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0 노래방에서 찾는 내 사랑 내 청춘
심심한 차에 저녁에 친구로부터 전화 왔다.
“정형, 뭐해?”
“뭐 하긴? 밥 먹고 TV 보지. 그런데 강형은 오늘 근무하는 날이야?”
“근무 중이지. 경비실은 나 혼자야. 잠자리 피워 놓았지만 그냥 자기가 심심해서.”
“그놈의 직장 좋네.”
친구는 건설사업장의 경비실에서 근무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그 다음날 아침에 퇴근한다. 즉 24시간 근무하며 2교대로 돌아간다. 말이 24시간 근무이지, 저녁 5시부터는 다음날 아침까지는 현장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요즈음 현장은 오후 5시가 되면 올 스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후 5시부터는 땡땡이치는 자유시간이다.
현장은 대전 유흥가인 유성 중앙에 있다. 긴긴 겨울 저녁과 밤 시간, 혼자 경비실에서 그냥 죽치고 있기란 여간 지루하지 않다. 경비실 안에는 음식을 해 먹거나 잠자는 시설이 제대로 다 되어 있다. TV를 보든가 그것도 싫으면 일찍 자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척거리에서 커피숍, 술집, 나이트, 모텔의 네온 빛이 번쩍번쩍 한다.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다. 혼자 소주 한두 잔 기울여 보았지만 이젠 영 내키지 않는다. 나가기만 하면 왠지 좋다. 이런데 TV 보면서 혼자 죽치고 있으려니 번쩍거리는 네온 빛이 야속하기만 하다.
유흥가에는 많은 카페, 음식점, 술집, 나이트클럽이 있다. 외부에서 관광차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도시에 사는 별의 별 사람들이 여기서 소비하고 즐긴다. 그뿐인가. 여러 분야 세일즈 여성들이 고객을 확보하려고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면서 얼굴을 판다.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친구에 또 그 친구로 확대되기에 번쩍거리는 유흥가는 최적의 만남의 장소다. 그래서 마음만 있다면 만남은 쉽다.
만남의 핑계는 많다. 분양 때문에, 보험 때문에, 다단계 판매 때문에, 미용시술 때문에, 건강식품 팔려고, 음식점이나 술집 홍보 차, 나이트 홍보 차, 그냥 심심해서, 혹은 데이트를 위해서 사람들은 만남을 유도한다. 여기에는 오피스텔이나 주상복합아파트도 많아 유동인구도 많다. 이뿐인가. 대학교가 바로 지척에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유성의 밤을 밝힌다.
친구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옷을 입는 편은 아니다. 그냥 중년 남성이다. 경비원 옷차림이 변해 봐야 그 수준이다. 좀 느끼하게 대충 말하는 것이 매력이다.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너, 오늘 나하고 어때?’ 이런 식이다. 여자들은 일단 ‘좋지’ 하고 달려든다. 고객확보 차원이지만 즐기기를 겸한다. 이렇게 일단 한 여자를 알게 되면 친구는 그 여자의 친구에 또 다른 친구를 알게 된다.
이렇게 만나면 그들과 한 끼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은 아주 쉽다. 얼굴 까고 저기 식당에서 저녁이나 하지요 하면, 굳이 사양하는 사모님은 없다. 당연 소주 한잔도 곁들인다. 겪을 만큼 겪은 사모님들이다. 지짐거려도 그런 것 정도로 시비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을 즐긴다. 나이트에 가자면 간다. 놀면서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는 가슴에 바람이 가득한 남자와 여자들이 많다. 너도 나도 제 꾀에 넘어가지만 그들은 그렇게 벌고 즐기면서 먹고 산다. 따지고 보면 좋은 세상이다. 요즈음 돈 좀 있다면 여자 치마폭에 사는 중년 남자가 어디 있으며 남자 기다리며 밥해 주는 중년 여자가 어디 있는가?
친구는 핸드폰으로 많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여러 여자들의 사진이 보였다, 젊었을 때 사진도 보이고 산에서 바닷가에서 폼 잡은 사진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친구와 같이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도 많았다. 이 사진도 저 사진도 모두 아주 사이좋은 부부 한 쌍이었다. 사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 그들에게 하나하나 전화했다. ‘예는 안 받네’ 하면서 다른 번호를 누른다. 스피커폰으로 금방 사냥한 여자 목소리가 흐른다. 둘이 대화는 마치 친구 같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강형이 경비실에서 근무하는 것을 여자들이 알아?”
“그럼 알지. 가끔은 경비실로 찾아오기도 하지.”
“가족이 있는 것도.”
“그럼, 알지.”
세일즈 사모님들은 사람 한번 척보면 안다. 큰 물건을 팔려면, 혹은 사기 치려면 우선적으로 돈 많이 있는 사람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은 한 사람이 다시 다리가 되어 다른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친구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편안하고, 그리고 사람 소개의 연결 다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모르지 부동산 많다고 뻥을 쳤는지도.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적으니 왕성한 나이도 아니다. 마누라는 항상 차갑다. 집에 들어가면 서로 투명인간이 된다. 친구는 만날 아프다고 하고 몸이 안 좋다고도 한다. 그냥 함께 사니 사는 것이다. 각각 벌어야 경제가 잘 돌아가니 남자 체면도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친구의 성격을 잘 아니 대충 이해되었다. 마침 직장에서 남는 것이 시간이다. 집에서 재미가 없으니 다른 곳에 흥미를 찾는 것이다. 그는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이다. 마음 가는 데로 살고자 하고, 흐르는 데로 시간을 보내자고 한다. 그렇게 하다가 혹이여 일이 생길 수 있겠지만, 아마도 친구는 네온이 번쩍이는 매일 긴긴 저녁과 밤 시간에 경비실에서 홀로 죽치고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아는가 하면 그는 나에게 조잘조잘 물어보지 않아도 다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깊은 무엇인가에 일이 생기면 나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있었어?’ 하고 물어 보면, ‘어디 그것이 쉽나?’ 혹은 ‘이 나이에 마음대로 되냐?’ 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한다. 그리고 부동산 많다고 뻥 치면 다 통한다고 했다.
내가 세종에서 경주로 이사를 한 후부터는 강형을 만난 적이 없다. 다시 세종로 돌아와서 친구를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거의 3년만이다. 그가 저녁을 먹자고 하여 동네로 나갔다.
“어디서 먹어?”
“옛날에 갔던 실내포차로 가서 간단히 저녁에 소주 한 잔 해?”
실내포차는 10년 전 고국에 정착하기 위하여 이 동네에 왔을 때 소문을 듣고 자주 갔던 곳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 안 깊숙이 있다. 그래서 찾기도 어렵다. 작은 가게에서 아주머니 혼자 밥과 술을 판다. 그런데 말이다. 이 동네 술꾼이나 근처 아파트 주민 술꾼들은 여기를 잘 안다. 바로 옆 등산로가 있는데 등산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서 여기서 한잔 술을 걸치기도 한다. 입소문으로 조금 조금씩 전해지는 것이다.
간판도 없다. 식당 안은 좁고 지저분하지만 항상 손님이 있다. 주인 혼자 서빙을 하니 급한 사람은 술과 술잔, 그릇과 물, 등등을 손님 스스로 서빙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좀 기다려야 한다. 4명 4팀만 있어도 만원이다. 그때부터는 들어오는 손님은 눈치보고 되돌아간다. 주인아주머니는 50대로 말도 대충하고 목소리는 컬컬하다. 아는 손님에게 대충 반말을 하기도 한다.
양념과 채소는 직접 재배하여 조달한다. 그러니 음식 맛이 좋고 싸다. 또한 동굴 같은 방에서 밥과 함께 소주 한잔을 걸치기에는 매우 좋기 때문에 꾸준히 사람이 온다. 여기서는 대충 큰 소리쳐도 괜찮기도 하다. 그런데 항상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나도 친구 따라 가끔 가지만 금방 친해져서 가끔 농을 한다. “아주마, 전보다 더 젊은데”,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해?” 그녀는 설과 추석이외는 노는 날이 없다고 했다.
“오늘 무얼 먹지?”
“오삼불고기, 어때?” 주인이 권했다.
“오늘 자신 있는 메뉴구만, 좋지”
이동용 가스 불에 오삼불고기 냄비가 차려지고 상추, 된장, 밥, 된장찌개가 연달아 나왔다. 소주병과 잔은 내가 주방으로 가서 가져왔다. 일단 건배하고는 내가 가스 화력을 조절하면서 오삼불고기(오징어, 삼겹살, 채소, 냉이, 고추장)를 조렸다. 물기가 없는 고추장 오삼불고기가 반짝거리며 붉게 빛났다.
정말로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술과 안주였다. 친구와 나는 금방 소주 2병을 비웠다. 마침 손님 주문이 없는 시간이었다. 주인이 내 옆으로 앉았다. 보통 여기서 술과 밥을 먹다보면 주인과 저절로 대화하게 된다. 남자끼리 술만 마시면 재미가 없어 내가 친한 척하면서 농으로 소주 한잔 하라고 권하면, 그녀는 옆에 와서 앉아 소주잔을 받는 척하거나 마시는 척한다. 그녀는 손님이 청하니 응하는 척하는 것이다.
오늘은 한잔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옆으로 와서 한잔을 달란다. 우엥, 이게 무슨 일이야, 그때 병에 술이 말랐다. 여자가 달라면 얼른 홀라당 다 주어야 한다. 그런 눈치야 있지. 어른 내가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속에서 소주 한 병 꺼내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가득 잔을 채웠다. 그런데 ‘진짜 홀짝 다 마시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라고 대 놓고 말은 못하고 다른 농이 나왔다. “어머나! 오늘 왠일이야. 3년 만에 여기 왔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 더 예쁘졌어.”
그때 갑자기 손님이 몰려 들어오면서 주인은 일어섰다. 우리도 일어섰다. 오늘은 소주3병, 오삼불고기, 밥, 된장찌개, 상추, 이렇게 한 상이었다. 5만원 지폐를 주니 플라스틱 통에서 만원 2장을 되돌려 준다. 통속에 보니 현금이 가득했다. 친구가 거든다. 소주 3병만 해도 15,000원이야, 왠일이니?
대단한 여자다. 젊은 시절 폭력을 휘둘려는 남편으로부터 도망 나와 그때부터 여기서 허름하게 술과 밥장사를 했다. 혼자 애들을 키우고, 학교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아직 시어머니를 모신다. 도시 아파트도 하나 구입했다. 아파트뿐인가 여기 땅도 샀다고 했다. 그 땅에 채소를 심어 가게로 가져온다고 한다.
불굴의 여자, 하루도 한시도 노는 날이 없다. 장사 때문이다. 아니 돈을 벌려고 그랬겠지.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이 세월이 흘렸겠지. 나는 격려 차원에서 농을 하였지만, 보통 술 취한 남정네들, 노인네들이 하는 그 농을 다 받고 살았으리라. 돈 많은 나이 먹은 홀 에비 손님 중에는 진심인 경우도 있었겠지. 그때마다 여러 번 흔들렸다고 하였다.
친구와 나는 소주 2병을 마셨으니 아따딸 했다. 그런데 친구는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그냥 집에 가면 되지? 애라 그래 가자. 노래방 가본 지가 몇 년 만인가? 떡 본 김에 굿도 하자.
경주 전원주택에서 살 때였다. 거실에 중고 노래방 기계를 설치했었다. 저녁에 심심할 때 노랫가락을 틀어 놓고 나는 자주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불렸다. 혹시나 하고 창문을 꼭 닫고 말이다. 괜찮을 줄 알았다. 길 건너편에 혼자 사는 아주머니와 차 한 잔 할 때였다. 내 집에서 꿍꿍거리는 저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 하였다.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좋은 뜻인가? 이후에는 저녁이 아닌 늦은 오후에 노래를 불렸다. 저녁 붉은 황혼이 내리는 그때 볼륨을 최고로 하였다.
어린 시절, 학창시절, 직장시절, 모두 통틀어 보아도 나는 노랫가락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불려 본 적도 없었다. 박자가 무엇인지, 멜로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음치, 아주 지독한 음치는 별도로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지 알고는 그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이 공포가 되었다. 내 계엄령 1호는 노래 부르기 금지였다. 그 대신 듣기를 즐겼다.
그런데 전원주택에서 한 곡을 매일 수십 번 듣고 또 듣고, 그리고 매일 따라 하고 또 따라 했다. 될 때까지 하는 반복의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고것도 입이라고 좀 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도 음치다. 그래서 아직도 주로 듣는 편이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관계로 그런 장비를 당근에 모두 싼 가격으로 팔아 버렸다.
그래 가보자? 노래방에서 한번 불려 보자구나. 저녁 8시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방은 한산하다. 술 마시고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 것이다. 친구가 여자를 부를까 물어본다. 여자는 무슨 여자. 술 한 잔 먹고 돈 쓰면서 여자에게 서빙하게. 노래방 1시간에 3만원인데, 1시간 한 여자에게는 4만원이다. 여자가 팁마저 달라면 손이 근질 해진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이제는 그 옛날이 아닐세. 한 시간만 부르고 가세.
주인이 맥주 2캔과 안주를 들고 들어왔다.
“왠 술?” 내가 물으니,
“그냥 노래만 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목도 추겨야지.”
캔을 따서 마시니 목구멍이 시원시원했다. 친구가 한 발, 내가 한 발, 이렇게 교대로 질렸다. 쿵쿵거리고 신이 났다. 한참이나 술김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까지는 잘 나갔다. 그런데 말이야, 이 친구가 분위기를 죽여 버렸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하면서 죽여도 확 죽여 버렸다.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
세상의 모든 거짓말 다해 놓고
행여 나를 찾아 와 있을 너의 그 마음도
다칠까 너의 자리를 난 또 비워둔다
이젠 더 이상 속아선 안 되지
이제 더 이상 믿어선 안 되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다시 한 번만 더 나 너를
다시 한 번만 더 너에게
나를 사랑할 기횔 주어본다
어떤 사랑으로 나의 용서에 답하련지
또 잠시 날 사랑하다 떠날 건지
마치 처음 날 사랑하듯 가슴 뜨겁게 와 있지만
난 왠지 그 사랑이 두려워
오직 나만을 위한 그 약속과 내 곁에서 날 지켜준다는 말
이번만큼은 제발 변치 않길
조항조 노래 : 거짓말
탁자에 맥주가 보였다. 손이 저절로 갔다. 한 모금을 했다. 갑자기 취기가 돌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났다. 내 사랑아, 내 젊음과 내 청춘아, 그런데 다들 어디 갔지?
나는 세상을 믿었지. 난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친구는 ‘거짓말’이라고 부르네. 보니 세상이 다 거짓말투성이야.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던가? 무엇하려 여기까지 왔던가? 아직도 내 몸 원기 차고, 지금도 내 마음 활화산 같다.
내 젊음아, 내 청춘아, 술기운에 큰 소리로 노랫가락에 얹어 불려 보지만, 지나간 세월은 아무 대답이 없구나.
내 사랑아, 내 여인아. 술기운에 큰소리로 목 놓아 불려 보지만, 그때 그 사람은 저 멀리도 있구나.
보이는 것은 내 잔주름과 흰머리, 생각나는 것은 후회와 회한이다. 자꾸만 희미하게 흐려지는 내 눈빛과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흘려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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