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725 내 사랑, 그 아름다운 곡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 나는 그때 보았다. 늦은 오후 석양의 햇빛이 사무실 깊숙이 들어올 때였다. 내 건너편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녀의 옆얼굴 실루엣의 곡선은 이마에서 콧등을 타고 내려와서 볼록한 두 입술을 감싸고 턱 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매혹적인 곡선, 나는 그 곡선미에 반해 버렸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매일매일 그 곡선을 보는 순간마다 느낌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어느 순간이 지나자 그것은 매혹적이라기보다 순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첫눈에 반하는 매혹을 넘어 보아도 계속적으로 느끼는 보편적 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정말 황홀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선이 있다니...
여인에게는 아름다운 선이 여러 곳에 있다. 제일 먼저 여인의 옆얼굴 실루엣의 곡선을 들 수 있다. 여러 타원이 연결된 물 흐르는 듯한 곡선이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곡선이지만 감정이 서려있다. 그 실루엣 곡선을 보면 그 사람만의 독특한 감성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아래로 보면 옆 가슴의 곡선이 있다. 이는 똑 하면 터질 것 같은 처짐의 타원형 곡선이다. 바로 만져보고 싶은 촉감을 자극하는 곡선이다. 살짝 한쪽만 보이는 커턴 속의 곡선이기도 하다.
더 내려가면 옆 힙선의 곡선이 있다. 터질 것만 같은 풍성함의 원형곡선이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곡선이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곡선이다. 이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함부로 볼 수 없는 밀실의 곡선이다.
옆얼굴의 실루엣은 사랑을 부르는 곡선이고, 옆 가슴은 즐거움을 주는 곡선이며, 옆 힙선은 욕망을 일으키는 곡선이다. 그리고 보면 나는 제일 먼저 사랑의 곡선에 내 정신을 잃었다. 그 다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설계사무소에서 건축물을 디자인할 때 나는 항상 아름다운 곡선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 건물에 넣어도 그 디자인은 그 옛날 그때 느꼈던 맛이 안 났다.
네가 못 찾았나? 아니면 내가 못 느꼈나? 내 가까이에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나는 멀리 돌아다니며 찾았다. 강가에서, 산에서, 들에서, 도시에서, 시골에서, 알고 보니 그것은 내 마음 속에 있었다.
곡선이라는 것이 정말 잘 다루어야 그 아름다움이 풍긴다. 잘못 다루면 오히려 추해 보인다. 곡선은 종이에 그리기는 쉬워도 현실에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경제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실용성도 없다.
아직 우리는 곡선을 느낄 여유도 느긋이 맞이할 마음도 없다. 굳이 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디자인하고 다듬고 만들고 세우고 하는 문화가 아니다. 빠르고 효과가 좋은 것만을 찾는다. 그리고 곡선은 은근히 위험하다. 은밀하게 남을 해하기도 하고 크게 감정을 부추기도 하며 큰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오직 곡선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맸다. 신비의 아름다운 곡선이 어울려진 건축물 실루엣... 어느 건축주가 나에게 그런 것을 원했던가? 주문을 해야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짓는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추억의 실루엣 곡선을 찾았다. 세상이 바라지도 않는, 건축주가 원하지도 않는 그 곡선미를 찾아 나는 오랫동안 계속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맸다.
금속공예를 하면 내가 주인이다. 내가 디자인하고 만든다. 고객은 그것 중에 선택할 뿐이다. 공예는 실용품이라기보다 사치품에 가깝다. 곡선은 이런 사치품을 장식한다. 고객도 그들만의 추억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때 느꼈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그래서 고객은 자주 아름다운 곡선에 큰돈을 지불한다. 한마디로 곡선의 아름다움은 고객의 유혹하여 추억을 끄집어내어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런 고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예품을 만들면서 여전히 아직도 그 곡선만을 찾고 있다. 내 한창 젊었을 때 보고 보았던 그 사랑의 곡선을…
오늘 여기 동부 캐나다는 오랜만에 화창했다. 마침 일요일이다. 햇빛은 쨍쨍, 바람은 시원... 여름 태양빛 아래 시원한 바람을 안고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시원했다. 햇빛이 비치는 공원에 서서 보니 갑자기 세상이 이렇게도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사람 감정이 날씨에 따라 이렇게 편차가 클 줄이야. 나이가 들면 더 그렇다.
물놀이장에서 애들이 논다. 물보라가 하늘을 장식한다. 젊은 부부들은 원반던지기를 한다. 원반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난다. 잔디에 앉아 햇빛을 즐기는 가족이 있다. 애를 앉고 있는 여인의 그림자가 보인다. 잔디에 누워 온몸으로 햇빛을 즐기는 여인이 보인다. 수직의 나무와 교차하는 잔디 위의 그녀가 인상적이다.
내 눈에는 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보인다. 정말 매혹적이다. 그런데 내가 보았던 그 실루엣 곡선은 없다. 여기에 없는 것이 아니라 못 본다. 그 옛날 그 곡선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여자의 실루엣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 생각해도 미칠 정도이다. 그래서 오늘도 그 곡선을 찾으려 작업실에서 무엇인가 만들고 있다. 이때만큼은 몰입된다. 아마도 잃어버렸던 그 아름다움을 영영 다시 찾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내 사랑, 그 아름다운 곡선을 찾아 오늘도 작업장에서 일한다.
곡선은 직선과 어울려야 더 매력적이다. 곡선만 서로 만나고 어울리면 잘못하면 매우 추해 보인다. 곡선만 있을 때는 매우 정연한 질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곡선으로 디자인할 경우에는 매우 조심된다. 그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그때 곡선만을 찾는다.
이 작품은 벽에 걸어두고 보는 것으로 나는 “별빛속의 추억(Memories in the Starlight)”이라 불렸다. 나는 매일 별빛이 솟아지는 밤하늘에서 추억의 언어를 찾는다. 추억 속에서 헤맨다. 과거로 돌아가 허우적댄다. 나이가 드니 더 심하다. 과거 속에서만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잘 하면 개성이 되지만 잘못하면 하찮은 고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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