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7 서해 바다에서 하루의 일탈
나이가 65를 넘으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이런 모든 것들에 흥미가 없어진다. 당연 사람과 만남의 횟수도 줄어든다.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은 은퇴 이후에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견디지 못하고 다시 직장을 잡는다. 취업 대신 자식 일을 돕기도 한다. 무엇에 나 자신을 강제로 가두어 두어야만 견딜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세대다.
경주에 살 때 집 근처 ‘색소폰 부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도 한 번 배울 수 있으려나? 집 내부는 어떤가? 궁금해서였다. 방음시설이 된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었고, 입구에는 원장이라는 사람이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신세타령을 했다. 65세에 은퇴하고 1년 놀다 보니 견딜 수 없어 색소폰을 불렀지. 그것도 시들해지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운전한다고 하였다.
연금으로 넉넉한 돈이 매달 생기고, 가지고 있는 현금과 부동산도 많다고 했다. 무엇이 70 나이에 2억 이상 현금으로 개인택시를 구입하여 다시 돈벌이에 나섰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이 구속되어야만 견딜 수 있는 지금의 우리 은퇴 세대기 때문이다. 즉 혼자서도 부부 함께라도 놀 줄 모르는 세대이고 돈 쓸 줄도 모르는 세대다.
동사무소에서 가끔 노인회를 위한 잔치가 열리는 경우가 자주 있다. 경로당에서도 잔치는 자주 있다. 그때 상 위에 소주병이 올라오는 것은 매우 흔하다. 노인네에게 한잔 권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물론 공짜 술이기도 하여서 노인네가 한 잔을 걸치지만 ‘별 일인가?’, ‘있는 술 한 잔하지 뭐!’ 하는 생각에 노인들이 한 잔을 걸친다. 이렇게 술 취한 몸으로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노인네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눈에는 초점이 흐리다. 세상을 놓은 모습이다. 가는 세월 잠깐 망각의 시간이면 어떠리. 이런 생각으로 한 잔 했으리라. 나도 간혹 그런 생각에 젖었으니 말이다.
나는 젊었을 때는 자주 술을 마셨다. 이제 60 중반이 되고 보니, 한 잔하면 꼭 그 다음 날 후회한다. 몸이 찌뿌듯하고, 마음은 시구창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술을 안 마신다. 당연 모임도 없어지고 친구 만남도 없어진다.
더구나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평생 타지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규칙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없는 것이다. 술자리를 피하니 더욱 그렇다. 나이 들어 이제 사귀는 친구는 그냥 아는 사이다.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상대는 아니다. 내 성격이 내성적이고 수동적이어서 더 그렇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하니 친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내 생각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는, 집 근처 사는 친구 하나가 있다. 그는 내가 매우 편하다고 했다. 나도 그를 만나면 편하다. 서로 ‘아닌 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청소차를 운전할 때 음주운전 사고로 면허증을 반납해야 했고 그때 몇 천 만원 손해를 보았다. 그래서 큰 빚을 졌다. 그 후 일일 인부로 살다가 몇 년 전 경비직에 취직하여 지금까지 건설사업장 경비 일을 하고 있다. 매우 편하고 보수도 좋다고 한다.
그때 나는 그를 데리고 소송서류를 만들어 주고 국민연금 공단에 데리고 가서 국민연금 추납을 하도록 하였다. 만날 때마다 덕분에 매달 50만원 국민연금을 받아 좋다고 하였다. 지금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나에게 술술 이야기 한다. 어제는 마누라 하고 싸웠다고, 혼자 살고 싶다고, 마누라가 나를 기피하니 미치겠다고, 미워 죽겠다고. 그의 아내는 단체 급식 장에서 조리사로 일한다. 60 중반에 무슨 부부사이에 애틋한 사랑이 있다고, 같이 살고 있으니 부부인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다독인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백배 낫다고 하면서. 그때 ‘그렇지, 맞아.’ 하면서 그는 마음을 푼다. 가진 재산 없어도 부부 모두 벌고, 또 기초연금을 받고 사니 풍족하다. 그런데 돈은 항상 모자란다고 한다. 마누라도 자동차가 있고, 친구도 자동차가 있다. 그때그때 먹고 구입하고 쓰면서 사는 듯했다. 저소득층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산다. 요즈음 세상에서 모으고 애쓰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이렇게 소비하면서 사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한 번 그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는 거실에서 자고 TV를 보았다. 즉 거실은 친구 차지이고 안방은 부인 차지였다. 며칠 후 친구와 만날 때였다. 보게나. 강형이 매일 거실에 떡 버티고 있으면 마누라가 매우 불편할 거야. 작은 방에서 자고 TV나 마누라 볼 때만 거실로 나오면 마누라가 편하지. 우선 강형이 양보를 해 보게나. 그렇게 시위하듯 이불을 펼치고 거실에서 지내면 여자는 자꾸 짜증만 내지. 나라도 매우 짜증날 것 같아. 그는 ‘그렇게 하겠노라’ 라고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거실에서 지낸다. 정말로 마누라가 보기 싫다고 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 이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밥 먹으면서 술도 간단히 하자고. 나 술 안 마셔 하니, 둘이서 그냥 밥만 먹어. 에이 늙은이 둘이서 밥만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 그리고는 그는 다음에 만나자고 하면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자 둘이서 그냥 밥만 먹고, 혹은 둘이서 차 한 잔 하고. 밋밋하겠다. 그러네. 밋밋하지.
며칠 후 다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형, 우리 서해 바닷가로 놀려가자, 내 비번 일에. 내가 둘이서? 라고 하니,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아니 여자 둘 하고, 정형은 그냥 오기만 하면 돼. 내가 맞추어 놓았어.
가만 생각해 보니 굳이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달 내내 있어 봐야 특별한 외출도 없다. 누구 만났던 기억도 없다. 사람이 그립기도 하고, 시국도 똥통이고 싸움질만 하고. 내가 개판으로 놀아도 그들보다 낫다. 놀지 뭐! 그래 알았어, 하루 비워 놓을게.
2024년 12월 30일 아침이었다. 친구와 함께 자동차로 대전 유성에 도착하니 여성 두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 또래인가? 본래 여자는 남자보다 더 나이 먹어 보이나? 나도 어쩔 수 없나?. 남자는 다 젊은 것을 좋아하나? 어쨌든 간단히 인사하고 바로 우리는 서해로 향했다.
당진을 거쳐 서해안 삼길포항에 도착했다. 나는 서해안 여러 곳을 다녀보았지만 여기는 처음이었다. 자동차를 항구 주차장에 세우자 여자가 우리를 인도했다. 가는 곳은 여러 작은 배가 정박하고 있는 선착장이었다. 그 배 안에서 손님들은 생선을 정하면 주인이 바로 회로 만들어 주었다. 어판 장에서 하는 경우는 보았어도 배 안에서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경험이었다.
남자는 뒤에서 구경만 하고 여자가 생선을 고르고 회를 주문했다. 회칼을 다루는 주인아주머니의 솜씨는 대단했다. 자연산 우럭 2kg과 간재미(가오리 비슷) 한 마리. 금액은 6만원.
회 뜨는 작업이 끝나고 내가 현금을 내미니 여자는 나를 밖으로 밀쳤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여자가 오늘 다 산다고 했다고 하면서 껄껄 웃었다. 남자 체면이 있다고 굳이 우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자들은 회가 든 봉투를 들고 여자들을 따랐다. 부두로 올라가서 되돌아보니 우리가 들렸던 바다 위 선착장은 매우 이국적이었다. 마치 베트남 해상가옥 같았다.
부두 건너편에 바로 식당이 있었다. 즉 회를 주면 식사를 준비해 주는 곳이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하는 것을 보면 여자는 여기에 여러 번 왔었겠지. 식당에 회를 전달하니 식당 주인이 바로 근사하게 한상을 차려 주었다. 좀 시간이 지나니 큰 쟁반에 우럭 회 담은 큰 쟁반, 간재미 무침 큰 쟁반, 매운탕 한 냄비, 소주, 상추, 양념, 밥, 이렇게 근사하게 한 상이 되었다.
동해 바닷가에서 태어난 나다. 회에 대하여는 전문가다. 자연산 우럭 회 한 조각을 간장이나 양념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입속에 넣어 우물해 보니 어찌나 맛있고 향기로운지. 간재미 무침의 맛은 더 특별했다. 그리고 매운탕 냄비 안에 우럭 대가리를 먼저 집었다. 그 놈의 눈알은 정말로 별미였다.
그냥 이것만 먹을 수 있나. 다 같이 소주잔을 들고 건배. 술이 있고 친구가 있다. 그리고 옆자리에는 여자가 있다. 싱싱한 회 한상에 매운탕이 분위기를 찰지고 기름지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여자들은 분위기를 띄웠다. 운전은 친구가 하고 왔는데 친구는 벌써 여러 잔이다. ‘알았어. 갈 때 내가 운전할게’ 라고 하였더니 친구와 옆지기 여자는 함께 주거나 받거니 하면서 소주 2병을 다 비우는 것이 아닌가?
네 명이 그 엄청난 양의 한 상을 깔끔하게 해치웠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술기운이 돌았다. 7만원, 네가 계산했다. 여자들이 아우성이었다. 오늘은 우리가 대접하기 위해서 온 것인데 하면서 시비를 걸었다. 그래도 식당 비용은 남자가 내야지. 그럼 다음에 사는 것으로 하자고 하고 겨우 넘어갔다. 다음에 또 만나?
한 잔 술을 걸쳤으니 바닷바람을 쐬어야 했다. 우리는 항구 근처에 있는 공원길을 걸었다. 공원길은 산 정상으로 꼬불꼬불 벋었다. 우리는 떠들고, 달리고 걷고, 장난쳤다. 술 때문이었나? 그들은 마치 어린애 같았다. 그들에게는 차가운 겨울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멀리서 점점이 작은 섬들이 보이는 서해안의 바다와 갯벌이 보였다. 혼자 매일 지내다 여럿이 있으니 나도 시간을 잊었다.
정상에서 잠깐 머물다 내려왔다. 바로 옆 산속에는 모텔 네온이 반짝거리며 여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추워서 못 견디면 바로 모텔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고 하면서 한 여자가 떠든다. 한 잔 술에 하는 소리일 게다. 60을 넘은 여자다. 애들 낳고 키우고,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었다. 지금은 얌전한 가정주부는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경향도 잘 안다. 놀 줄도 안다. 몸이 60을 넘겨서 마구 못할 뿐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흔히 보이는 모텔이 보이지만 내 눈에는 이때만큼은 좀 낯설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한 잔 술에 편하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안이 편치 않으면 사람은 밖으로 돈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어도 하루 이렇게 어울려서 바람을 쐬는 것도 살아가는 여유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다. 나이 60 넘으면 남녀 이성의 차이는 좁아진다. 좀 몸과 마음이 보이면 어때. 억지로 가릴 필요는 없다. 남자 넷이 모여 무엇 하라? 남자 넷이서 어울리는 것보다 백배 낫다.
친구에게 물었다. 무엇하는 여자야? 기획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여자들이야. 땅 팔고 하는. 그럼 나에게 땅 파려고 회를 사는 거야. 아니 꼭 그런 것은 아니고. 만나고 놀면서 임자 만나면 소개하기도 하고. 부동산이라 하면 정형은 그들 머리 꼭대기에 있지. 땅 살 일이 있겠나. 여자에게는 핑계가 필요하지. 핑계가 있으면 서로 만나기가 수월하지. 부담도 없고. 땅을 꼭 사야만 하나? 잠깐 빌려 쓸 수도 있지. 좋으면 그때 사도 되지. 이 나이에는 잠깐 빌리는 것이 좋지. 안 그런가?
그리고는 친구가 다가와 속삭였다. 아참, 나하고 같이 여기 배경을 넣어 사진 한 장 찍게나. 왜? 이 사진 와이프에게 전송하면 와이프는 정형을 믿거든. 정형 부동산 일로 단둘이 서해안 땅 답사 왔다고 마누라에게 말해 두었지. 요즈음 마누라가 의심이 많아서.
'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1224 책을 읽고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0) | 2025.01.10 |
---|---|
250110 노래방에서 찾는 내 사랑 내 청춘 (0) | 2025.01.10 |
240112 쾌쾌한 먼지와 섞은 냄새 속에서 (1) | 2024.01.12 |
231005 매일 달리는 거야, 죽을 때까지 (0) | 2023.11.05 |
231022 골굴사 전통무예 대회를 참관하고 (0) | 2023.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