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2015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서

고국에서 친구와 함께 법무사 & 공인중개사무소 개설

Hi Yeon 2017. 2. 10. 11:10

애들을 데리고 2006년 캐나다에 이민을 하였다. 10년 후, 애들은 대학교을 진학하여 독립하였고 나는 생업과 더불어 진학한 디자인 대학교를 2015년 6월에 졸업하였다. 이때다 하고 10년의 동부 캐나다 이민생활을 정리하고  배낭 하나만 들고 캐나다 대륙을 건너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밴쿠버에서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고국에서 생활은 다시 이민온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들뜨고 생활은 불안정했다. 다행이 마음은 항상 푸근하였다.  타국에서 항상 느꼈던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몇개월동안 국내여행과 도서관에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특별히 하는 것이 없었다. 가진 재산도 별로 없었고 수입도 없었기 한 두벌의 옷으로 만족하고 두 다리로 다녀야 했다. 다행이 세 끼밥은 고국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심할 때면 도서관에 가면 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면 되지 하였지만 그런 생활이 몇 개월이 되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주변 형제들은 잔소리를 해댔다.


 "사람이 일을 해야지."


귀국하여 도서관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본 내 친구가 맨날 내 접심을 사준다. 내 친구는 법무부에서 은퇴한 법무고시 출신이다. 그는 은퇴 후 소일삼아 법무와 법률일을 한다. 변호사보다 더 실제 업무에 능통하다. 그가 밥 사주면서 하는 말,


"야, 일을 해야지."


그래, 일을 해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는 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하여 대전에 있는 10년 전의 지인을 찾았다.


"친구야, 너의 사무실에서 잠깐 같이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전화로. "이 놈들이" 하고 내 속이 끓었다. 그래, 저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작은 파이 중 조금을 나에게 잘라줄 리가 없지.


"그래, 안해 이놈들아" 하고 소주 한잔으로 마음을 풀었다. 그때 마침 오래 전에 따 놓았던 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떠 올랐다.


"이것 할까? "


친구는 적극 권했다. "나하고 작은 도시로 들어가서 하면 쾐찮아, 같이 해봐" 그러나 친구의 그 말에도 나는 꿈쩍도 안했다.


"때깔 좋은 직업은 실속이 없어. 가만히 있는 것이 돈 버는 거야" 하면서.


그리고 몇개월 지났다. 서울에 계시는 누님이 가게 하나를 소개했다. 그리고 말 한마디로 나는 덜컹 용인에 있는 그 가게를 인수했다. 내가 돈에 약했나?. 돈이 아쉬웠나? 욕심이 일었나? 나를 가두고 싶었나?


가게를 해보니 큰 돈도 아니 되고 전적이 사무직이라 재미도 나지 않았다. 그후로 용인 가게에서 주말을 보내고 평일에는 대전으로 내려와 놀면서 친구의 법무일을 도웠다. 저녁에는 그와 자주 막걸리를 같이 비운다.


"야 이 나이에 도시에서 일하면 차 때고 포 때고 남는 것은 졸이다. 그것도 졸 한놈"

"그럴봐야 우리가 살았던 작은 도시로 가서 졸 말고 작더라도 차를 먹고 포를 먹고 해?"

"그것도 없으면 봉사하지 뭐, 이래도 저래도 그곳에서 우리는 최고 유지는 되잖아"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사람마저 좋는 그곳 계룡에서."


각각 절반을 책임지니 많지 않는 임대료와 유지비는 부담이 안된다. 친구는 이 도시의 유지이고 마당발이다. 그리고 내 파트너로 이 도시의 터줏대감 형님벌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단다. 내 친구와 그 사장님, 그리고 그들의 지인으로부터 많은 땅이 나온다. 땅은 아는 사람으로부터 나오고 거래되는 속성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법무와 법률분쟁건은 지인을 통해 나온다. 내년에는 법률시장이 개방된다. 무한 경쟁이다. 그래서 미리 작은 도시에 자리잡아 나이든 분들을 대상으로 법무와 중개를 함께 서비스하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즐기면서.. ... 그래서 친구와 함께 계룡시청앞에 법무사 & 공인중개사무소를 개설하였다. 친구는 법무 업무을 하고, 나는 부동산중개 업무를 한다. 고국에 정착한지 꼭 1년 후의 일이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꾸어 온 고국의 삶에 대한 꿈(건축설계사무소)이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지만, 나는 지금 부동산 중개업무가 좋다. 친구와 같이 있으니 더욱 좋다. 땅을 보고 평가하는 일은 나에게는 매우 쉽다. 땅은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가지고 있고 그리고 지인을 통해 거래된다. 많은 사람들이 법무와 소송일로 법무고시 출신인 내 친구를 찾는다. 친구와 함께하는 법무사 & 공인중개사무소, 이미 많은 계룡 어른들과 친구들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Andrew의 또 다른 블로그 명: 전원도시 계룡을 품다

http://blog.naver.com/yeonbaram



법무사 & 공인중개사무소 개설에 대한 작은 이야기이다.


아마 캐나다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였다면 순서대로 그리고 원칙대로 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고국에서는 좀 태만하였다. 설마하고 일을 꺼꾸로 하였던 것이다. 먼저 시청에 등록하고 사무소를 꾸며야 하는 데 사무소를 먼저 오픈하고 등록신청을 하였던 것이다. 


개설자가 외국인이다. 그래서 특별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특별한 서류'라는 것이 캐나다 국가기관에서 발행하는 확인서 같은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말한다. "무조건 법에서 말하는 그 서류, 나도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그 서류를 가져 오셔야 됩니다."


사실 그런 서류가 캐나다 국가기관에서 발행한다고 하여도 그곳은 너무나 느리다. 그리고 캐나다는 그런 서류가 없다.


그래서 관련 법을 읽고 이해하고 사례를 찾았다. 결국 사문서(변호사를 통한)를 공문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법률전문가인 친구의 도움이 받았다. 한국 변호사를 통하여 공증하고 벤쿠버 소재 변호사에게 다시 공증, 그리고 영사관을 방문하여 그 서류를 확인받는 그런 일련의 작업이었다.


벤쿠버에 계시는 전영관님이 캐나다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처리해 주셨다. 감사, 그리고 또 감사. 며칠 후 서류를 들고 시청을 방문하니 담당이 놀란다. "이런 서류를 이렇게 빨리".


회원님 덕분에 저 국제적인 사람이 되었읍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