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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718 한계령의 추억

Hi Yeon 2021. 7. 18. 11:50

 

 

 

210718 한계령의 추억

 

그녀와 결혼하고 몇 개월 후 어느 휴일, 우리는 자동차로 설악산을 찾았다. 그리고 꼬불꼬불한 길을 넘고 넘어 한계령에 도착했다.

 

여기가 한계령이야

 

시원하고 좋네

 

난 그녀와 이렇게 한계령에서 저 멀리 보이는 첩첩 산을 잠깐 즐기고 그리고 떠났다. 그것이 다였다. 32년 전 일이었다.

 

오늘 한계령에 섰다. 한계령휴게소 찻집에 들렸다. 저 아래 산너머 산이 내 눈 아래 펼쳐졌다. 느긋하게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떠오르는 그 추억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있지도 않는 기억을 억지로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행이 있어 그냥 되돌아가야 했다. 한계령에 오기 전에 일행이 나에게 물었다.

 

한계령에 가 보셨어요?”

 

아뇨.”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싣고 탱크 같은 자동차를 한계령으로 몰았다. 차창으로 설악의 절경이 스쳐 지나갔다. 꼬불꼬불한 길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멀미가 났다. 어느 듯 자동차는 한계령휴게소 주차장에 올랐다. 순간 내 눈에 한계령휴게소 건물이 들어왔다. 우뚝 솟은 돌 바위 아래 산장 같은 건물이 내 눈에 익었다. 처음 보는 곳이 아니었다. 갑자기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 그랬구나… … 그때 내가 여기 왔었지. 그녀와 함께

 

신음소리 같은 작은 소리가 내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따져보니 32년 전의 기억이다. 의미도 없는 흐릿한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냥 우리가 여기에 왔었다는 사실만 있었다.

 

난 그때 그녀와 함께 여기에 왔다. 우리는 주차장 끝 난간에 서서 저 멀리 첩첩 산을 바라보았다. 그것뿐이었다. 어떠한 추억도 없었다. 그녀에게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안중에는 없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여기에 한번 와 본 것으로만 족했다. 젊었을 때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젊었을 때의 자기 본위였다.

 

한계령에 오르기 전에 우리 일행은 오색약수에서 주전골, 용소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과 계곡, 산과 산이 어울려지는 전경은 한마디로 절경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가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꽐꽐 흐르는 계곡물과 물소리, 첩첩이 산과 산봉우리, 산 능선 따라 하늘과 닿는 곳에 점점이 꽂힌 소나무 하나, , , 산과 산이 만나 만드는 그 깊숙하고 음밀한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른다. 내 눈은 수채화 물감으로 흠뻑 젖었다.

 

만약 지금 그녀와 둘이서 하는 여행이라면 32년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녀의 기분은 어떤지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분위기로 그녀와 추억을 만들리라.

 

그녀가 계곡의 절경이 보고 싶은가 보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손잡고 걷고 또 걷는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모양이다. 경치 좋은 찻집으로 가서, 향기 좋은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그녀는 배가 고픈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 좋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한다. 아마도 잔 부딪는 소리와 함께 웃음과 이야기로 밤은 깊어갈 것이다.

 

32년 전 그때는 그 계곡에 가보지도 않았다. 갈 생각도 없었다. 갈 놈도 아니었다. 갔다 하더라도 그냥 폼만 잡고 돌아갔으리라. ‘난 등산하러 왔노라, 그리고 설악산 대청봉을 정복했노라고 하면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말이다.

 

일행은 소금강 야영지로 돌아왔다. 바비큐 그릴에서 구운 삽겹살이 식탁에 올랐다. 그 촉촉함과 풍미에 기가 막혔다. 소주 한잔을 입에 부었다. 왠지 쓴 소주가 달달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주전계곡이었다. 그토록 눈이 시원한 한계령이었다. 눈을 감으면 동영상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도 눈 속은 수채화 물감으로 흥건하고, 가슴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늘 정말 좋았다.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런데 32년 전 그때, 그녀와 함께 여행한 한계령에서 기억은 나에게 하나도 없다. 오늘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캠핑장에서 별빛을 받으며 좋은 분들과 잘 구운 삼겹살과 소주를 즐긴다. 너무 좋다. 그런데 말이다. 왠지 그 만큼 마음이 아파온다. 나는 32년 전 한계령에 왔었다는 기억조차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