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19 동해안 항구 추억
경주에서 20분만 달리면 그곳이 바로 동해안이다. 그 동해안에 오래된 항구 하나가 있다. 그 항구에 작은 형님이 살고 계신다. 오늘 바닷가를 보고 싶기도 하였고 문득 형님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오전 11시경 자동차를 동해안으로 몰았다. 그리고 형님과 점심을 같이 하였다.
이 동네에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가물했다. 그들을 잊고 산지가 40년이 다 되어간다. 친한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이름이 생각나질 않았다. 얼굴이 떠오르지만 가물가물했다.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기억해 보았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그 이름이 떠올랐다.
“0호”
“형님 그분 내 선배인데 어디 사시는지 알아요?”
“아 그 사람, 여기서 음식점을 하고 있단다.”
나는 그곳으로 형님과 함께 갔다. 우연히 점심을 먹는다고 하고 그 선배를 만나보기 위함이었다. 마침 그 선배는 카운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40년 만인데 금방 서로 알아차렸다. 젊었을 때 운동으로 자주 만났던 사이이다. 정말 오래간만이다. 마스크를 하였지만 누구인가 금방 알아차리고 바로 정이 통했다. 그의 입을 통하여 다른 지인들의 이름이 줄줄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을 들었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 잊어졌던 그 시절의 껍대기가 한거풀 한거풀 벗겨지면서 추억이 하나씩 하나씩 되살아났다.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다방으로 갔다. 형님이 단골로 가는 다방이다. 아가씨가 옛 다방커피를 들고 와서 내 옆에 앉아 잔에 커피를 따른다. 아가씨 서빙으로 손하나 까닥 안하고 커피잔을 들어 마시니 기분이 찡하다. 아가씨도 한 잔하려 한다.
“오케이... ...
요즈음도 옛날같은 다방인가? 그때는 참 멋있었는데… 다방 아가씨하고 사귀는 순정의 이야기도 많았는데. 그때 음식점에서 술집에서 차 배달 부르고, 다방에서 놀고 마시고 연예하고, 그랬는데. 요즈음은?
“호호… … 요 작은 다방에 아가씨가 7명이에요”
그럼, 대충 추측이 된다. 옛날과 비슷하거나 더하다. 단 낭만적이지 않고 계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옛 추억을 되새기에는 충분했다.
“아가씨, 이름은?”
“김양, 진짜 성으로”
“진짜 성? 모르지… …. 그래, 내가 일부러 여기 커피 한잔하려 와야겠어. 아가씨 보려”
3000원에 한 잔이니 아가씨 한두 잔 더해도… 커피 향기에 아가씨와 대화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앞에 앉은 형님이 빙긋이 웃었다.
나는 형님을 댁으로 모셔드리고 다시 경주 불국사로 돌아왔다. 너무 이른 오후였다. 옷을 갈아입고 석굴암 등산로에 올랐다. 이맘 때는 여기 벗꽃놀이가 한창이다. 여기 벗꽃은 일반 벗꽃(일본산)이 아니라 원벗꽃(한국산)이다. 일본산보다 15일 늦게 핀다. 색깔과 꽃봉우리가 많이 색다르다. 여기 불국사 입구 들판에만 즐길 수 있다.
매년 이 벗꽃을 보려 많은 사람들이 온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그들을 보니 행복함을 느낀다. 실제 내 젊었을 때 그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나는 현실에 있음을 깨닫는다. 갑자기… … 조용한, 느긋한, 자유로운,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 된 것 같다. 동해안 항구에서는 추억 여행이었다면 여기 불국사에서는 온전히 현실 여정이다. 등산으로 다리가 후들후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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