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과 함께 옛 세상으로 들어가다
소주와 삼겹살 그리고 친구, 참 잘 어울리는 삼합이다. 소주는 빨간색 25도, 삼겹살은 명품 숙성 스테이크형, 친구는 불알친구이어야 제맛이 난다. 보통 삼겹살을 주문하면 직원이 먼저 반찬과 소주를 테이블에 차려 주고 그릴에 가스 불을 켜고 구이판을 얹는다. 가장 맛있는 삼겹살을 굽기 위해서는 구이판의 온도가 최적 상태가 될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 이때 나는 소주병 뚜껑을 따서 미리 친구에게 한잔 권하고 나 한잔 한다. 곧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을 기대하면서 빈 속에 마시는 소주 맛은 심히 특별하기 때문이다.
시원, 짜릿, 가끔은 달꼼.
한잔을 하고 있으면 곧 삼겹살은 직원 손으로 잘 익게 된다. 이제 한 점을 집어서 먹는다. 이때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고, 채소도 양념도 없이, 오직 삼겹살 한 점만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보고 맛을 본다. 살짝 자기 기름으로 튀겨진 살붙이의 맛,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액체, 그 구수함과 따뜻함, 그 졸깃함과 감칠맛이 입안을 장식한다. 이 상태에서 맑은 소주 한잔으로 목구멍을 살짝 헹구면 입안은 이렇게 발광한다.
그것 맛 죽이네.
그다음으로 무생채, 백김치, 갓김치, 파채, 오이냉국, 양파절임, 마늘, 쌈장, 그리고 명이나물을 하나씩 곁들여서 삼겹살을 먹어본다. 금방 '소주 한 병 추가요' 하고 주문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쌈채소에 싸서 먹는다. 중간중간 뚝배기 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얼큰한 맛이 속을 시원스럽게 한다. 이때쯤이면 술과 이야기는 익고 목소리는 그만큼 커진다.
야, 사는 것이 힘들지. 직장, 애들, 마누라. 어디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네. 내 술 한잔 받게나. 우리 세상도 있어야지. 그리고는 우리는 옛 세상으로 들어간다.
이놈아, 저놈이, 이 자식아, 한잔 해, 알아서 인마, 졸라, 십 새끼, 하하, 낄낄.
소주와 삼겹살만으로는 우리 맘을 풀기에는 어림없다. 몸 좀 풀어야지. 이제 길 건너편에 있는 야구사격장에 가서 사격과 배팅을 해보고 펀치로 주먹질도 해본다. 이것저것으로 몸을 움직여 게임을 해보니 몸과 마음이 가뿐해지고 술기운과 어울려져 기분이 좋아진다. 어느 듯 모든 것이 사라진다. 과거는 없고 오늘만 있다. 주변은 없고 나만 있다.
인마, 이까심으로 맥주 한잔 해야지. 야 내기다 인마.
그래 지금은 아무 걱정 없는 우리 세상이야. 내 세상이야.
그럼 내기다. 각오 해, 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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