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4 같이 살면서 언제든 혼자가 될 수 있다
6.25사변이 끝났다. 정국이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이때가 애를 많이 낳는 베이비붐 시대였다. 힘든 시절을 보낸 후 안락함이라 할까? 부부도 같은 공간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시절이었지만 태풍이 지나간 후의 조용함 같이 서로 공감대가 깊었던 것이다.
사람은 경제적 풍요와 사회적 자유의 크기에 따라 욕망도 달라진다.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한 방에 부부 자식 다 같이 자는 것이 뭐 대수였나? 요즈음 잘 사는 시절에는 큰 일이다.
1980년대 신혼집이라면 보통 17평 아파트였다. 서울의 17평 아파트라 하면 그 당시 서울의 중산층이다. 전국을 보면 상류층이다. 17평 아파트 구조를 보면 거실 겸 큰 방, 작은 방, 욕실, 그리고 작은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혼부부가 살기에는 정말 그 시절 최고급이었다. 애가 생기면 작은 방에서 애를 키우고 부부는 거실겸 큰 방에서 같이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좁은 공간이었지만 남자는 직장에 나가고 저녁 늦게 집으로 들어 오면 잠만 자고 나가는 시절이었기에 집이란 좁다 크다의 개념보다 얼마나 편리한가 였다. 그래서 좁은 아파트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건이 나아지고 가족 구성원들이 성장하면서 아파트 평수가 커졌고 집 평수도 넓어졌다. 사람들은 17평에서 24평으로 그리고 3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하였다. 이때 30평 아파트라 하더라도 보통 집 안에는 방이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고 욕실은 역시 하나였다.
이때도 아파트 내에는 남자의 공간은 전혀 없었다. 모두 여자의 공간이었다. 그래도 남자는 직장생활로 매우 바빴기 때문에 집안에 남자의 공간이 전혀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가 조금만 배려해 주면 되었고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자가 조금만 참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직장이라는 공간이 있어 쉽게 헤쳐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먹고 일하는 시대였다. 일하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 인간의 욕구는 그저 하나의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하면서 즐기는 시절이다. 그럼에 따라 남자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구나 지금은 은퇴라는 행복한 단어가 유행하는 시절이다.
그런데 삶의 공간은 그대로이다. 영역의 주인도 그대로이다. 아파트와 집의 형태나 역활도 그대로이다. 여전히 노는 장소가 아닌 먹고 자는 집이고 아파트였다. 그런데 이런 한정된 영역에서 새로운 침입자가 생겼다. 남자가 이제 집안에 머물기 시작했다.
서로 영역이 교차된다. 같이 집에서 놀아본 적도 없다. 해보지 않았던 영역다툼이다. 그런데 우리의 부부는 서로 영역이 침법되었을 때 문화와 체면 때문에 고양이 같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막 대놓고 싸울 수 없었다. 늙어서 보니 이제는 단점만 보인다. 이래저래 상한 감정만 쌓여 나갔다.
다행이 지금 아파트는 많이 좋아졌다. 24평 아파트라 하더라도 욕실이 2개이고 거실과 주방이 넓어졌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욕실 하나가 자기 영역이 된 셈이다.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욕실을 따로 사용한다. 이는 아주 작은 것이다.
부부방에는 욕실과 화장대, 그리고 옷방이 있다. 부부 겸용같이 보이지만 이는 여자의 영역이다. 주방이 많이 넓어지고 다용도실이 생겼지만 이 역시 여자의 영역이다. 방 하나 여유가 있다면 이것이 남자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할애되고, 설령 빈 방이 된다 하더라도 창고나 옷장으로 사용된다. 이래저래 남자의 공간은 없다.
요즈음 노동시간이 선진국 수준이다. 주 5일 근무이다. 공휴일도 많아졌다. 늦게 일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땡하고 퇴근하면 오후 5시 아니면 6시이다. 집에 가서 내 시간을 가지거나 애들 혹은 아내와 논다(같이 시간을 보낸다 라고 하는 것이 맞다).
다 좋지만 우리가 퇴근하여 아내와 같이 논다는 말은 좀 습관화 되지 않는 언어이다. 신세대에게는 좀(나는 아주 좀이라 생각한다) 어울리는 말일지 몰라도 우리 세대에서는 자연스러운 습성이 아니다.
요즈음 남자들은 자꾸 전원생활을 꿈꾼다. 특히 은퇴자는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도시로 나가는 서양 노인사회와는 역행되는 현상이다. 아마도 남자들이 자기 영역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핑계가 아닐까 한다. 여자는 반대한다. 나이가 들수록 여자는 사회생활을 즐기고자 도시생활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미 집은 내 영역이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한다.
사랑의 관계도 나이가 들면 시들하다. 그리고 자기 주장은 더 강해지고 영역의 관계는 더 민감해진다. 평생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는데 내 자리는? 평생 밥하고 내조했는데 지금 또?
그런데 체면과 문화, 자식 때문에 대놓고 다툴 수 없다. 장기간 감정이 쌓이면 결국 무늬만 부부가 된다. 감정으로는 너무 불편하지만 그래도 혼자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한국정서이다. 아니 이는 국제적인 정서인지도 모른다. 없는 것보다 악처가 낫다는 말이 회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생활형편이 나아지고 애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시절이 다가옴에 따라 아파트도 부부 서로의 영역이 있으면 될 것이 아닌가. 남자가 별도로 사용할 수 있는 추가의 방, 주방, 욕실이 있다면 말이다. 그럼 부부 각자 필요하면 각자 요리를 할 수 있고, 필요하면 각자 시간을 가지고, 필요하면 각자 취미를 가질 수도 있다. 부부의 사랑을 유지하면 말이다.
과거 부모세대를 모시는 1세대 2가구형태의 아파트가 생겼다. 그러나 부부를 위한 1아파트 2가구 형태의 아파트를 본 적이 없다. 어쨌던 집안이 2가구인 형태의 아파트를 구하면 노년에 부부의 생활이 자유롭고 사랑스러워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도 어려우면 소형아파트를 바로 옆집으로 하여 구입하여 살면 된다. 이렇게 권해 보면 사람들은 “어찌 부부가 대놓고 이렇게 살 수 있나”, “남보기가 창피해서” 하고 핑계를 댄다. 그럼 부모를 한 집에 모시지 않고 옆집에 모시는 것은 아니 창피한가? 단지 시대에 조금 앞선다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다.
아파트가 싫으면 전원주택을 그렇게 지으면 된다. 부부가 각자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부부 공유공간이 있는 삶의 공간 말이다. 각자 프라이브시가 보장되는 공간에서 지내면서 저절로 만나질 수 있도록 중간에 거실, 정원, 출입구, 혹은 주방(이를 매개공간, 중간공간이라 한다)을 두는 방법이다. 이 계획안을 나는 고객에게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경제력 여건이 좋을수록 부부의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행복할수록 욕심이 많아지고 각자 선택의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건이 된다면 서로 같이 있는 듯, 혹은 혼자 있는 듯 하면서 삶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이런 전원주택도 좋은 대안이 된다. 이런 주거 환경을 만들어 보자. 우선 내 안의 고정관념파괴가 우선이다.
누가 그랬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맞다. 나도 그것을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의 말이다. 설령 공간이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다 선지자나 종교인같이 의지가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나도 지금의 청와대에 들어가면 나와 내 가족들이 청와대 답게 의식이 변하리라 생각한다.
부부도 그렇다. 살기 좋은 세상에서 눈과 마음을 항상 내 과거의 형편에 고정시킬 수 없다. 사랑이 여전하고 건강한 부부라 하더라도 환경이 협소하고 서로의 영역이 왜곡되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 서로 자유로움으로 향하는데 체면은 그대로이다. 한 공간 안에서 영역다툼을 안 하는 척하면서 서로 감정만 쥐어 박고 산다. 우리의 세대에서는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복지자유 세상에 대한 한 면만 보고 살아온 어려웠던 과거 삶의 응보이다.
그래도 죽어도 부부의 형식을 지키려 하는 부부도 있고, 인생은 짫다 하고 훌훌 터는 부부도 있다. 스스로 세상보다 먼저 나아간다는 생각이 없으면 힘듬은 당연해 보인다. 나와 상대를 같이 위하면서 가까이 그리고 아주 가까이 서로 같이 있고 싶다면 소개한 형태의 평면도와 같은 전원주택이 좋다.
아파트를 고집한다면 2가구형 1세대 아파트 형태가 좋다. 좀 더 확장한 개념을 적용한다면 옆집, 같은 층, 혹은 같은 동으로 두 아파트를 구입하여 각자 생활하면 좋다. 그런데 아파트의 단점은 저절로 두 사람이 만나는 공공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영영 서로 다른 길로 갈 위험이 있다.
전원주택은 그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설계안에 두 사람이 각자 생활하면서 공공의 장소인 거실을 매개공간으로 두는 방법도 그 점에 매우 좋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TV를 보고 밥 해먹고 욕실을 사용해도 중간지점에 거실과 출입구를 같이 공유한다. 서로 만남을 유도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공공의 공간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는 각자 부부관계에 따른다.
“우리는 다른 방에서 자지만 밥은 같이 해먹고 거실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다른 방에서 자고 가끔 각자 밥을 해먹지만 자주 거실이나 정원에서 만나기를 원한다.”
“우리는 다른 방에서 자고 항상 각자 밥을 해 먹지만 음식은 서로 나누고 거실과 정원에서 자주 같이 시간을 보낸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추어 계획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절로 서로 만나는 공공의 공간(A Public Space)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절로 만나는 공간이 있어야만 부부의 정이나 사랑이 지속적으로 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저절로 만나지는 공공의 공간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사회의 어느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특히 부부 사이나 가족 사이는 더 그렇다.
허물어져 가는 요즈음 노년의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는 형편이 된다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노년이 되면 외로움은 더 커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혼자면 더 크다. 가까이 있으면 서로 도울 수도 있다. 집에서 개인공간과 공용공간을 적절히 만들어 혼자가 되기도 하고 같이 있기도 하면 행복한 노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혼자이면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혼자가 되고 싶다. 부부, 집안을 잘 구성하면 같이 살면서 언제든 혼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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