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쉬고 나와서 그런가, 월요일 오전에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터에서 다소 굼뜨다. 내 경우는 휴일에 일을 하여서 월요일은 다소 몸이 무거운 편이다. 그래도 월요일은 한주가 시작되는 첫 날, 나는 빡빡한 스케줄로 월요일을 맞이 한다. 2학년의 마지막 학기가 한달 남았고 그래서 모든 과목의 마지막 프로젝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월요일도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리고 오전 수업에서 나는 프로젝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과 작업실에는 아주 옛날 모델의 금속판을 절단하는 절단기가 있다. 교수들은 그것을 엔틱이라 부른다.그러한 의미에서 보관하는 겸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크기는 무척 크다. 프레임이 주물로 되어 있어 무겁다. 발로 발판을 밟으면 쿵덕하는 큰 소리가 나면서 칼날이 내려온다. 작업시 그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곤 한다.
오늘 오전 그 기계앞에서 나는 작은 은판을 자르고 있었다. 브로치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월요일 오전이라서 그랬나, 한번 몰입하면 정신을 못차리는 내 성격탓인가, 정확하게 자른다는 생각에 내 손가락이 위험선안에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나는 절단기 발판을 밟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은판이 잘려 나갔다. 그런데 내 손가락이 좀 둔탁했다. 이상하다싶어 나는 내 손가락을 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픔도 없었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잠간의 찰라가 지나갔다. 나는 손가락 손톱에서 피가 뿜어져 흘려 내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큰 아픔이 내 몸으로 퍼짐을 느꼈다. 손가락이 칼날과 같이 내려오는 안전대 밑에 찍혀 버린 것이었다. 왼손 가운데손가락(세번째)와 오른손 집게손가락(두번째)이었다. 나는 두 손을 마주 움켜 쥐고는 아픔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였다. 또한 "넌 바보야" 하는 스스로의 질책으로 더 아파하고 더 괴로워하고 있었다.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판단할 수도 있으니, 소란을 떨 일은 아니었다. 주임 교수님의 도움으로 대충 붕대를 감고 나는 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이 도시에는 이곳 뿐이다. 응급실에서 접수를 하고 붕대를 풀고 보니 손가락의 움직임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단지 손가락 손톱부분이 절단기 앞에서 납짝하게 눌려서 그 부분의 뼈가 으스려진 것으로 생각되었다. 접수를 끝내자 직원이 대기실에서 기다려라고 하였다. 의사를 볼 차례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사고 시간은 월요일 오전 10시 반경, 병원 접수시간은 12시였다. 그때부터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아픔과 실수했다는 스스로의 차책으로 6시간이라는 시간은 대충 지나갔다. 그때부터는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다시 6시간이 지나갔다. 밤 자정의 소리가 울렸다. 12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렸는 것이다. 그 긴 시간 병원접수실에서 한마디의 말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으로 무조건 들어갔다.
"혹시 무엇인가 잘못 되었나요? 나 12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내 서류가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맞나요?"
접수직원은 퉁명스럽게 컴퓨터를 보면서 말했다.
"아무 이상은 없고 급한 환자때문에 많이 바쁘다."
나는 다시 덧 붙였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가 있나요? 아침에는 만날수가 있나요?"
그러자 대답이 바로 왔다.
"나도 모릅니다. 바로 될지, 아니면 그 만큼 더 기다려야 할지"
기가 찼다. 나는 내 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때 12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들은 안면있는 옆사람이 나에게 한가지 귀띰을 해 주었다.
"북쪽 몰안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크리닉이 있는 데, 매일 7시반에서 오후 1시반까지 운영이 된다네. 내일 새벽에 일찍 가면, 제일 앞쪽에 줄을 설 수가 있다네. 차례가 되면 의사를 볼 수가 있고, 그 처방으로 이 병원에서 X-Ray를 바로 찍을 수가 있어."
나는 즉시 병원을 떠났다. 집에 도착하여 잠깐 눈을 붙인후 새벽에 그곳에 갔다. 7시에 도착하였는데 이미 20여명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7시반에 크리닉은 문을 열었고 줄을 선 순서대로 접수를 받았다. 손으로 직접 대기란에 내 이름을 적으니 내 순서를 알 수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순서는 23번째, 커피 한잔 사 먹으면서 어스렁거리니 내 차례가 왔다.
의사로부터 X-Ray 요청서를 받아 쥔 시간이 아침 10시, 그것을 갖고 어제 12시간 기다렸던 그 병원의 Radio센타에 접수하였다. 6장의 X-Ray를 끝내고 병원을 나서는 시간은 12시, 점심을 대충먹고 학교로 갔는 데 그때가 오후 3시였다. 수업은 받아야 했고 그리고 병원 결과를 주임교수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이틀동안, 내 손가락이 받은 처치는 병원 접수대에서 감아준 작고 햐얀 붕대 하나였다. 속에서 울화통이 터졌다.
그동안 캐나다 생활에서 우리 가족들이 받은 병원신세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민 초창기에 스트레스 때문이었나, 아내는 바이러스에 제대로 걸려 들었다. 병원으로 갔는 데 의사가 아내를 보더니 겁이 들컥 났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바로 입원조치 되었다. 아내는 음식도 제공받고 목욕도 받아 가면서 편안하게 귀빈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 받았다. 작은 애는 스케이트선수였다. 경기도중 넘어져 발목을 다쳤다. 접수 12시간 만에 X-Ray 촬영을 받고 그 결과 발목에 Casting을 받았다. 큰 애는 학창시절 축구메니어였다. 대학 축구팀에서 축구하다 상대팀 태클에 턱뼈가 나갔다. 접수 10시간만에 턱뼈 X-Ray를 찍고 그 다음날 전문의사의 도움으로 턱을 고정하는 처치를 받을 수가 있었다.
모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잘 처리가 되었다. 나는 군대생활에서 야전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병원상식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이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이런 것이었다. 아프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리고 2-3일 정도 있어도 병세가 악화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혹은 2-3일 두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라면 병원 응급실로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천천히 크리닉부터 방문하고 필요하면 그때 의사처방으로 오라는 것이다.
내 경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병원에서 한 것은 X-Ray 촬영 후 손톱부분의 뼈가 조각났고, 4주가 지나면 낫는다는 의사의 말, 그리고 손가락 고정이라는 처치가 아닌 일회용 밴드하나 붙여준 것이 다 였다. 결과적인 생각이지만 병원 응급실에서는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여기까지 와, 이런 것이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이것을 보면, 내가 12시간이나 응급실에서 기다린 것은 캐나다 의료스템으로 보면 무지로 인한 우둔한 행위였다.
비싸면 좋다. 싸면 비지떡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고 환영 받으면서 즉시 조치 받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다. 있다면 그 속에 반드시 상술이 있다. 반대로, 캐나다의 의료는 국가 공공 무료시스템이다. 그래서 예약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공짜는 항상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원칙과 신용이 있다면 견딜만 하다.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분명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친절하게 설명하거나 대안을 제시해 주고 혹은 확인시켜 주면 줗을려만, 아마도 공짜여서 그렇겠지. 그래도 많이 불편하지만 의료의 원칙과 신용 문제에서는 캐나다가 한국보다는 훨신 낫지 않겠는가 한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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