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17 우리 모두 다 영웅이다
영화 Hacksaw Ridge(핵소 고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서 총 없이 75명의 부상병을 구한 의무병 Desmond Thomas Doss를 다룬 영화이다.
Desmond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다. 훈련 과정에서 총을 소지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서 명령거부로 기소되었다. 훈련동안 동료들의 괴로힘도 많았다. 그는 이 모든 것에 굽히지 않고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오끼나와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최전선에 남아 죽음을 무릅쓰고 많은 부상병을 구하였다.
Mel Gibson 감독의 작품이고 Andrew Garfield가 주인공 병사 Desmond 역을 맡았다. 2016년 개봉되었다.
이 영화를 보고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Desmond가 명령불복종으로 군사재판을 받는 중에 한 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선전포고하고 미국을 공습했다. 미국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지원했다. 우리 마을에도 젊은이들이 모두 그랬다. 총기다루기를 거부한 나는 의무병으로 지원을 했다. 나만 편히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에 다니다가 군대에 지원했다. 계속 대학에 다닐 형편이 안 되었다. 이럴 바에 우선적으로 국방의무를 하자는 생각에 군대에 지원했다. 형님이 병무일을 하는 공직에 있어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면제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건강한 사람도 쉽게 군면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약골 중 약골이었지만 형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당당히 지원했었다.
“설마 죽을 일은 없겠지”
“참으면 된다”
“언제가 해야 되는 일이다”
이런 생각으로 그냥 지원했었다. 나는 달리기도 제대로 못했던 약골이었다. 그런 내 육체였다. 지랄 같은, 뭐 같은, 내 몸 때문에 군복무 중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다.
Desmond는 훈련소에서 집총명령거부로 동료 병사로부터 따돌림과 폭행에 시달렸다. 교관이나 상관으로부터도 역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 주관을 굽히지 않았다.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명령불복종으로 기소되었으나 그는 역시 극복했다. 그리고 그는 태평양전쟁터에 위생병으로 투입되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는 유신정국이었다. “신입 대학생은 반드시 10일의 학생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이 그해 새로 생겼다. 나는 그 1호로 훈련소에 입소되어 군사훈련을 받았다. 나는 죽을 고생을 했다. 달리기도 제대로 못하는 약골이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면서 논산에서 4주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보다 학생군사훈련이 더 박셌다.
그 시절 대학생들의 대모가 한창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정국이 혼란스러웠다. 대학생 군사훈련은 신입 대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면 정신교육이 되리라 하는 의도로 생겼다. 몇 년후 그 규정은 없었졌다.
약골이었던 내가 특별하게 남들과 다르게 군사훈련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나는 요즘도 군대에 입영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깜짝 놀라 깬다. 어떤 사람은 지옥의 문으로 들어가는 꿈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나는 “군에 입영되는 꿈”이 가장 무섭다.
훈련소에 들어가면 우선 신체검사를 받는다. 그 신체검사에 합격하여야만 정식으로 훈련소에 입소가 된다. 나는 훈련소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되어 입영대기소에서 재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고혈압이고 왼팔에 문신이 있다는 죄목이었다.
같이 입영한 사람들은 이미 훈련소에 들어갔고 나는 신체검사 결격으로 입영대기소에서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신분으로 장기간 대기 했다. 불합격자는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러나 불합격자는 입영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기가 될 뿐이다.
“머리 빡빡 깍고 집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 정말로 쪽 팔린다. 다음에 다시 입영절차를 또 밞아야 한다. 돌아가면 대학도 못 다니고, 집에서는 먹는 입만 늘어난다. 부모 형제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이다.”
나는 그럴 수는 없었다. 무조건 훈련소에 입소해서 군복무를 마쳐야 했다. 여기서 죽든 말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여러 번 혈압이 측정되었다. 그때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스로 독려시켰다.
심장이 정지되면 본인만 죽을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본인의 육체적 문제로만 여겨진다. 상황따라 높았다 하는 것이 혈압이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여 고혈압으로 불합격처분을 내리는 소신있는 군의관은 없다. 군의관도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난 군의관에게 둘려댔다.
“전, 본래 괜찮아요. 혈압기만 대면 그때만 혈압이 올라가요.”
난 이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왼팔의 문신이 큰 문제가 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매진하자는 생각으로 내 왼팔을 인두로 혼내었다. 그것은 큰 상처를 만들었다.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였다. 이것 때문에 훈련대기소에서 여러번 정신감정을 받았다.
무조건 나는 입대해야 한다. 나는 머리를 썼다. 의사가 묻는 어떠한 질문에도 어떠한 문답식 설문지에도 부정적인 내용을 말하거나 선택을 하지 않았다. 최상의 정상인처럼… 이렇게 훈련대기소에서 거의 한 달을 보내고 나서 나는 겨우 훈련소에 입영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내 왼팔의 상처가 의도된 것으로 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대충 보아도 그 상처가 글씨라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그럼, 어느 군의관이라도 나를 집으로 돌려 보냈을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하였다. 사고로 화상을 입었다고…
그 이후 내 팔의 상처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군대의 특성상 항상 긴팔을 입을 수 있어서 남이 볼 일이 없었고, 설령 누군가 보았다 하더라도 사고로 큰 화상을 입었다고 둘려대면 대충 넘어 갔었다.
나는 약제병으로 군에 지원했었다. 그리고 군사훈련과 실무교육을 마치고 전방에 배치되었다. 군대에서는 내 생각과 반대로 돌아갔다. 특수 병과라는 시샘 때문에 동료로부터 많은 구타와 벌을 받았으며, 일반 병사들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약제병에게 유격훈련이 왜 필요한가? 두 번의 유격훈련에서 나는 정신을 몇번 잃었다. 10km 무장구보에서 오줌을 질질 샀다. 나는 견디어 내야만 했다.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휴전선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다 보면 별의 별 사고자를 다 본다. 다친 자도, 이미 식은 주검도… 다 나보다 건장한 전우들이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사람마다 주어진 고통에 대해 느끼는 강도는 다 다르고 대처 방법도 다 다르다. 전투에서 싸우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난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지금도 난 살아 돌아 왔다는 것에 감사한다.
핵소 고지에서 일본군은 좇아오고 전우들은 후퇴를 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병사가 더 많았다. 머뭇거리다가는 죽음뿐이었다. 그러나 Desmond는 적지에 홀로 남아 많은 부상병들을 구조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한 명 더”
그리고 반복하여 적진으로 되돌아갔다.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두렵다. 그러나 옆 전우가 쓰려지고 있을 때 누가 이것저것 생각하고 전진하겠는가? 그냥 돌진한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전투에서 위생병은 특별한 위치에 선다. 전진할 때는 소총수가 총알받이가 되지만 후퇴할 경우에는 위생병이 총알받이가 된다. 그래도 부상자를 두고 갈 수 없는 것이 위생병이다.
전쟁에서 내가 다쳤을 때 누군가가 나를 구조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전진하겠는가? Desmond는 전우에게 믿음을 주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너는 구조될 것이라고… 다시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전우들은 Desmond의 기도 소리가 끝나자 바로 모두 돌격했다.
한반도가 전쟁 중은 아니지만 휴전선은 전쟁이 단지 멈춘 상태이다. 전투 중에는 전투로다치거나 죽지만, 휴전 중에는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다. 양만 다를 뿐 똑 같은 경우이다. 휴전선에서 자주 사고가 난다. 총기와 실탄 심지어 수류탄까지 소지하며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부모 형제가 있는 대학생인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전방에 배치되었다. 당연 사고 방지를 위한 병무행정이다. 그렇게 골라서 보내도 전방에서는 총기사고가 난다. 병사들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주검을 후송하는 것도 위생병의 일이다. 내 선임은 배테랑이었다. 나는 그의 후임이었다. 그는 산산 조각난 주검을 꿔메고 닦고 정복으로 갈아 입힌다. 자기 돈으로 구입한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운다. 그때 주검에 관심을 두는 관리자는 없다. 그냥 대충해도 무어라 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그는 온 정성을 다하여 주검을 돌본다. 사고? 탈영? 자살?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이었다.
“김상병님, 식사 하려 가시죠?”
배가 하도 고파서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취사장에 가서 배식을 받아 여기로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나는 식판으로 배식을 받아 건너 방에 준비했다.
“그를 홀로 둘 수 없다”
선임이 외쳤다. 우리는 누워있는 주검 바로 앞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선임이 바로 Desmond와 같았다. 그는 군의관이 없을 때는 수술하고, 치료하고, 약을 주었다.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갔다. 적극적으로 다친 병사를 치료하였고 이미 주검이라면 정성스럽게 영혼을 대했다. 그 당시 군의관은 항상 자리에 없었다.
나는 군의관 바로 밑에서 일했다. 나는 군의관을 보조하거나 그의 처방으로 약을 조제한다. 그 당시 의사는 장교로 복무했다. 그런데 군의관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신분이 하도 높아서 그랬나? 맨날 놀기 바빠서 그랬나? 전방인데… 글세다? 전방에서 환자는 항상 생긴다. 이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직접 하는 것이었다. 진료도… 치료도… 약도…
Desmond는 명령불복종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때 1차세계대전 참전병이었던 아버지가 국가로부터 받은 문서를 들고 들어왔다. 그 문서가 재판장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는 풀려났다.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로서 피고인의 권리는 법령으로 보호됨으로 포기를 강요할 수 없다. 집총명령거부도 해당 권리에 포함된다.”
이는 모두 똑 같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는 획일성에서 총을 들지 않고도 애국자가 되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다양성을 말한다. 전투에서 총 없이 많은 부상자를 구한 Desmond처럼, 군복무 중에 다친 전우와 죽은 영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나의 선임자처럼 말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대학을 다녔다는 것이 정말 후회가 된다. 자식 대학 보내느라 부모형제가 가난해졌고 힘들었다. 대학가지 않은 고향 내 친구들은 일하면서 편히 방위근무를 했다. 나는 대학생이라는 죄목으로 전방에서 여러번 죽을 뻔 하였다.
전방에서 위생병으로 근무하면서 사고 현장을 자주 보았고 주검도 보았다. 같이 입대하였던 내 고향 친구는 우연히 공수부대로 착출되었고 광주사태에 투입되어 죽었다. 그는 죽었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전방에서 여러 주검을 보았지만 나는 무사히 돌아왔다.
전투에서 돌진하다가 바로 죽은 자도 영웅이고, 피를 흘리며 구조 된 자도 영웅이고, 끝까지 남아 구조한 Desmond도 영웅이다. 총 들고 싸운 자도 영웅이고, 총 없이 싸운 자도 영웅이다. 군복무 중에 사고를 당한 자, 사고를 일으킨 자, 자살자, 이렇게 저렇게 군대에서 주검이 된 영혼들도 영웅이다. 우리 모두 다 영웅이다.
돌격대는 돌격을 잘 하면 되고, 위생병은 치료를 잘 하면 된다. 힘이 센 사람은 센 대로, 약골은 약골대로 나라를 위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똑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받을 필요는 없다. 똑 같은 방식으로 나라를 위할 까닭은 없다. 총을 들든 말든… 이런 다양성이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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