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s quick drawing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Drawing 교수인 Adam을 처음 만난 때는 미술디자인칼리지에 입학하고 부터이다. 대학 1학년 과정 중 필수과목인 Drawing과목이 있었다. Drawing은 실기수업이었는 데 첫수업에서는 나는 많이 긴장하였다. 영어도 엉망이었고 예전의 전공과 관련이 없는 과정이라 특히 더 그랬다. 또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더구나 누추한 차림의 나이 지긋한 내가 스스로 기가 죽은 때문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입이나 지시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장황하게 늘어놓는 식의 설명이나 토론식이다 보니 나로서는 교수가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감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더우기 미술용어는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더욱 더 알송달송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 얼굴이 동안이고 몸매가 호리호리 하면서 머리를 기르다 보니 그들 눈에는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 교육은 교과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우기 교수가 교단에서 강의하는 식은 더 더욱 아니었다. 교수와 학생은 수평적 관계이고 자주 서로간 토론으로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미술에서 표현하는 방법으로서는 특별히 왕도가 없지 않는가. 우리나라는 입학전 학원이라는 곳에서 표준적으로 많이 배운다. 그와 다르게 여기 학생들은 각자 미술이 좋아서 자기식으로 공부하고 연습한 것이 전부다. 또한 학생들은 좋아하는 스타일도 분야도 각자 다 다르다. 즉 자기가 의도한 것을 제대로 표현만 하면 되지 방법이나 형식 그리고 스타일은 무관하다. 교수들도 그것을 존중한다. 수업 진행도 매우 자유롭다. 수업 중 가는 사람도 있고 수업 중간에 오는 학생도 있다. 심지어 결석하는 학생도 종종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실은 교수가 가르치는 것들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기는 쉽지는 않아 보였다.
여기가 이러하든 나로서는 시간을 잘 지키고 교수님을 존중하며 배운대로 잘 하니 그에게는 기특하게 보였는 모양이었다. 더우기 과거 빌딩설계경력 득분에 강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더라도 눈치와 손치로 수업을 따라 갈 수가 있었다. 수업후 집에 돌아와서는 연습도 꾸준히 하였다. 다행이 점점 미술 실력이 쭉쭉 늘었다. 혹시나 애들 앞에서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나 하고 항상 긴장했는 것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에게 항상 점수를 후하게 주고 자주 칭찬을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 스스로 많이 고무가 되었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 시절 학교를 다니고, 애들을 키우고, 그리고 가정생활도 직접하면서 주말에는 일을 나가야만 했다. 또한 바쁜 생활과 이민생활의 스럼프 등이 합쳐져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Drawing은 내 어려운 시간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그 와중에 그의 관심과 칭찬은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를 지길 수 있도록 한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
그는 매우 젊다. 팔 그리고 몸에는 문신도 많다. 항상 청바지와 티를 입고 다닌다. 머리는 꼭 자다 막 나온 사람 같다. 한국 분에게 저 분이 내 학교 교수야 하니, "에이!"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는 그런 자유분망한 영혼과 그 속에 숨어 있는 그의 실력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내가 Drawing을 좋아 할 수 있도록 한, 그래서 이민생활에서 삶의 큰 재미를 맛 볼 수 있도록 한 그 장본인이 아니던가. Andrew
'NBCCD 생활 2013-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려야 하는 캐나다 병원 (0) | 2014.03.30 |
---|---|
찡 하였던 나의 크리스마스 파티 (0) | 2013.12.24 |
영화 Baraka 를 보고 (0) | 2013.11.02 |
상쾌한 아침을 선사합니다 (0) | 2013.11.02 |
분홍색을 좋아합니다 (0) | 2013.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