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내내 몇십년만의 강추위와 함께 많은 눈이 내렸다. 그 독한 겨울날씨의 맹위는 여전하는가 싶더니 어찌된 일인지 해가 바뀌자마자 그렇게 춥던 날씨도 한풀 꺽였다. 1월의 첫주말에 포근한 날씨와 함께 많은 비가 솟아졌다. 겨울비는 지붕과 마당 그리고 도로에 쌓여진 눈을 녹이면서 낮은 곳을 흐르더니 갈 곳을 몰라 마당과 도로 곳곳에 고이기 시작하였다. 배수구는 이미 눈과 얼음으로 막힌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겨울비는 단 하루동안 내리고 저녁이 되어 다시 강추위로 변해 버렸다. 겨울비가 내리려면 눈을 완전히 녹이는 봄비처럼 며칠동안 내릴 것이지...
눈물과 빗물은 갈 곳을 헤메다 도로와 인도 그리고 마당에 퍼져 자빠지고 찬 밤기온에 다시 껑껑 얼어 붙어 버렸다. 사람들과 자동차는 미끄러운 빙판위를 아슬아슬하게 다녔다. 소금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이제는 모래와 흙가루가 이 도시에 무자비하게 뿌려지기 시작했다.
폭설도, 초강추위도, 또한 얼음비도 양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항상 평일을 피하고 대부분 주말에 그들은 이 도시를 찾아 왔다. 이번 주말에 또 얼음비가 찾아왔다. 생각 이상으로 얼음비의 위력은 대단했다. 나에게는 차라리 무서웠다.
아침 8시, 기온은 영하 14도였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천지를 얼음바닥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행이 기온이 조금씩 올라갔다. 이 경우 초목이며 지붕위에는 그 재료의 특성상 얼음이 맺히지 않았다. 그러나 찬기온을 머금은 콘크리트 바닥과 도로바닥 그리고 쇠덩이에는 맨질맨질한 얼음의 층이 생기더니 정오를 지나자 그 두께가 5cm는 족히 넘었다.
오후 3시가 되자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가고 오후 5시정도에는 영상 5도까지 따뜻해 졌다. 이때부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리는 비가 도로위 얼음바닥에 얼어 않고 빙판위로 맴돌았다. 빗물은 빙판위를 아주 맨질맨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검은 밤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스케이트장에 잘 미끄러질 수 있도록 물을 뿌리는 것과 같았다.
빙판위에 사람이 서기는 어려웠다.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 경사가 있는 곳은 그 누구도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경사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이제 눈설매장이 아니라 한번 내려가만 다시는 못 올라오는 얼음 설매장이 되어 버렸다. 다행이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빙판위에 사람도 설 수가 없는 데 차는 오죽하겠는가. 사람들은 다 집에만 머물렸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주도로는 항상 차량통행이 있어 도로바닥은 마치 기차레일을 깔아 놓은 듯 차바뀌 두선이 생겼다. 가야 하는 사람들은 그 두선을 따라 가면면 그나마 달릴 수가 있었다. 나도 그 두선을 따라 부단히 달렸다. 그러나 나는 이면도로도 가야하고 경사지 아파트 단지도 가야만 했다. 설마 괜찮겠지하고 들어섰다. 차량이 한산한 도로는 차바퀴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잘 관리된 물뿌려 놓은 스케이트장처럼 보였다. 그래도 자동차가 사람보다 나았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네발이 있으니 쓰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사가 있는 곳은 속수 무책이었다. 가다가 정지하거나 브레이크를 걸면 차는 저절로 스스로 움직이고 결국 몇바뀌 돌면서 눈구덩이에 처박히곤 하였다.
오늘과 같은 기상이변이 생기면 차량속도가 많이 느려진다. 기상이변으로 승객은 많이 줄지만 그만큼 한건의 승객을 운반하는 시간도 많이 늘어난다. 심지어 택시도 가다가 처박히거나 운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그 대신 살아서 운행하고 있는 택시들은 점점 바빠진다.
오후 5시가 지나고 6시가 다가왔다. 조금만 있으면 집에 갈 시간이다. 그런데 수퍼스토아에 가라는 콜이 왔다. 스토아 정문앞에서 젏은 분 한 분이 태웠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 이유를 옆좌석에 있는 승객에게 물으니 수퍼스토아 전기가 다 나갔다고 하였다. 아마도 얼음비 때문이었으리라.
그분의 행선지는 시 외곽에 있는 큰 주택단지였다. 별 생각없이 간선도로를 한참 타고 나서 그분이 사는 주택 단지에 들어 섰다. 입구 도로는 다행이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모래가 뿌려져 있었다. 그런가 하고 단지의 중심부분 가까이 들어서니 그때부터는 도로는 물을 뿌려놓은 스케이트장이었다. 승객에게 정확한 행선지를 물으니 단지 끝부분이라고 하였다. 이미 들어 선 차가 아니던가 계속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집중시키고 몸의 평형을 감지해 가면서 가능한 천천히 달려 나갔다. 그런데 도로 오른편에 웅덩이가 보였다. 겁을 먹고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는 데 결국 내차는 반바뀌 돌면서 왼편 도로 옆 눈덩이에 처박히고 말았다.
손님을 먼저 보내고 사무실에 차가 눈구덩이에 빠졌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것은 좀 구해 달라는 뜻이었으나 그들이 나를 구하려 여기에 올 수가 있을까 그 자체가 궁금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견인차도 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둘려보니 구석구석 차가 멈쳐 있었다. 동료 택시의 사고도 있다보면 사무실에서 나를 구하러 온다는 것은 오늘밤에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차가 내차인가, 차를 그대로 방치하고 몸만 가면 될 일이지만 내가 사는 도심까지의 거리는 차량으로 30분 거리이고 더구나 빙판에 비까지 오는 데 그곳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컴컴한 주택단지 깊숙한 곳에 겨울비는 내리고 바닥은 빙판이다. 춥고 배는 고파 올 곳이다. 언제 되돌아 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시동을 걸어 놓고 밤새지 하고 마음을 다독이고 다독여도 내 머리칼은 쭈빗쭈빗하였다. 이 차가 내 차야 부셔지면 그만이지 (사실 빙판위에서 가속하면 미션이 파열된다)하고는 별짓을 다 해 보았다. 학교 물리시간에 배운 작용과 반작용, 마찰력, 중력, 중심이동, 회전력, 별의별 잔머리를 다 돌렸다. 한시간을 밀고 당기도 하면서 근근히 그 단지를 용케도 빠져 나갔다.
그 단지를 벗어나면서 나는 더 이상 차를 몰 힘이 없어 그동안 사건을 설명하고는 바로 집에 가야겠다고 하였다. 사무실에서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그것에 대하여는 일절 언급없이 태연하게 다음 콜을 전했다. 속은 부굴부굴 끓어 오는데, 그러나 어쩌라 사무실에도 곳곳에서 손님의 전화로 시달리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손님을 태우고 시내에 들어섰다. 도시는 이제 완전히 컴컴하였다. 도로는 한산하였고 도로위의 빙판만이 조명등에 검은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시간에 귀가하는 것은 틀렸다 싶어 마음을 접고는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달렸다. 그것이 마음적으로 편했다.
그런데 천천히 달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내 눈앞 도로바닥에서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감짝 놀라 눈을 비비며 자세히 살펴보니 앞차가 달리면서 도로바닥에 생긴 두줄의 바뀌자국따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지를 않는가. 나도 그 자국을 따라 달리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그냥 놀랐다. 그 사람들을 급히 피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어둠을 뚫고 다시 바뀌자국을 따라 달리는 있는 데 또 어둠속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속력을 완전히 줄이고 보면 사람들이 바로 전과 같이 자동차 바퀴 두줄을 따라서 걷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만약 내가 사람을 보지 못 했다면..." 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보통 갑자기 눈이 많이 오면 사람들은 인도로 걷지 않고 차도로 나온다. 그것은 눈쌓인 도로위에 생기는 차량바퀴의 자국따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니 지금도 이와 같은 상황이었다. 인도는 물뿌려 놓은 스케이트장이다. 서 있기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량의 계속된 주행으로 도로위 얼음에는 바뀌자국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 자국 틈새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두어번 콜을 처리하니 집으로 가라고 하였다. 시간은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접으니 그 시간이라는 것이 더 빨리 갔다. 오늘은 기상이변속에서 무척이나 힘이 들고 아슬아슬했지만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기억을 더덤어 보면, 오늘은 한마디로 물뿌러 놓은 넓고 한산한 스케이트장에 스케이트 신발이 아닌 자동차를 싣고 달렸다고 하면 맞다. 이것은 정말로 아슬아슬했고 짜릿했으나 너무나 위험은 일이었다. 알고는 못하는 것이었다.
눈 올 때 운전하는 것은 마치 눈위에 스키타는 것과 같아 천천히 달리면 그리 위험하지 않았다. 승객을 태우고 순백의 눈위에서 즐긴다하고 생각하면 할 만했다. 그러나 비오는 빙판위에서 달리는 것은 무모해 보였다. 그것보다도 밤에 도로에서 갑자기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무척이나 나를 당황케하였다. 그러나 이 와중에 내 편하자고 무작정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처박힌 차를 빼낼 노력도 아니하고 운행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엄살을 부릴 수는 더더욱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상이변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 얼음비가 내리는 데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관리당국, 도로에 걸어가는 사람, 무작정 일을 시키는 택시회사, 택시가 아니 온다고 전화로 성화를 하는 손님,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기사양반, 모두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음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울화통 터진다고 성질 부려봐야 내 마음만 더 조급해진다. 그냥 그러니 하던가 혹은 그래도 내일의 태양은 떠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리고 서로의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뿐만아니라 오늘부터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를 들어니 그 힘든일도 다 잊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겨울은 얼마나 춥고 눈은 얼마나 많이 왔던가. 오늘 이렇게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내일부터 좋은 날씨가 계속될려고 하기 때문이리라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풀어졌다. 참 오늘 재미는 있었네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것은 오늘 별스러운 세상구경 다 했다는 생각 같은 것이었다. 조그만한 희망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만약 다시 강추위가 시작된다고 하였더라면 집으로 돌아가는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이었다. 영상의 기온속에 밤새 내린 비로 도로는 본래 얼굴인 검은 색을 완전히 들어 냈다. 어제는 언제 그랬냐 싶게 도로위의 얼음과 눈은 깨끗이 사라졌다. 도시는 많이 깨끗해 졌다. 오래동안 내린 많은 눈은 녹아 빗물과 함께 큰 물줄기가 되고 다시 강으로 흘려 들어갔다. 아마도 강수위는 급격히 오를 것이다. 봄날의 홍수경험때문인가 이제는 저지대의 겨울 강범람이 걱정이 된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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