간과 경비를 따진다면 상상 이상이 된다. 그렇게 한 이유는 설계는 기초를 정하고 그 기초는 건물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초 공사를 끝내고 나니 문득 내 젊었을 때가 생각났다. 내 부모님은 엄격하고 합리적이었다. 부모님은 종손이었고 봉건적이었지만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식이었다. 교육열이 높아 자식들의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제일 큰 수혜자는 나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위해 홀로 도시로 나갔다. 홀로 도시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공부에만 매진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방황이 시작됐다. 왜 공부를 했는지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고민이나 생각조차 없이 그냥 공부만 했으니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행이 좋은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후 나는 큰 병을 얻어 병원신세를 졌고 고향에서 3년을 요양했다. 이런 시련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가치관없이 대충 살았다. 다시 공부하여 직장을 얻었다. 그리고 결혼도 했다. 이때도 그냥 사니 사는 것이었다. 안 되면 세상원망이나 하면서…
대학에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건축현장에서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설계사무소로 직장을 옮겼다. 다행이 설계는 원칙이 있었다. 설계는 내가 생각하여 만든다. 내가 주도적인 역활을 한다. 설계업무를 하면서 자주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다. 좋은 설계와 감리는 좋은 건축물을 만든다. 인생의 설계와 감리는 무엇일까? 반듯한 가치관과 흔들림이 없는 고집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
많이 늦었지만 내가 건축사가 되어 설계와 감리를 하면서부터 인생관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왜 설계를 해야 되는지? 원칙이 무엇인지? 왜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그럼, 원칙을 어디까지 고집해야 하나? 원칙을 고집하면 할수록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원칙과 타협 속에서 갈등하는 시간이 많았다. 캐나다에 이민하여 한 10년간 고생은 내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캐나다 공예대학에서 한 5년간 공부는 내 편견을 없애 주었고 매사에 겸손하고 감사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좋은 땅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내 집터에 얼마나 좋은 집을 짓는가가 중요하다. 설계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1년간 수 없이 생각하고 수 없이 설계했다. 공사 중에도 설계변경을 여러 번 했다. 꼬딱지 만한 집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집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내 자신을 선택할 수도 없다. 별 볼일 없는 내 삶이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인생이다. 주어진 땅에 설계가 매우 중요하듯, 내가 태어난 환경에서 얼마나 잘 미래를 설계하는가가 중요하다. 가치관 정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청소년 시절에는 가치관 정립이 최우선되어야 한다. 부모의 역활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노력과 자각이 매우 중요하다.
내 집을 설계하고 공사하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후회이다. 좀 더 일찍 내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어 그리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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