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 고택, 계룡시
주택은 거주자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주택에 있다. 잠자고 먹고 놀고, 그리고 휴식하는 곳이 바로 주택이다. 그래서 주택은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을 좌우한다. 그래서 “건축은 인간이다”라고 어떤 유명한 건축가가 말했던가. 주택은 특히 그렇다. 한번 선택한 주택을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놈의 주택이다. 그래서 한번 선택한 주택은 거주자와 항상 함께 한다. 한번 선택하면 계속 같이 가야 한다. 마치 부부와 같은 존재이다.
부부와 다른 점은 주택은 거주자에게 자기를 항상 돌보아 달라고 요구만 한다. 그리고 주택은 거주자에게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냥 그대로 있다. 그래서 거주자가 평생 맞추고 살아야 한다. 거주자 형편과 마음은 죽 쑤듯 항상 변하는 데 말이다. 거주자가 주택을 바꿀 수는 있다. 바꾸면 뭐하나 역시 거주자는 전적으로 새로운 주택에 역시 맞추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놈의 주택은 그렇다.
물론 주택을 바꿀 수 있고 개축을 할 수가 있으며 부분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경제적, 시간적, 육체적, 공간적으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차라리 주택에 얽매어 사는 것이 낫으리라 한다. 바꾸어 봐야 살아보면 별 차이가 없다. 또한 살다 보면 거주자의 형편은 또 수시로 변하고 마음은 또 시시각각 돌변한다. 그때마다 변경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들면 다 산다. 사람은 다 적응하면서 살게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경제적인 동물이다. 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면 아무도 쉽게 집을 바꿀 수가 없다. 자동차쯤이야 새로 다시 사면 되지 하는 사람도 주택을 바꾸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맞추어 사는 것이다. 맞추어 사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파트 문화가 대세인가 한다. 맞추어 살면 처음에는 좀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살다 보면 장점도 있음을 느낀다. 부부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닮아가는 것과 같다.
이래저래 주택은 거주자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거주자 재산의 큰 분분을 차지하면서 쉽게 변경이 할 수 없는 이놈의 주택이라는 것은 스스로는 절대 양보하지 않고 전적으로 거주자가 자기에게 맞추기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주택은 꼼짝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기만 한다. 사실 전적으로 거주자가 주택에 맞추어 산다. 그뿐인가, 주택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거주자에게 수만 가지를 요구하고, 짜증을 부리고, 응석을 부리기도 하며, 어떤 때는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세상은 전화기에서 핸드폰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무섭게 변한다. 그 기능도 수시로 발달한다. 사람의 욕구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요런 요물을 거주자가 직접 기획하고 계획하고 만들어 보고자 하기도 한다. 재미가 있고 흥미롭고 자기만족도도 높기도 하다. 좋든 나쁘든 자기가 직접 한 것이니 그렇다. 이는 마치 어린 학생이 많은 책을 읽고 혼자 인생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 본인에게는 참으로 만족도가 높은 재미있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번 가면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과정이다. 실패하면서 배우는 과정이다. 많은 돈을 투입하면서 하는 과정이다. 건축도 그렇다. ‘건축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건축하는 것은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고 어떤 주택을 만드는냐는 “어떤 삶을 만드느냐?”이다. 내가 만든 주택이지만 결국 주택은 그대로 있고 내가 그 속에서 주택에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주택을 만들지만 결국 그 주택은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생에 한번 할까 말까 하는 크나큰 도전이다.
한 칸의 아파트, 혹은 한 칸의 전원주택에서 삶은 자라나는 젊은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3칸의 아파트, 혹은 3칸의 전원주택은 어떨까? 대궐 같은 아파트, 혹은 대궐 같은 전원주택은? 이는 주택의 크기와 위치에 대한 것이다. 형식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폐쇄형 주택과 개방형 주택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유동형(Flexibility)과 비유동형 주택은? 자연과 호흡하는 주택, 혹은 그렇지 않는 주택은 마찬가지로 한 어린 인간의 인간성과 심성을 어떻게 달리할까?
주택의 크기와 주변 환경만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주택의 구조, 방향, 시스템도 인간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일단 집이 완성되면 우리는 어떤 반항이나 불평도 못하고 주택이 원하는 대로 따르고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택 안을 짤 때는 우리는 많은 사전 조사와 고뇌가 필요하다.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아니면 100 번도 더 해보고 Feedback을 해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주택이다. 주택은 평생을 같이 하는 나의 말없는 무변동(Unflecibility)의 반려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택 안을 계획해 보자 할 때는 이런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주택은 사람과 같다고 하니 최소한 거주자의 인문학 정도는 연구해야겠다. 거주자는 어떤 사람이고, 생활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가족의 수와 향후 가족 변동 여부를 추측해야 하고, 부부 각각의 가치관도 알아야 한다. 다음은 거주하는 지역의 기후적 지리적 특성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얼마나 춥고 더운지, 비는 얼마나 어떻게 오는지, 햇빛은 어떻게 비추는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 평야인지 아니면 산지의 지형인지, 주변의 산과 강은 주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그리고 재료적인 특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지방에는 무슨 건축 재료가 역사적으로 사용되었는지, 현재는 무슨 재료가 통용되고 있는지, 그 가격은 어떤지, 건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등등이다. 그다음은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건물의 규모와 구조, 자재의 경제성이다. 마지막으로 주택의 시스템을 고민하여야 한다. 이 시스템은 거주자의 가치관이 전적으로 반영되었는지여부이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거주자에 대한 것이다. 즉 거주자의 성향, 소득 수준, 교육 수준, 나이 정도, 가족관계, 직업 등등 거주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가치관에 따라 주택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거주자의 가치관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라고 하여도 쉽게 어떤 한 건축주의 건축설계 의뢰에 쉽게 그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계획 안을 만드는데도 몇 달 혹은 1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100층의 상가 건물은 한가지 목표만 있다. 기술력과 수익성이다. 답안이 명료하니 전문가라면 쉽게 풀 수 있다. 주택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답은 그 많은 경우의 수가 다시 경우의 수가 되니 매우 어렵다. 결국 주택은 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건축물 중에 주택 설계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이유이다.
그럼 거주자가 직접 설계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학문과 경험이 필요한 분야이고 또한 주택이라는 것은 쉽게 바꾸고 변경할 수 없는 비싸고 까다로운 것이어서 잘못에 대한 변경을 용납하지 않는 놈이다. 그러다 보니 쉽지 않고 한 번 결정하고 시행하면 돌이킬 수가 없기에 위험한 선택이 될 수가 있다. “나는 3 Bed Room에 잠잘 수 있고 밥을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경제적인 집이면 돼”라고 하면, 그렇다면 땅을 사서 고민하면서 주택을 직접 지을 이유가 없다. 아파트에 사든가 30평 미만의 범용 농가주택 형식으로 지으면 되는 것이다. 살기 어려울 때는 주택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생존의 편의성만 필요했지만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주택에게 더 큰 욕망이나 욕구를 요구하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단순한 주택 형태를 멀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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