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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스케치

평심으로 돌아오는 길

Hi Yeon 2016. 11. 12. 10:57


                                        16 10 18, 6:50 PM, 인천공항 출국 대기실에서


사람이 평심으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가? 이민이라는 긴 외도를 한 후 평심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도 멀다 말인가? 나는 인천공항 탑승 대기실에서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석마다 사람들로 혼잡했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내 마음은 왠지 불안했다. 마음을 가라 앉히기 위해서 볼펜을 꺼내 들고 눈에 비치는 내 앞을 마구 그려 나갔다. 다들 왜 여기 있을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단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이렇게 들뜨고 불안한 마음으로 여기에 나는 왜 있을까?


캐나다에서 고국으로 귀국하여 살아온 지 꼭 일 년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10년을 살다가 애들을 두고 나만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 년 전이었다. 바로 귀국하기가 싫었는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캐나다 대륙을 가로질러 여행하면서 귀국을 미루며 꾸물꾸물 대었다. 결국 밴쿠버에서 머물다 나는 '애라 모르겠다, 가보지 뭐' 하고는 1년 왕복항공권 비행기로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고국에 와서 형님과 누님 댁을 전전하면서 세월을 보내니 마음은 항상 공중에 떠 있었다. 10년 동안 캐나다 생활을 하고 무작정 돌아와 보니 무엇인가 도중에 그만둔 것 같아 항상 마음이 찜찜하였던 것이다. 이를 테면, 캐나다에서 미술 공부에 끝장을 보아야 했었는데, 애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돈을 벌면서 캐나다에서 머물려야 했었는데, 혹은 배낭을 메고 지칠 때까지 세계를 두루두루 둘려보아야 했었는데 하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다행히 고국에 있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취득한 건축사도 공인중개사도 다 마다하고 나이 먹은 놈이 바람같이 돌아다니니 형제들은 나를 보면 궁금해하고 의아해했다. 특히 누님은 내가 무엇인가 하면서 고국에서 안착하기를 바랐다. 마침 지인이 사업 확장으로 작은 가게를 넘긴다는 소문을 누님이 듣고 와서는 나에게 권했다. 살림만 하는 누님도 나도 무지인 상태에서 그냥 믿고 덜렁 가게를 인수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생전 처음 해보는 장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내 스스로 무엇엔가 발목이 잡히기를 원했던 모양이었다.


캐나다에서 영어도 전혀 못하는 놈이 두꺼운 서류 뭉치를 믿고 큰 사업체를 인수하였고 그리고 직원을 믿고 운영하였다. 실패했다. 고국에서는 서류 한 장 없이 한마디 말로 가게 인수받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직원을 믿고 운영한다. 이국이든 타국이든 당연히 직원을 믿고 가게를 운영해야 하겠지만 말이 영어가 아니어서 그런가 다행히 고국은 이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다.


가게를 인수한 지 3개월 째였다. 캐나다에서 고국으로 귀국하면서 예약한 왕복 항공권의 날짜, 즉 캐나다로 되돌아가는 날짜인 8월 중순이 다가왔다. 들뜬 마음이 발동했다. 이것을 빌미 삼아 어떻게 하든지 여기를 잠깐이나마 탈피해야지 하는 철없는 마음으로 가게를 직원에게 맡기고 캐나다로 갈 계획을 비밀리 짰다. 밴쿠버에 도착하면 좀 돌아다니다가 애들 살 거처를 알아본 후 내가 전에 살았던 프레데릭톤으로 날아가서 대학에 등록하여 학업을 계속하리라. 그리고 내년 초 여름쯤에 돌아오리라. 형제들과 직원에게는 캐나다에 공부하고 있는 애들에게 급한 일이 있어 출국한다, 해결되는 대로 바로 돌아오겠다 하고 둘려 대었다.


떠나기 이틀 전 상황이 좋지 않아 갑자기 마음이 변해 버렸다. 그래서 모든 예약을 손실 처리하고 무료로 되는 밴쿠버행 항공권만 뒤로 잠시 미루었다. 나는 다시 공중에 붕 떠 있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가게를 직원에게 맡기고 대전으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면서  다시 어디론가 떠날 기회를 엿보기만 했다. 10월, 드디어 미루었던 항공권 출국 날자가 다가왔다.


"가 버리지 뭐. 지금 가지 않으면 못 가. 가게는 별일 있겠어? 직원이 잘 하고 있잖아. 내가 설쳐 봐야 그게 그것이야. 딱 8개월이야. 돌아다니면서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지, " 이렇게 나를 설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뻔뻔스럽게 똑같은 변명을 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이번에는 무작정, 어떠한 예약이나 계획 없이 비행기 표만 들고, 밴쿠버로 출국하기 위하여 인천공항 출국대기실로 들어갔다.


미친놈, 그래도 정신이 있었는가? 마음이 불안했는가? 나는 볼펜과 스케치 북을 꺼내 들었다. 몇 분 아니 되는 그 기다리는 순간을 잊어버리기 위해 나는 손을 흔들거리면서 바삐 스케치를 해댔다.


밴쿠버에 내리자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춥고 비 오는 타향이다. 그리고 지금 나 혼자이다. 불안하고 들뜬 마음은 금세 식어 버렸다. 곧바로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내 뼈 속까지 훌터댔다. 어디에 갈 것인가, 어디에서 잘 것인가 하는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오고 보니 그 차가움은 바로 고통이 되었다. 전철을 타고 전에 가보았던 호스텔로 갔다. 예약을 하지 않았으나 다행히 잘 침대는 있었다. 침대에 걸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몸을 데웠다. 아니 마음을 데웠는지 모른다. 저절로 잠이 왔다.


다음 날이었다. 여전히 몸은 차가웠다. 아침의 허기진 배를 채우려 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날씨에 내 몸은 덜덜 떨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이 아침으로는 너무 초라해 보였다. 밖으로 나왔다. 계속 비는 오고 추웠다. 갑자기 밴쿠버 거리가 낮이 설었고 도시는 황량해 보였다. 그리고 나도 황량해졌다. 이즈음 그렇게 이쁘게 보였던 캐나다가 정이 딱 떨어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아니야,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부자야 큰 집도 있고, 큰 차도 있고, 넉넉한 가족들이 있지만, 배낭만 멘 나는 아니야.


바로 돌아갈 항공권을 만들어 그날 바로 고국행 비행기를 탔다. 중간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의 화사한 도시 전경이 차창 사이로 보였다. 옛적 같았으면 동경의 눈으로 보았으리라. 이제는 아니다. 비행기 안에 많은 한국인들이 떠들고 있었다. 옛적 같았으면 나도 저 무리였으면 했다. 이제는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이다. 


이틀 전 들뜨고 불안한 마음으로 내가 스케치하고 있었던 그 인천공항으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 누님 댁으로 향했다. 캐나다행 비행기로 떠난 놈이 단 이틀 후에 다시 나타나니 누님이 깜작 놀라고서 조용히 다가와 걱정스레 물어본다.


"야, 몇 달 후에 온다 더니?"


"아니야, 바로 다 해결했어, 더 있으면 무엇해, "


"그래? 무엇을 해결했는 데, 애들 일이 아니고... 너 들뜬 마음... 다행이다, 잠 못 자고 고생 많이 하고 큰돈 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