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7 우리의 건축시공과 설계문화
인생을 한 번 더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 할까? 한 번 경험을 했으니 가는 방향을 정하고 그 다음은 계획을 잡겠지. 그리고 여러 번 피드백 하면서 수정하여 완전한 인생설계도를 만든 후 의심없이 실행에 나서겠지. 인생을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인생설계도 즉 삶의 그림이 얼마나 중요하지를 당연 안다.
자동차를 얼마나 잘 만드는가? 선박을 얼마나 잘 만드는가? 그 답은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나 디자인과 설계를 잘 하는가에 달려 있다. MS나 Apple이 잘 만들어 유명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획, 디자인, 설계를 하고 모두 외주를 준다. 그리고 결과물이 원하는대로 되는가만을 감독한다. 설계가 그 만큼 중요하다. 아니 설계가 전부인지도 모른다.
달나라 가는 우주선을 제작할 때도 그렇다. 기획과 설계이다.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것도 정확한 설계도면와 노하우이다. 뭐 우주선을 만드는데 특수한 재료와 공정이 필요하다. 그것은 Hard, 즉 도면을 보고 만드는 사람의 몫이다. 이익율도 Hard보다 Soft가 훨씬 높다. 이익율에서 Apple이 삼성보다 훨씬 높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는 Hard 이익율이 높다. 이는 후진국 스타일이다.
우리나라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등 첨단 산업에서는 디자인과 설계분야가 잘 발달되어 있다. 무릇 수출로 먹고 사는 산업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야에서는 설계를 잘 하고, 그리고 잘 만들고, 이런 순서로.
그런데 말이다. 건설건축 산업에서는 아직 반대이다. 시공이 우선이고 설계는 그냥 참고사항이다. 설계는 정말로 낙후돤 수준이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세계 최고인데 말이 안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맞다. 세계 최고의 빌딩을 수주하고 세계 최고의 교량을 시공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설계도와 시방서에 따라 시공방법을 잘 개발한 덕분이다. 여기서 설계도와 시방서는 다 외국회사의 작품이다. 물론 감독과 감리도 그렇다. 도면대로 시킨대로 하여 세계 최고의 빌딩과 교량을 만든다. 그러나 이것 마저도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건설산업은 노동집약산업이다. 선진국에서는 정말로 돈 많이 드는 분야이다. 인건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칙대로 하니 공사기간도 매우 길다. 뿐만 아니다. 공사장의 안전은 확실하고현장관리도 철저하다. 그러니 공사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이것 모두 소비자 부담이다.
그래서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 그들이 생각한 것이 공장생산 현장조립이다. 마치 자동차를 생산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그렇게 하려면 정밀한 디자인과 설계가 필요하며 그 도면대로 공장생산을 한 후 현장에서 설계도면대로 조립이 되어야 한다. 당연 디자인과 설계 용역비가 올라가는 반면 공사비용은 낮아진다. 그러한 연유로 선진국에서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경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 왜냐하면 다 돈 때문이다.
우리의 건축현장은 어떨까? 설계는 법규에 맞추는 것이고 그리고 의뢰자가 원하는 것을 형태만 대충 도면화해 주는 수준이다. 시쳇말로 허가빵이다. 이 도면으로 시공자는 건물을 짓는다. 현장조사, 시공방법, 상세도, 시방서 이런 것 없다. 현장의 형편에 좌우되고 기초와 골조에 따라 건물도 좌우된다. 마감은 그 상황에 따라 카메레온처럼 변해야 한다.
그러니 설계도면은 참고 수준밖에 안된다. 일반인이 내 집짓고자 하면 안되는 이유이다. 건물을 신축하면 설계자를 우선 만나고 그리고 시공자를 선정하여야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 있다. 우리는 설계자보다 시공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기초를 쳤다. 가로, 세로, 높이, 수평, 수직이 도면대로 기하학적으로 정확해야 한다. 1mm오차도 없다. 그럼 공장에서 제작한 것이 맞춤으로 기초에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를 그렇게 시공하려면 아마도 지금의 시공비에서 3배는 더 들 것이다. 나도 용납이 안되는 금액이다. 현실이 그러하니 지불할 사람도 거의 없다. 다들 10cm 오차 아니 그 이상도 허용한다. 기초만 그런가? 다음 공정인 콘크리트 골조(물공사, 현장공사)도 그렇다. 그 다음 공정은 또 현장에 맞추어 따라가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공장에서 정밀하게 설계대로 만들어도 현장에서 조립을 할 수 없다.
광주에서 콘크리트 붕괴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고층 아파트 골조공사에서 우리는 철근콘크리트 벽식공법을 사용한다. 한 층을 거푸집공사하고 철근배근하고 레미콘을 타설한다. 이런 작업이 7-10일 주기로 반복된다. 상온에서 28일이 되어야 콘크리트강도가 생기고 그때 한 층이 더 가능한데 왜 그렇게 고집하는가? 공기, 즉 돈 때문이다.
콘크리트는 상온 28(4주일)이 되어야 필요한 강도가 나온다. 4주이면 4개층이 제 강도가 아닌 상태로 골조가 올라간다. 그 상부에 골조작업을 하기 위해서 또 하중이 가해진다. 층층의 골조는 층층마다 지탱하는 샤포트와 거푸집이 지탱한다.
그런데 말이다. 경비와 공기를 아끼기 위해서 그놈의 샤포트와 거푸집마저 바로 제거한다. 괜찮을 수 있지만 겨울에는 양생기간이 28일이 아니라 더 길다. 잘못 제거하다가는 전체가 도미노 현상으로 붕괴된다. 그래서 사고가 빈번하다. 벌칙이 아무리 강화되어도 완전양생(상온 4주)이 된 후 한 층을 공사하는 문화가 되지 않으면 부실시공과 안전사고는 여전할 수 밖에 없다.
그럼 겨울에 왜 공사를 그렇게 강행하는가? 원칙은 영하권에는 공사를 할 수 없다. 그러나 보온조치를 하면 가능하다. 말이 보온조치이고 말이 안전조치이다. 한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원가절감의 원칙이 우선이다.
그럼 공사비를 많이 책정하면 되니 않는가?. 아파트공사비가 정부에 의해서 정해져 있다. 그것에 맞출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아직 우리는 건물공사비에 지금의 배 이상을 지급할 문화는 아니다. 그래서 설계비가 껌값이다. 당연 설계도 대충한다. 공사비도 껌값이다. 그래서 현장과 형편에 맞추어 공사한다. 즉 공사비에 맞추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당연 안전도 그 수준이고 사고도 그 수준이 된다. 돈 없이 되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설계를 제대로 하여 그것대로 시공한다면 지금의 공사비의 몇배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자재 품질이 동일하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누가 지금의 아파트 분양금의 두 배를 지급할 사람이 있는가? 누가 개인 건물에서 공사비를 두 배를 주고 공사하겠는가?
10장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경험 많은 제작자는 가능할 수 있다. 10장의 시나리오는 제작자에게 그냥 참고사항일 뿐이다. 제작자가 마음대로 만들어 납품하면 그만이다. 100장의 시나리오는 그 만큼 더 의뢰자 의도가 담겨있다. 100장 시나리오 제작비는 10장보다 그 만큼 더 늘어난다. 현재의 건축설계비는 10장의 시나리오로 내 집 짓는 것과 같다.
그래서 건축은 눈에 보인다고 쉬워 보이지만 내 집짓다가 10년 늙는다는 말이 있는 이유이다. 그것도 내 돈 들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그렇지 않고자 한다면 지금의 설계비로 몇 배를 더 주고 그것에 걸맞게 이름있는 건설사를 선택하여 턴키기법으로 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품질이 높아지는 만큼 공사비는 몇배 늘어난다.
아마도 우리의 인건비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 - 최저 시간당 인건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설계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설계는 시공의 질과 공사비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인건비가 높아짐에 따라 건축도 공장생산 현장조립이 일반화될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로 습식, 현장, 개별 생산에서 건식, 공장, 대량생산으로 변화이다. 요즈음 그런 시도를 볼 수 있다. 공장생산하여 현장에 설치하는 컨테이너하우스가 아마도 초기 형태의 공장생산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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