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을 하다보면 그야말로 안 가보는 데가 없다. 주고객이 자가용이 없는 일반 서민이지만 본의 아니게 자기 차를 운행할 수가 없는 사람들도 많이 생긴다. 업무상 혹은 물건을 배달할 때, 공항 혹은 파티장에 갈때, 차를 가지러 갈 때 혹은 한방향으로만 이동할 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혹은 날씨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때 혹은 손님을 모실 때 등등 그 이유는 많고 다양하다. 또한 여기사람들은 집에 여러대의 차를 두고도 편리성 때문에도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이때마다 기사는 손님들을 데려다 주면서 혹은 물건을 배달하면서, 그들이 사는 곳과 일터 혹은 머무는 곳을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있다. 나는 이때 그들의 삶의 일부분을 읽고 느낀다.
처음에는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철이 좀 들었나 그 와중에 담장넘어 그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그 사이로 사람들의 인생도 보이기 시작했다. 일이 좀 수월해지자 이제 그들의 삶을 작으나마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보지도 느끼도 못했으리라. 아마도 이민생활이 순조로워서 인생의 한 귀뚱이에서 대충 살던가 혹은 근사하게 잘 살았더라면 역시 그러했으리라.
이제는 그들의 삶이 신기하다를 넘어 우리 인생의 다양한 한부분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나름대로 느끼는 바도 많아진다. 그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힘든 일을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는 나만의 조그만한 기쁨도 되곤 한다. 사람 사는 것이 어디든 다 비슷비슷하지 머, 별것이 있는가, 그러나 내 나름대로 살펴보고 느껴보니 그속에서 우리와 다르면서 유별나게 특별한 것들을 많이 발견하는 데, 그 중 하나가 항상 나를 의문의 방속에 가두어 버린다.
여기의 일반적인 주거는 땅바닥에 근거를 두는 주택형태이다. 즉 마당을 가지는 1-2층의 단독주거형태이다. 도심으로 가까워질수록 마당은 작아지고 멀어질수록 넓어진다. 도심의 마당크기는 보통 700-1000M2 내외이라고 하면 외곽의 마당크기는 그 2-3배로 커지지만 그 이상이 되는 집들도 흔히 볼 수가 있다. 시각적으로 본다면, 도심의 주택은 주택에 부수적으로 나무들이 있는 데 반하여 외곽은 산림이 주이고 주택은 그것에 약간 붙어 있다라고 표현할 수가 있다. 즉 도로를 따라 달리면 도심가까이는 나무사이로 주택이 확연히 보이는 데 외곽의 주택은 산림에 파뭏혀 보이지를 않고 드라이브웨이를 좀 지나야 그때서야 보인다.
나는 여기서 택시 운전을 한참을 할 때도 "여기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그렇게 사는구나!"하고 별 생각없이 넘겼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 보고 겪다 보니 이러한 주거환경이 그들의 주거형태의 일부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히 보고 따지고 보니, 외곽의 숲속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도시 전체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땅면적으로만 따지면 외곽 주택지는 도시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대부분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데 아마도 차로 30분에서 50분이 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 하이웨이로 연결이 된다고 보면 그 거리는 상당하다고 볼 수가 있다. 도시 전체의 지도를 보면 거미줄같이 도로옆에 주거단지가 표시되지만, 아마도 공중에서 보면 도로가 희미한 선으로만 보일뿐 주택은 보이지 않는다. 차로 달려 보아도 여기가 주택지인가 의아스러울 정도로 산림만 보인다.
아마 그래서 그들은 Ram 같은 트럭과 함께 여러 종류의 차량을 소유하는 것 같았다. 그러하더라도 평소에는, 뿐만 아니라 특히 겨울철에는 도심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것 혹은 시내에 물건 사려가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작은 일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자. 애들은 어떨까? 물론 여기는 도로가 있는 곳이라면 학교차가 학생들을 싣고 나르지만, 일단 그들도 한번 집에 오면 밖에 나가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한번 나가자면 반드시 부모가 운전하여 그들을 멀리 실어 날라야 하고, 그들을 다시 태우고 되돌아 오는 것도 역시 부모의 몫이다. 내가 보기에는 옆집에 가는 것도 쉽지가 않아 보였다.
개인생활이 철저히 유지가 되는 여기 생활이라면, 인적교류는 특정시간과 사람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외곽주택지는 지리적으로 도심과 떨어져 있고 또한 자연속에 파뭏혀 있는 관계로 인적교류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대부분의 주택들도 좀 인적교류가 편하다는 면이 있을 뿐, 철저한 가족중심생활이라는 정서는 변함이 없다. 즉 도심지의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도 개인적이고 가족위주의 생활을 하고 있는 데 하물며 외곽 숲속의 주택지에 사는 사람들은 지리적 여건때문에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곳의 성장기 자녀들에게 학교는 오후 4시면 파한다. 그리고 적어도 5시가 되면 학교차가 그들을 먼 집까지 데려다 준다. 그때부터 그들은 집에 머물게 된다. 그 뿐인가?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길고 긴 방학동안 또 집에 머물게 된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여름에는 캠핑카로 멀리 여행을 떠나나 그때도 부모와 함께 지내고 놀게 되니 평소생활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어릴 때 집에서 생활하고 부모만 보고 자라는 시간이 많고 외부 접촉이 적다면, 아마도 그들은 부모의 영향을 대부분 받고 성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녀의 생활은 어떠할까? 우리의 주거형태는 집합적으로 모여 있는 표준화된 아파트가 보편적이다. 어찌보면 주거형태라는 것이 크기만 다를 뿐 비슷비슷하다. 또한 그러한 아파트라는 특성상 쉽게 이웃을 보고 접할 수가 있다. 또한 애들은 집이라는 것은 머물고 노는 공간이라고 하기 보다 자고 먹는 공간이다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족들은 외부공간 그리고 외부사람들과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겨우 잘 시간이나 먹을 시간이 되면 그때 집으로 온다. 외부공간과 외부사람들과 함께 하며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모와 함께하고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다. 이것은 우리의 자녀의 성장시기는 부모의 영역이 아닌 외부의 영역으로부터 더 많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성장한 후 어른이 되어도 이러한 환경이 계속된다. 이것은 삼림속에서 마치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오직 가족과 함께 가정 내부에서 보고 듣고 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여기 그들의 성장기 시절과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각각에서 성장기 환경이 확연히 다름으로 해서 아마도 애들의 성향도 확연히 달라질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해 보고는 갑자기 나는 심각해지곤한다. 사람은 선천적 조건과 형태 등과 같은 기본적 육체적인 조건은 타고 나지만 심성과 성격, 성향과 같은 사람의 인성은 성장기에서 다듬어진다. 그래서 성장기의 외부환경이 매우 중요다. 여기 캐나의 자녀 성장기의 환경을 보면, 당연히 "그 부모에 그 자식"이 나올거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외부영역에 노출이 많은 우리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육체적인 조건은 당연히 타고 나지만 성장기에 다듬어지는 인성은 부모의 환경 뿐만아니라 외부환경에도 많이 영향을 받지 않겠는가 여겨진다.
이러한 주거환경이 세상의 기본과 생각 그리고 문화의 틀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해 보면,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주의 수도인 이 도시가 캐나다에서 표본적인 도시이고 보면, 여기의 주거환경은 캐나다의 보편적인 환경이다고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러한 환경적인 측면이 확연히 다름으로 해서 우리 자녀의 인성은 그들과 확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오늘도 공항에서 외곽주택단로 손님 한분을 모셨다. 보통 외곽의 주택단지는 Charles Settlement와 같이 단지 고유이름과 더불어Village, Settlement로 불린다. 얼마나 이리저리 들어가는 지 그곳에서 손님을 내려주고 되돌아가는 길이 맞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숲속길을 따라 주거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어서 내눈에는 마치 외딴집으로 보였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 나는 외로워서 못 살 것 같다" 는 생각이 매번 불쑥불숙 나왔다.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외로운 것도 있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은 숲밖에 없어 눈도 외롭다는 것이다. 일년내내 내 집과 내 가족 그리고 숲만 보면 눈과 마음이 매우 단순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번은 손님에게 "도시에서 먼 이 숲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살아요?"하고 물어 보았다.
그분 대답은 "조용하고 매우 좋다"였다.
이러한 생각과 느낌은 매번 올 때마다 생기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러한 생각은 주변 환경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시적 느낌이다 라고 나는 치부하였다. 그러나 가볼 때마다 그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은 나의 감수성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그 환경이 너무 독특하고 너무 광범위하였다. 아마도 직접 여러번 보고 겪어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이 옛말에서 성장기의 환경이 사람의 인성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여기 사회의 가족중심의 주거환경과 사회시스템을 보면, 여기사람들은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과연 그렇다면, 어쩌면 여기가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외부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우리 자녀들은 "그 부모에 그 자식" 보다 "그 사회에 그 사람"이라는 말에 더 가까울 수가 있다. 과연 그렇다면, 다른 측면에서 어쩌면 우리도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가면서 왠지 그러한 우려섞인 기분이 또 든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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